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자 아들 김정수가 '내 아버지의 꿈' 펴내
개발연대와 박정희에 대한 큰 그림 빠진 게 유감
   
▲ 조우석 언론인
경제관료들에게 한국경제의 황금기는 언제인가 묻는다면 그들은 주저 없이 1960년대에서 70년대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들에게 당시 걸출한 업적을 남겼던 경제관료의 이름을 대보라고 하면 예외 없이 두 명의 스타를 꼽을 것이다. 불세출의 거물, 왕초와 쓰루 말이다.

왕초는 2대 부총리(1964~67년)를 지낸 장기영의 별명이고, 쓰루는 4대 부총리 김학렬(69~72년)의 애칭이다. 쓰루는 그의 이름에 들어있는 새 학(鶴)자의 일본어 발음인데, 신간 <내 아버지의 꿈>(김정수 지음, 덴스토리 펴냄)의 주인공이다. 이 책은 말하자면 김학렬 이야기인데, 특이하게도 그의 아들이 썼다. 단 그저 그런 집안 얘기로 착각하면 큰일이다. 

아들은 중앙일보 경제전문기자를 지낸 김정수(70)로, 그 전에 미 존스 홉킨스와 부르킹스연구소 등에서 배우고 일했으니 자격은 차고도 넘친다. 고려대에서 한국경제정책사를 강의하면서 우리경제의 뿌리 찾기에 더 관심을 가졌다고 하니 우리 기대는 더욱 커진다.

개발연대의 순교자
  
이참에 내 판단을 털어놓자. <내 아버지의 꿈>는 재무장관과 경제부총리를 역임하고도 타계 당시 49세였던 김학렬 전기인데, 기대치에는 못 미친다. 기대치란 한국경제가 천지개벽하던 개발연대에 대한 시야를 확보하면서 동시에 당시의 중심인물을 파고 들어가기, 딱 그것이다. 사실 책의 부제도 '칠순 기자 아들이 전하는 40대 부총리 김학렬 이야기'다.

반세기 전 얘기를 아버지보다 나이 많고 경륜이 풍부해진 아들이 요리한 책이라면 기대는 당연했는데 서문에 이런 얘기도 내 흥미를 돋웠다. "그의 세대만큼 사회의 중앙무대로 물러나면서 피와 땀으로 이룩한 번영의 역사가 뒤집어지고 그 의미가 부정적으로 재해석된 세대가 없었다."

막상 <내 아버지의 꿈>은 미진한데, 이유는 김학렬의 무용담은 지천으로 깔려 있으되 그것이 펼쳐지던 개발연대에 관한 큰 그림은 영 신통치 않은 탓이다. 즉 김학렬이 뛰어놀았던 운동장을 설계했던 박정희에 관한 언급이 송두리째 빠져있다. 박정희와 그의 시대는 김학렬의 활동의 먼 배경으로 남아있을뿐 그게 해독되지 않은 채 책에서 내내 겉돈다.

그 점 당혹스럽다. 저자의 표현대로 김학렬은 "대통령의 경제 아바타"(158쪽)가 아니던가. 어느 정도였을까? 김학렬은 경제부총리 직전에 경제수석을 했는데, 당시 경부고속도로와 소양강댐 사업을 멋지게 성공시켰다. 그 전 김학렬은 자신을 제2차경제개발의 아버지라고 믿고 있었다.

실무책임자가 바로 자기였기 때문이다. 결정적으로 포철이야말로 김학렬 삶의 전부였다. 부총리 취임식 직후 집무실에 '綜合製鐵(종합체철)' 네 글자를 떡 써붙이곤 TF팀 앞에서 일갈했다. "네놈들 선조나 자손 대대로 이같은 국가적 사업을 맡아 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이번 일에 성공 못한다면 살아남을 자격도 없다. 버스값은 줄테니 한강에 빠져 죽어라." 

포항제철 회장은 박정희이고, 박태준이 현장소장이라면, 그 중간의 김학렬은 사장이었다. 그런 김학렬을 박정희는 드러내놓고 총애했고, 김학렬은 절대권력자의 신임을 행정 리더십에 총동원했다. 그가 김종필-이후락 같은 정치적 욕심이 없으니 가능했던 특수 관계였다.

