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18세 나이보다 선거권 고교 침투가 문제" 지적도

중등교육 학제 미성년제도 피선거권 연령 등 모순 많아...
[미디어펜=손혜정 기자]선거법이 개정돼 선거연령이 만 18세로 하향 조정됐다. 이로써 오는 4.15 총선부터 고등학교 3학년 학생 중 약 5만명이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됐다. 나아가 선거운동과 정당 가입 등 정치활동도 허용된다. 그러나 이들은 여전히 민법상으로는 성인이 아닌 데다 신분은 '고3 학생'이다.

공직선거법상 선거 가능 연령만 만 18세까지 확대한 것은 우리나라의 중등교육 학제 및 민법상 미성년자 등 관련 제도와 법률 상호 간에 모순이 발생하게 된다는 지적이 많다.

선거연령 하향과 청소년 정치 참여를 찬성하는 입장에선 첫째, 해외 주요 국가들도 만 18세 선거를 허용하고 있고 둘째, 국내에서 만 18세는 혼인과 군대 입대, 운전면허 취득이 가능하므로 성년과 마찬가지라는 주장을 펼친다.

그러나 법무부가 지난해 12월 해외 주요 국가들의 성인·선거 연령을 조사한 결과,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캐나다 러시아 중국 등의 나라에서는 만 18세부터 성인으로 인정하는 동시에 선거권을 부여한다.

성인 연령과 선거 연령이 다른 나라는 한국과 일본이지만 일본은 민법 개정에 따라 2022년 4월부터 성인 연령도 만 18세로 조정될 예정이다.

   
▲ 지난해 12월 23알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본회의에 상정되자 자유한국당 소속 국회의원들이 문희상 국회의장에 항의하며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에 돌입했다. 그러나 선거법 개정안은 필리버스터 종료 후 자동표결에 들어가 본회의에서 의결됐다./사진=자유한국당

김기수 변호사는 '미디어펜'과의 통화에서 "만 18세가 '옳다 그르다' 프레임에 갇혀서는 안 된다. 선거할 수 있다. 그러나 미성년제도는 유지하고 공론화도 하지 않은 채 선거권만 준 것은 크게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성인 연령과 선거 연령을 유기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나아가 학령제(6-3-3)도 외국의 케이스와 우리나라는 다르다. 해외 국가가 만 18세를 성인으로 인정하고 선거권을 허용한 것은 한국과 학령제가 달라 학교를 일찍 들어가고 거의 예외없이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해에 성인이 되기 때문이다. 그만큼 대학도 일찍 들어간다.

요컨대 학령제의 문제는 선거권의 고등학교 침투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에 반드시 논의돼야 할 문제라는 주장이다. '고등학생'의 정치 참여는 헌법에 명시돼 있는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과 서로 상충하기 때문이다.

김 변호사는 "근본적인 문제는 만 18세라는 나이보다 미성년제도와 학령제 개편 선행 없이 '선거권이 고등학교에 들어가도록 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훈육 과정에 있는 학생들이 '선거권'이 쥐여져 정치에 참여하는 것은 '넌센스'며 그 자체로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시켜 '위헌적'이라는 것이다.

또한 청소년 선거권 찬성 측에서 거론하는 국내 만 18세 '혼인·군 입대·운전 면허 취득·공무원 시험 응시 가능'은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과는 무관하기 때문에 '고등학생의 선거권' 문제와는 차원이 다르다는 분석이다.

아울러 '개인의 자유, 즉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한 것'이 정치 참여의 본질이라는 것을 생각했을 때 아직 자신의 삶을 책임질 수 없는 위치에 있는 학생들이 개인의 생명과 재산, 나아가 국가의 안녕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참정 권리만 갖는 것은 재고해봐야 할 일이다. 미성년자는 법정대리인 동의 없이 아직 휴대폰 계약도 스스로 할 수 없다.

   
▲ 공직선거법 개정으로 제21대 총선부터는 만 18세 이상의 학생도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됐다./사진=정의당tv 유튜브 캡처

이와 관련해 가장 논란이 되는 문제가 바로 '교실의 정치화' 위험성이다. '고3 학생'을 대상으로 정치적 포퓰리즘이 횡횡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교육 현장에서 특정 이념 편향 교사에 의한 내용적 선동과 그 위험에 노출된 '아바타 학생'이 출현할 소지가 다분하기 때문이다.

현직 고교 교사는 '미디어펜'과의 통화에서 "지난 2015년 '프롤레타리아 레볼루션'을 주장한 여고생을 기억하실 거다. 이러한 사상이 주입된 학생이 균형적인 시각을 아직 갖추지 못한 채 투표하게 되면 어떻게 되겠는가"라고 지적했다.

지난 2015년 '역사교과서 국정화 방침'에 반대하는 시위에 참가한 한 여고생은 인터넷 언론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이 동영상을 보는 분들이 강력한 힘을 가진 부르주아 계급일지 모르겠다. 저는 프롤레타리아 계급이다. 사회 구조와 모순을 바꿀 수 있는 건 오직 프롤레타리아 레볼루션"이라고 말해 파장이 일었던 바 있다.

교사는 "교실 학생들은 정치 현장으로 바로 뛰어들게 해놓고 현직 교사들이 정치적 가치에 대해 숙지할 수 있도록 하는 최소한의 양심적 발언조차 결국 '정치적 중립 의무 위반'으로 징계를 받는 딜레마가 있다"고 토로했다.

보다 우려되는 것은 '학생들의 학습권 침해'다. 학교에는 선거권이 없는 고1·2학년 학생들과 고3 중에서도 투표권이 없는 학생들이 있다. 그러나 '교실의 정치적 분위기'로 이들의 학습권을 크게 침해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교사는 "사실 일부 '정치적' 학생들을 제외하고 고3 학생들의 주요 관심사는 자신의 장래 문제"라며 "성적, 대학 입시, 취업 문제가 당면한 현실 문제인데 집중력을 발휘해야 할 학생들에게 최상의 교육 환경을 제공하기는커녕 정치·선거 운동으로 교실의 분위기를 흐리게 만들 수도 있는 점이 가장 큰 우려"라고 설명했다.

끝으로 선거권 연령 조정으로 인한 피선거권 연령 문제도 드러났다. 황성욱 변호사는 "권리와 의무는 등가적인데 선거권 연령은 조정하면서 피선거권 연령은 왜 건드리지 않는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황 변호사는"현 정치 기득권 세대가 학생들을 단순 '표 기계'가 아닌, 본인들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주체로 끌어들이기는 또 싫은 것 아닌가. 충분한 검토가 있지 않았다"라고 꼬집었다.

헌법상 대통령은 만 40세, 공직선거법상 국회의원·지방의원은 만 25세 이상의 연령대만 피선거권을 가질 수 있다. 황 변호사는 "헌법에 대통령과 의원직 피선거권의 나이를 일정 나이로 했다는 것은 선거연령을 무작정 낮추는 것이 위헌일 수 있다는 논리가 가능하다"며 선거연령 하향 조정을 비판했다.

한편, 정의당, 이재정 경기교육감은 '선거연령 16세'를 주장하는 데다 안철수 전 의원은 "투표권이 있어야 정치가 청년들 눈치를 보게 된다"며 만 14세에게도 정치 의견 개진을 "열어놔야 한다"고 말했다. 정치권의 '청년 포퓰리즘'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필요하다.
[미디어펜=손혜정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