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석원 정치사회부장
[미디어펜=이석원 기자]1954년 불과 26살의 나이에 국회의원이 된 김영삼 전 대통령은 아직까지도 ‘대한민국 최연소 국회의원’이라는 타이틀을 유지하고 있다. 무려 9선 국회의원, 대한민국 민주주의의의 완성자라는 수식어를 가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의 인생이 화려함만 지닌 것은 아니다.

제3대 총선 때 대한민국 최연소 국회의원이었지만, 그는 제4대 때 고향인 거제군을 등지고 부산 서구에 출마했다가 낙선해 재선에 실패했다. 1971년에는 40대 기수론을 내세워 첫 대권에 도전하려고 했지만, 경선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패했고, 1987년에는 두 번째 대선에 도전했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단일화 실패로 또 고배를 마셔야 했다. 하지만 3당 합당을 업고 1992년 제14대 대통령에 당선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시작부터가 실패였다. 1958년 처음으로 강원도 인제에서 국회의원에 도전했지만, 당시 자유당 후보의 이중등록 술수 때문에 후보 등록이 취소되는 아픔을 겪었다. 다음 해 다시 재보선에 도전했지만 낙선했다. 연속해서 1960년 제5대 총선에서도 김대중 전 대통령은 낙선한다. 내리 세 번의 국회의원 도전에 실패한 것이다.

그러다가 1961년 5월 14일 재보선을 통해 겨우 첫 국회의원 배지를 달지만, 이틀 후 일어난 5.16 군사 정변으로 국회가 해산되는 바람에 다시 국회의원직을 상실한다. 1963년에 가서야 고향 목포에서 다시 당선돼 제대로 된 국회의원이 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67년 제7대와 1971년 제8대까지 4선에 무난히 당선되지만, 1971년 첫 대선 도전에서 실패한다. 그리고 이후 그의 인생은 국내 정치에서 멀어진 망명자의 인생이 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다시 한국 제도 정치권에 등장한 것은 1987년 대선이다. 하지만 김영삼 전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후보 단일화를 이뤄내지 못하면서 두 번째 대선도 실패한다. 대선 실패 후 제13대와 제14대 국회의원을 지내긴 했지만 1992년 세 번째로 도전한 대선에서도 3당 합당의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 패배했다. 그러다가 1997년에 이르러서 네 번째 도전만에 제 15대 대통령에 당선된 것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국회의원 선거에서 세 번, 대통령 선거에서 세 번 모두 여섯 번의 선거에서 낙선의 아픔을 겪었다.

운동권 변호사로 시작해 1988년 김영삼 전 대통령에 의해 발탁돼 정치인이 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낙선의 역사는 그에게 ‘바보 노무현’이라는 닉네임을 만들어줬다.

시작은 좋았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눈에 띄어 1988년 제13대 총선에 나와 부산 동구에서 한 번에 국회의원 배지를 단 노 전 대통령은 1992년 제14대 총선에서 떨어져 재선에 실패한다. 곧이어 정치 무대를 부산으로 옮겨 1995년 지방선거 부산시장에 도전했지만 낙선했고, 과감하게 서울로 상경해 이듬해 제15대 총선에 서울 종로에 도전장을 냈지만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패배하고 만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은 이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 출마를 위해 사퇴한 종로에서 재선거에 출마해 1998년 결국 종로의 국회의원이 된다. 하지만 2000년 제16대 총선에서 비교적 안전하게 여겨졌던 종로 현역의 프리미엄을 박차고 부산 북강서을 출마를 결행하고 낙선한다. 지역주의 타파라는 대의명분을 가지고 ‘바보 노무현’을 완성한 것이다. 그러나 2002년 그는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대선에서 제16대 대통령이 된다.

