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정유·유통 등 희망휴직·퇴직 추진
"코로나19 기업 충격, 미·중 무역전쟁보다 클 수도" 경고
화학물질관리법·세율·반기업 정책 해소 절실
코로나19로 대한민국이 흔들리고 있다. 경제·사회·정치·문화 등 모든 분야의 질서가 순식간에 무너지면서 혼돈의 연속이다. 특히 경제가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 내수는 물론 수출까지 위축되면서 경영 환경이 악화되고 자영업자들은 생존 위협까지 느끼고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미지수다. 이번 사태를 교훈 삼아 대한민국은 경제정책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코로나19와 같은 예상치 못한 재난이 언제 우리 경제를 엄습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기업 관련 규제 완화 및 개혁, 노동개혁 등 파격적인 경제정책을 통해 실물경제를 살리고 기업의 체질을 바꿔야 한다. 미디어펜은 코로나19로 촉발된 경제 위기 상황을 긴급진단하고 나아갈 길을 짚어 본다. <편집자주>

   
▲ 두산중공업은 5년 만에 기술직과 사무직을 포함한 만 45세(1975년생) 이상 직원을 대상으로 명예퇴직을 시행한다.


[미디어펜=권가림 기자] 올해 경기 개선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는 정부의 기대와 달리 기업들이 느끼는 체감경기는 17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악화했다. 항공·정유·에너지·자동차·유통 등 업종을 불문하고 기업들은 생존을 위해 조직 축소가 불가피하다고 보고 감원, 무급휴직 등의 긴급 처방을 내리고 있다. 코로나19가 앞으로 1달 이상 더 지속될 경우 미·중 무역분쟁보다 더 큰 충격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지금이라도 대기업의 고정비용을 늘리는 각종 규제를 완화해 기업들의 기를 살려야 한다는 제언이 줄 잇는다.

5일 산업계에 따르면 국내 주요 기업들은 올해 임원급 등의 명예퇴직을 통한 감원에 들어가거나 신규 채용계획을 줄이고 있다. 

대한항공은 3월 한 달간 시행 예정이었던 승무원 무급휴직을 4월까지 연장했다. 아시아나항공은 전 직원 대상 10일 이상 무급휴직을 조기 실시하고 3월 급여차감을 일괄 실시한다. 임원은 급여의 50%를 반납한다. 에어부산은 모든 임원이 일괄 사직서를 제출하고 급여 20~30%를 반납한다. 이들 회사는 대부분 올해 상반기 신입사원 채용도 잠정 중단한 상태다.  

두산중공업, 대우조선해양, 현대로템, 효성중공업 등 다른 업종에서도 인력 감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나이, 근속에 따라 적게는 수십명에서 최대 2600여명이 퇴직 대상이다. 현대차그룹은 계열사인 현대제철의 만 53세 이상 희망퇴직에 이어 사업부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롯데쇼핑은 대형 마트 및 슈퍼 200여곳을 정리하는 방안을 발표해 수천명의 인력 감축이 예상된다. 

그만큼 위기의식이 크고 상황이 엄중하다고 기업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누적된 경영실적 악화에 코로나19가 한 달 이상 더 지속되면 올해 목표 매출 달성도 장담할 수 없어서다. 최악의 경우 신규 채용이 취소될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산업계 관계자는 "사스 때 경험치가 있어 비교적 능동적으로 대응하며 버티고 있다"며 "향후 특근, 정부 추경 등을 통해 평년의 기록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코로나19 확산이 4월까지 계속되면 장담 못 한다"며 "기업의 마지막 남은 경영 효율화 수단인 직원 고용도 어려워질 것"이라고 했다.  

   
▲ 지난 2월 기업의 체감경기 하락폭이 통계 편제 이후 최대를 기록했다. /사진=한국은행 제공


전문가들은 기업들이 오는 4월까지 생산 지체를 겪고 최소 상반기까지 여파가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문제는 유럽, 미국에서의 코로나19 확산세다. 이들 지역에서 확산 속도가 빨라지면 코로나19 피해가 글로벌 현상이 돼 교역, 생산, 근로, 노동 등에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이미 국내 기업들은 해외 영업활동과 출장 등이 기약 없이 지연되며 기업 활동의 장애를 겪고 있다.

정은미 산업연구원 성장동력산업연구본부장은 "내수 위축이 2~3달만 지연되도 연간으로는 20~30% 피해를 입는 것"이라며 "감염 피해가 글로벌 레벨이 되면 한두 달 내에 회복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전문가들과 기업 관계자들은 "경제가 위축되고 있는 마당에 쇠망치를 맞은 격" "허약한 아이가 독감을 옮은 형국" "코로나19가 잠식되도 기업은 시들어갈 것"이라고 우려를 토했다.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면 미·중 무역전쟁 충격보다 큰 역풍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하기 때문이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줄어든 세수와 코로나19로 소비-생산-투자-고용 악순환이 예상되는 만큼 기업에 대한 규제 끈을 풀어줘야 한다는 조언이 잇따른다. 정부가 법인세율을 높였음에도 지난해 시가 총액 100대 기업의 영업이익과 순이익이 전년 대비 각각 36%, 45% 급감하면서 올해 세수 상황은 악화될 전망이다. 

류재우 국민대 경제학과 교수는 "화학물질관리법, 주 52시간 근무제, 최저임금 등 각종 규제와 반기업 정서 정책으로 기업의 투자와 장기적인 성장 기회를 옥죄고 있다"며 "기업 가치사슬이 더 무너지면 신규 고용도 어려워지는 구조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김승욱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높은 법인세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죽이는 꼴"이라며 "수출 비중이 높은 국가에서 최고세율을 25%로 올려 놓으면 기업들이 해외로 빠져나가는 효과 밖에는 없다. 당장 배를 갈라서 죽이지 않을 지라도 점점 말려 죽이는 셈"이라고 꼬집었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영국, 미국, 프랑스처럼 세율을 낮춰 재투자와 임금 인상, 배당 인상 등을 하게 해야 한다"며 "임금 피크제가 작동하지 않는데 최근 '정년연장'을 다시 언급하는 등 의미 없는 정책들만 내놓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나라 노조 조직률은 11.8% 밖에 안 되는데 많은 정책이 노조 중심으로 지원되니 기업으로서는 근로자 채용을 회피하게 된다"고 했다.
[미디어펜=권가림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