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자 출신만 선호 전근대적 정체성...십만원권은 건국의 아버지 이승만을 내세워야

왜 ‘성균관대’ 일색이지?

   
▲ 남정욱 숭실대 교수
새 정부 출범하고 성균관대 출신이 약진하면서 돌았던 유머다. 애초부터 대한민국은 ‘성대의 나라’였단다. 과연 지갑을 열어보면 천 원짜리에 나오는 인물은 성균관대 교수다. 오천 원권은 성균관대 장학생이다. 이어 만 원권은 성대 이사장이고 최고액인 오만 원은 성대 학부모다. 모여서 수다 떠는 페이스북 방에 그 글을 올렸더니 서울행정법원 심준보 부장판사가 댓글을 달아 놨다. 재미있기는 한데 어째 그리 천편일률적으로 전근대적, 조선 시대 인물뿐이냐는 지적이다. 우리가 자기의 근대상에 전혀 자긍심을 갖지 못하는 증거라는 쓴소리도 덧붙였다.

듣고 보니 정말 그렇다. 네 명 중 최초 출생은 세종대왕으로 1397년이다. 제일 나중에 돌아간 이이는 1584년에 몰했다. 14세기에서 16세기까지 겨우 200년 동안에 난 인물로 화폐 4종의 주인공을 모조리 캐스팅했다는 사실은 우리 역사 반만년을 참 민망하게 만든다.

반면 일본은 압도적으로 현재에 근접해 있다. 천 엔의 주인공은 과학자인 노구치 히데요(1876~1928)다. 오천 엔권은 히구치 이치요(1872~1896)로 일본 근대소설의 개척자다. 만 엔권은 후쿠자와 유키치(1835~1901)로 일본의 근대화를 이끈 사상가다. 셋 중 둘이 ‘20세기 사람’이다. 과연 근대화에 환장했던 나라답다.

재미있는 게 또 있다. 노구치 히데요는 호적상 일본인이 아니라 미국인이다. 1900년에 미국 록펠러 연구원으로 가면서 미국 영주권을 얻었다. 이런저런 핑계를 달았지만 결국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꽤 괜찮은 장관 후보자를 미국으로 돌려보낸 우리 입장에서는 곱씹어 볼 일이다.

히구치 이치요도 만만찮다. 겨우 스물네 살에 생을 마감한 작가다. 우리로 치면 김동리나 서정주 대신 요절 시인 이상을 기용한 셈이니 제대로 파격이다. 일본만의 특이한 현상 아니냐고 반문하실 분 있겠다. 유로화 때문에 지금은 사용되지 않지만 프랑스 지폐를 보면 6종 지폐의 주인공이 베를리오즈, 드뷔시, 생텍쥐베리, 세잔, 에펠, 퀴리 부부다. 놀랍다. 근대를 넘어 거의 현대 수준이다.

   
▲ 신간도서 『불평사회 작별기』 북콘서트에서의 남정욱 작가

▲ 남정욱 작가의 『불평사회 작별기』 신간도서

그 나라 지폐를 보면 그 나라의 정체성과 지향점이 있다. 누가 선비의 나라, 사농공상의 질서 아니랄까 봐 우리는 학자 일색이다. 일본은 사상가, 소설가, 과학자다. 프랑스는 문학, 음악, 미술, 과학의 대가들을 그 자리에 앉혔다.

새 정부는 문화 융성을 내걸었다. 좋은 말이기는 한데 뭔가 구체적이고 상징적인 ‘액션’이 필요하지 않을까. 한번쯤 지폐 인물 교체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말씀이다. 실제로 노구치 히데요와 히구치 이치요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해당 지폐에서 각각 소설가 나쓰메 소세키와 학자인 니토베 이나조를 갈아탄 인물들이다.