보통 ‘샐러리맨의 신화’로 일컬어지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경우 큰 어려움 없이 승승장구한 것으로 기억하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의 선거 인생도 아주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이 전 대통령이 정치에 입문한 것은 1992년이다. 제14대 총선에서 전국구 의원으로 여의도에 발을 들였다. 국회의원에 만족하지 못했던 이 전 대통령은 1995년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에 도전장을 낸다. 측근은 물론 당에서도 말렸다. 그러나 끝내 도전장을 냈지만 당내 경선에서 정원식 전 총리에게 고배를 마셨다. 

이 전 대통령은 1996년 제15대 총선에서 서울 종로에 출마해 당당히 재선에 성공했다. 문제는 또 서울시장 도전이었다. 국회의원 임기 중 사퇴하고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 참여했지만, 선거법 위반으로 재판을 받던 중 서울시장 경선을 포기하고, 급기야는 피선거권이 박탈된 채 숨죽인 세월을 보내다가 2000년 김대중 전 대통령에 의해 사면되고, 2002년 서울시장 도전 세 번만에 성공하고, 이어 2007년에는 제17대 대통령에까지 오른다.

   
▲ 지난 7일 황교안 한국당 대표가 기자회견을 열고 종로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사진=자유한국당
박근혜 전 대통령이 선거에서 패배한 적은 거의 없다. 1998년 이회창 전 총재에게 발탁돼 대구 달성에서 국회의원이 된 후 내리 5선을 할 때까지 선거에서는 승승장구했다. 전국 규모 선거에서 패배한 적은 한 번도 없다. 다만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그는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패한다. 박 전 대통령에게는 유일한 선거 패배인 셈이다.

가장 짧은 정치 경력을 가지고 대통령이 된 문재인 대통령도 2012년 대선에서 낙선의 경험을 했다. 국회의원 도전 1번, 대통령 도전 1번 중 절반인 1번의 낙선을 바탕으로 그는 현재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된 것이다.

1987년 직선제 개헌이 이뤄진 후 탄생한 대한민국의 대통령 중에 노태우 전 대통령을 제외하고 모든 대통령은 많든 적든 낙선의 역사를 지니고 살아왔다. 대한민국에서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이들에게 몇 번 쯤의 낙선은 숙명과도 같은 일이었다.

정말로 오랜 숙고 끝에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죽음의 험지’로 부리는 종로 출마를 결심했다. 솔직히 만시지탄(晩時之歎)이다. 종로 출마 결심을 2주만 일찍 했었다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물론 황 대표가 왜 그토록 오래 고민했는지 이해 못하는 건 아니다. 그는 정치에 입문한 후 지난 1년 여 동안 국회의원이 아닌 야당 대표, 야당 유력 대선 주자의 신분을 겪으면서 무척이나 힘들어했을 것이다. 그래서 또 얼마동안을 국회의원 신분이 아닌 야당의 대표, 유력 대권 주자 하기가 꺼려졌을 것이다. 그리고 당내에서, 보수진영에서 등 떠미는 종로에는 너무 강력한 상대가 버티고 있다.

그러나 그가 대통령의 길을 가겠다면 낙선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다른 이들처럼 여러 번의 낙선을 할 기회도 없다. 아무리 많아야 이번 총선, 그리고 다음 대선이 그가 낙선을 해볼 수 있는 단 두 번의 기회다. 그렇기에 두려워할 일이 아니다.

선거에서의 패배뿐 아니라 그는 이제껏 살아오면서 정치적으로 큰 고통을 겪은 적도 없다. 앞선 다른 대통령들처럼 정치 탄압에 의핸 구금이나 가택연금과 수형 생활, 국회의원직 제명이나 망명, 그리고 흉탄에 부모를 잃거나 커터칼로 테러를 당한 적도 없다. 엘리트 검사의 길이 탄탄했고, 승승장구하면서 법무부 장관과 국무총리까지 지냈다.  

질곡의 대한민국 역사 속 선배들이 다져놓은 민주주의의 바탕 위에서 황 대표는 훨씬 더 정상적이고 평안하게 대통령에 도전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까짓 종로 국회의원 도전이 뭐 그리 두렵고 조심스러울까?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넉넉히 가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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