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정부가 남북협력을 강력하게 추진할 의지를 드러내며 ‘북한 개별관광’ 카드를 꺼내들었지만 미국이 부정적인 반응을 내놓고 있다. 특히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가 북한 개별관광에 대해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에 저촉될 수 있다고 언급하면서 사실상 제동을 걸고 나섰다.

해리스 대사는 지난 16일 외신기자 간담회에서 “향후 대북제재 부과를 촉발할 수 있는 오해를 피하려면 한미 워킹그룹을 통해 다루는 것이 낫다”며 정부의 개별관광을 견제하는 발언을 했다. 

사실상 문재인 대통령 발언에 대해 주재국 대사가 공개적으로 발언한 것인 만큼 청와대가 즉각 비판에 나섰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17일 “대사가 주재국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서 언론에 공개적으로 언급한 부분은 대단히 부적절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미국과는 항시 긴밀하게 공조하면서 협의하고 있다”면서도 “정부는 남북관계 실질적 진전과 조속한 북미대화를 위해서 지속적으로 노력해나갈 거다. 남북협력 관련 부분은 정부가 결정할 사안”이라고 말했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4일 신년기자회견을 통해 “이제 북미대화만 바라보지 않고 남북협력을 증진시키면서 북미대화를 좀 더 촉진해나갈 필요성이 높아졌다”며 “대북제재라는 한계속에서도 남북 간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개별관광 같은 것은 국제 제재에 저촉되지 않기 때문에 충분히 모색될 수 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북한 개별관광 외에도 앞서 7일 신년사에서 ‘남북 접경지역 협력’ ‘2032년 올림픽 남북 공동개최 등 스포츠 교류’ ‘남북 철도‧도로 연결사업’ ‘비무장지대 유네스코 세계유산 공동등재’ ‘개성공단‧금강산관광 재개’ ‘6.15 남북공동선언 20주년 계기 김정은 위원장 답방’을 제시했다.

하지만 해리스 대사 외에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측근인 린지 그레이엄 공화당 상원의원이 16일(현지시간) 미국의소리 방송 인터뷰에서 ‘개별관광’을 염두에 두고 “우리가 달성하려는 비핵화 노력을 약화시킨다”고 비판했고, 크리스 밴 홀런 민주당 상원의원도 “(한국의 행동은) 실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외교결례 논란까지 부른 해리스 대사 발언은  청와대뿐 아니라 집권여당도 비판 대열에 합류했다. 이해식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논평에서 “해리스 대사는 본인의 발언이 주권국이자 동맹국인 대한민국 정부와 국민의 오해를 촉발할 수도 있다는 깊은 성찰을 하기 바란다”고 밝혔다. 민주당 동북아평화협력특별위원장인 송영길 의원은 라디오방송에서 “우리가 대사가 한 말대로 따라 한다면 대사가 무슨 조선 총독인가”라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국방과학원에서 진행한 초대형 방사포 시험사격을 참관했다고 2019년 11월29일 노동신문이 보도했다./노동신문

국내에서 한미 간 신경전이 목도되는 상황이지만 강경화 외교부장관에 이어 미국을 방문한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도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부장관과 만난 이후 16일 특파원간담회에서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미국정부의 지지 입장을 재확인했다”고 밝혀 트럼프행정부의 최종 판단도 주목된다.

이 본부장은 “지금 한미 간 공통 관심사는 어떻게 하면 북한을 대화로 다시 불러들일 수 있을까, (북한의) 도발을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하는 것”이라며 “그 두 가지에 대해 공조 방안을 항상 얘기하고 있다. 미국은 북한의 도발을 막아놓은 상황에서 대화로 불러내는 것을 제일 중심되게 얘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본부장은 남북관계 개선 협의와 관련해 “이것도 한미 간에 협의해왔던, 어떻게 하면 북한을 대화로 끌어들일 수 있고 도발을 저지할 수 있느냐 하는 맥락에서 한 것”이라며 “이 문제는 한미 간 협의가 이제 시작됐고, 시간을 끌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빨리 협의를 진행시켜 나가면서 속도감 있게 같이 협의를 진행해 나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날 통일부는 개별관광과 관련해 한발 더 나간 언급을 내놨다. 이상민 통일부 대변인은 정례브리핑에서 “대북정책은 대한민국의 주권에 해당한다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고 밝히면서  “관광은 대북제재에 저촉이 되지 않는 것이고 지금 현재도 다른 외국 여러 나라의 관광객들이 북한 관광을 실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이 대변인은 ‘5.24 조치 안에 우리국민의 북한 방문 금지 조항이 포함돼 있다’는 질문에 “역대 정부도 국민의 개별 방북 문제에서 계기별로 5.24 유연화 조치를 취해왔다”며 “개별관광 역시 남북한 민간교류 확대 차원에서 바라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전 정부에서도 5.24 조치에는 예외 사례가 생겨 사실상 효력이 사라졌다는 입장이다. 5.24 조치는 2010년 천안함 폭침에 대응해 나온 행정조치로 개성공단과 금강산을 제외하고 우리국민의 방북을 불허하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

현재 정부는 남북교류협력법상 북한 당국의 초청 의사가 담긴 서류가 있어야 방북을 승인해오던 것을 간소화해서 앞으로 북한 당국의 비자 발급만으로 개별관광이 가능하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하지만 미국은 앞으로 북한 개별관광이 어떤 방식으로 확대될지 주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해리스 대사는 앞서 외신 간담회에서 “여행자가 (북한에) 들고 가는 것 중 일부는 제재에 걸릴 수 있다”고 말하며 한미 워킹그룹 협의를 강조했다. 북한 개별관광 허용 시 대북제재 위반은 물론 미국의 ‘세컨더리 보이콧’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와 남북관계는 병행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원칙을 강조해온 만큼 ‘북한 개별관광’ 카드는 현 북미 간 교착 상황에서 앞서가는 것이므로 괴리가 있다. 정부는 북한이 전원회의를 통해 대화의 문을 닫지 않았다고 판단해 이런 정책을 추진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북한의 대한민국 국민의 개별관광 허용 여부이다.

한미 간 신경전에도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는 북한이 금강산 남측 시설을 2월까지 모두 철거하라고 통보했다는 사실이 17일 뒤늦게 확인됐다. 금강산 남측 시설 철거 문제는 정부의 대면 협의 요구를 북한이 거부하면서 길어지고 있다. 관광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남측 시설을 빨리 걷어내고 싶어하는 북한과 직접 만나 이 문제에 대한 협의도 진전시키지 못하는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남북 간 개별관광 협의도 갈 길이 멀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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