제 1야당 대표의 정치적 결단 희화화…도넘은 비하·조롱 정치·공인의식 실종
27일 오늘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단식 8일째를 맞았다. 엄동설한 '노숙단식'은 건강에 위험신호를 보내고 있다. 황 대표는 지소미아 종료 철회,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법 포기, 연동형 비례대표제 선거법 철회 등 3가지 조건을 내걸고 지난 20일부터 단식에 돌입했다.

한·일지소미아는 우여곡절 끝에 뒤끝 작렬을 남긴 채 종료 효력 정지로 연기됐다. 연동제 비례제를 도입한 공직선거법 개정안은 국회 패스트트랙(신속처리 대상 안건) 절차에 따라 27일 본회의에 자동 부의됐다. 다음 달 3일 국회 본회의에서 공수처법과 함께 처리될 가능성이 크다.

국회 과반 의석을 확보한 범여권 4당(더불어민주당·바른미래당·정의당·민주평화당)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본회의에서 표결 처리할 수 있게 됐다. 황교안 대표는 단식 8일째 방문객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고 단백뇨 증상을 보이는 등 건강이 쇠약해진 상태라고 한다.

황 대표는 병원행을 권하는 당 지도부를 향해 "아직 할 일이 남아있다"며 거부했다고 한다. 제1야당대표의 단식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정부의 국정운영에 대한 초강경 경고다. 삭발정치에 이은 황 대표의 단식은 "죽기를 각오 하겠다"며 던진 마지막 카드다.

정치인들의 삭발이나 단식은 현실 정치의 실종을 의미한다. 최후의 저항 수단이다. 정치인이라고 항상 강자는 아니다. 일방통행은 없다. 소통능력이 없는 정부나 탄압에 대한 최후의 선택이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택하는 마지막 절규다. 정치인이라면 이에 대한 이해가 먼저다.

이런 측면에서 황교안 대표의 단식을 두고 쏟아낸 여당과 일부 진영 인사들의 발언은 아마 두고두고 회자될 것이다. 가볍다. 너무나 가벼운 입들의 '구업'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사람이 먼저'라는 정부에서 사람을 가린다. 조롱과 비아냥만 있을 뿐 문제의식은 찾아 볼 수 없다. 

   
▲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27일자로 단식 8일째를 맞았다. 엄동설한 '노숙단식'은 건강에 위험신호를 보내고 있다. /사진=자유한국당 제공

'황제단식'은 점잖은 편이다. 지난 25일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김 씨는 황 대표의 건강이상설을 두고 "5일째(인데) 너무 빨리 (건강 이상설이) 나온다"며 "보통 열흘 정도 지난 다음에 나와야 되는데"라고 말했다. 출연자인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5일 만에 나오는 건 좀 빠르다"고 맞장구쳤다.

우 의원은 "시작부터 끝까지 실패한 단식"이라고 덧붙였다. 김씨는 "아직은 실려 가신 건 아니니까요"라고 말하며 "2~3일 더 버틸 수도 있지 않을까 한다. 추우면 안 그러실지도 몰라요"라고 했다.

소설가 공지영씨는 같은 날 SNS를 통해 "제보에 의하면 단식 도중 뭘 좀 먹으면 지옥처럼 힘들다 하네요"라며 "깨끗이 굶으면 그리 고통스럽지 않은데, 뭐 그렇다구요. 저분들 진짜 고통스러우신 것 같아서"라고 썼다. 단식의 진정성을 의심한다. 오로지 네 편 내편이 있을 뿐이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지난 26일 국회 의원총회에서 "수많은 시위와 농성이 이어지고 있는 자리지만, 법을 어기면서 몽골 텐트를 친 것은 황 대표가 처음"이라며 "제1야당 대표라고 해서 법을 무시한 황제단식이 허용돼서는 안 된다"고 했다.

심 대표는 "정부는 행정대집행을 통해 텐트를 철거해 주시기 바란다"며 황 대표가 머무는 청와대 앞 텐트의 강제철거를 주문했다. 지난 25일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도 "도대체 무엇을 위한 단식이냐"며 "민생과 안보를 내팽개치고 나라 멍드는 정치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종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22일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를 향해 '교안오빠'라고 지칭하며 비꼬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물의를 빚자 이 의원은 오빠라는 표현을 삭제하고 당대표라고 고쳤다. 5선 의원으로 쓴맛단맛 다본 원로 정치인의 표현치고는 너무 '싸구려'다.

정치권에서 단식 투쟁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1983년 가택연금상태의 김영삼 전 대통령은 대통령 직선제 개헌 등을 내걸며 23일간 단식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90년 지방 자치제 전면 실시를 요구하며 13일 동안 단식투쟁을 했다. 목숨을 담보로 한 마지막 승부수였다.

지금 문재인 정부는 그 뿌리에 기생해 태동했다. 그런데 너무나 다르다. 제1야당의 대표 단식을 희화화하는 그들의 정신세계가 놀랍다. 양심이 의심스럽다. 정치는 소통이다. 대통령과 집권여당의 리더십이 바닥을 보이고 있다. 사람보다 이념이고 권력을 향한 부나비의 행태가 안쓰럽다.

'사람'과 '포용'을 내세운 정부의 역설이다. 하루 빨리 매듭을 풀어야 한다. 여당은 청와대의 나팔수이자 받아 적기 신공 외에는 없다. 대통령의 권한은 커지고 청와대는 무소불위다. 국회는 정파적 이익에 따라 식물과 동물을 오간다.

정치는 상대성이다. 어제의 야당이 여당이 되고 오늘의 여당이 내일의 야당이 된다. 상대를 존중할 줄 모르는 정치인은 정치인이 아니라 정치꾼이다. '꾼'들만 판치는 현실이다. 이들의 목적은 나라와 국민이 아니라 내편과 나만이 있을 뿐이다.

이미 우린 조국 사태를 비롯해 거짓 속에 숨겨진 그들만의 세계를 목도하고 있다. 달을 보라고 가리킨 건 손가락이다. 그런데 달은 보지 않고 손가락만 본다. 보고 싶은 것만 본다. 소통은 불통과 동의어가 됐다. 아마도 이 정부 내내 그럴 것 같아 못내 불안하다. 그래도 더 이상 제1야당 대표를 조롱하며 욕보이지 말아야 한다. 뒤늦게 내미는 그들의 '악수'가 더 불순해 보이고 불편한 이유다.
[미디어펜=편집국]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