한 말씀만 더 하자. 요즘 ‘백년전쟁’이라는 해괴한 영상이 유통 중이다. 건국의 아버지 이승만을 왜곡과 사기 끝에 ‘하와이 갱단 두목’으로 만들어 버렸다. 얕고 졸렬하여 반박할 가치도 없다. 당시 조선 대다수 민중의 막연한 몽상이었던 공산주의 대신에 혜안으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밀어붙인 인물이다. 한미동맹 강화로 안보를 탄탄히 굳힌 인물이다.

공과를 넘어 오늘의 대한민국은 출범시킨 인물이다. 혹시 십만 원권 지폐를 발행할 일이 생긴다면 진지하게 검토해볼 일이다. 인물에 대한 설명도 멋지지 않은가. ‘건국과 농지개혁, 안보와 교육 부흥의 네 마리 토끼를 잡았으며, 아무리 공이 커도 민주주의를 훼손하면 자리에서 내려와야 한다는 가르침까지 안겨준 대한민국의 아버지.’
 

공중파 예능프로그램에서 가장 잘 나가는 토크프로그램 명이 ‘힐링캠프’인 것에서 엿볼 수 있는 것처럼, 지금은 힐링의 시대다. 누구나 인생에서 한번 쯤 겪는 불평불만은 주로 2030세대에 그 정점을 찍는데, 젊은이들의 이러한 삶을 어루만져 주는 힐링이 인문학․문화․출판계의 대세이다.
힐링의 시대, 힐링이 범람하는 시대는 역으로 불평불만이 많은 사회라고 볼 수 있다. 일명 불평사회 말이다. 그리고 과연 불평과 불만이란 무엇일까. 현 시대를 불평사회라 명하고 사람들이 갖고 있는 불평과 불만을 명랑하고 맹랑한 시선으로 바라보고자 하는 취지로, 남정욱 작가가 신간도서 『불평사회 작별기』를 펴냈다.

남 작가는 책에서 “불평, 불만은 내가 생각하는 내 존재와 세상이 보는 내 존재 사이의 격차이며, 내가 바라는 막연하고 추상적인 세상과 실제로 돌아가는 냉정한 세상 사이의 간극이다”라고 밝히며, 이어 “사람들의 충족되지 않은 불만은 결국 자기 연민으로 돌아오고, 스스로 상처 입었다고 인지하여 포기하거나 좌절하는 상황으로 종료되기 마련이다”라고 지적했다.

남 작가는 도서를 통해 “사람들이 이제는 인간에 대해, 세상에 대해, 세상이 돌아가는 시스템에 대해 갖고 있는 한심한 심정 및 불평과 작별했으면 한다”는 작은 소망을 밝힌다.

남정욱 작가는 고등학교 시절 혼자 힘으로 반 평균을 떨어뜨렸다는 믿기 어려운 전설을 갖고 있다. 글을 쓰게 된 사연은 백 퍼센트 우연이라고 한다. 방송작가로 세상에 첫발을 내딛은 후 영화 프로듀서, 출판사 편집장, IT업체 대표를 경유하다 우연히 응모한 신춘문학상에 소설이 당선되어 글쓰기를 시작했다.

남정욱 작가는 숭실대학교 문예창장학과 겸임교수로 있으며, 1997년 「일간 스포츠」의 신춘대중문학상 감성소설 부문 당선으로 등단했다. 대표저서로는 소설 『천사는 가끔 지상에서 죽는다』, 『약속 거짓말 또 거짓말』 등이 꼽히며, 영화평론으로 『오늘은 어디 멀리 바람나고 싶다』 외 다수를 저술했다. 그 외 다양한 종류의 책을 저술해 왔는데, 영화연구서로는 『한국 영화 황금기를 찍다』, 긍정사관으로 대한민국 현대사를 바라보는 『편견에 도전하는 한국 현대사』, 정치평론집 『꾿빠이 전교조』, 『꾿빠이 386』 등이 있다. 한국영화 기획프로듀서협회 이사, 바른사회시민회의 운영위원 등으로도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