   
▲ 포항제철 회장은 박정희(사진 중앙)이고, 박태준(왼쪽)이 현장소장이라면, 그 중간의 김학렬(오른쪽)은 사장이었다. 그런 김학렬을 박정희는 드러내놓고 총애했고, 김학렬은 절대권력자의 신임을 행정 리더십에 총동원했다.

박정희와의 특수관계

그렇게 거침없이 달리던 김학렬은 과로 탓에 1972년 췌장암으로 쓰러졌다. 그의 사망 소식 메모를 받아든 박정희는 회의 중 자리를 뗬다. 화장실에서 소리 없는 통곡을 했던 것이다. '개발연대의 순교자'는 그렇게 세상을 떴다. 그런 둘 사이 관계를 멋지게 정리한 것은 저자가 아니다. 그 몫은 책 앞에 '내가 본 부총리'를 쓴 엄일영(부총리 비서실장)이다.

"쓰루는 박통에 대한 충성, 성공적인 박정희 정권을 위한 헌신, 경제부흥에 대한 열정을 불태웠다. 그만큼 박통의 숭고한 나라 사랑에 푹 빠져 있었다."(20쪽) 어느 정도였을까? 부총리 시절엔 박정희와 더 자주 만났다. 경제를 넘어 국사 전반을 논의하는 관계로 발전했다.

그렇게 종일 머리를 맞대다가 그걸로 부족하면 박정희가 혜화동 자택까지 찾아가 국정을 도모했다. 누가 "당신, 건강 좀 챙기라"고 하면 김학렬은 이렇게 대꾸하며 일에 다시 뛰어들었다. "저 양반(박정희)이 나라를 위해 얼마나 고생하시는지 아느냐? 난 아직 멀었다." 그런데도 막상 <내 아버지의 꿈>에서 박정희-김학렬은 따로 논다. 아니 박정희가 보이지 않는다.

박정희와 그의 시대에 관한 통찰도 빠져있고, 그 시대의 성취와 그걸 가능하게 한 원리에 대한 애정 어린 규정도 없다. 왜 이런 당혹스러운 결과가 나왔을까? 나는 혐의를 갖고 있는데, 저자 김정수가 박정희에 대해 적지 않은 적대감을 품고 있거나, 아니면 잘 모르는 탓이다.

일테면 개발연대 대한민국이 성장-분배에서 세계 최고였다고 1993년 세계은행이 공인했는데, 저자는 그 사실을 애써 외면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연평균 9% 경제성장은 물론 세계 최고의 동반성장까지 이뤄낸 이 기적을 인정하고 그 원리를 찾아내는 게 옳았는데 그에겐 그런 실사구시적 태도가 없다. 그런 몰이해에 눈이 가리면 박정희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까 저자 김정수는 "박 정권은 산업화를 빙자한 개발독재에 지나지 않는다"(174쪽)는 식의 좌파적 발언까지 툭툭 내뱉는다. 지나가는 소리이고, 무심코 쓴 표현이겠지만, "박통은 자기가 믿었던 부하에게 살해되었다"(357쪽)는 대목도 등장해 우릴 아연케 한다.

그런 건 결과적으로 아버지를 욕되게 하는 모양새가 아닐까? 그러저런 이유로 <내 아버지의 꿈>은 혼란스러운 책인데, 그건 저자의 한계만은 아니다. 그는 서울대와 미 존스 홉킨스와 부르킹스연구소 등에서 배우고 일했지만 주류 경제학의 도그마에 갇혀 있는 탓도 크다. 주류경제학의 도그마는 우선 시장이 하나님이다. 때문에 그들은 정부의 시장개입을 질색한다.

반면 박정희에게 시장은 물론 정부와 기업의 능동적 역할이 동시에 중요했다. 그런 이유로 헛똑똑이 경제학자들에게 한강의 기적은 두통거리다. 여기에 한국사회를 30년 넘게 지배한 좌파의 영향이 겹치면서 저자 김정수에게 박정희의 실체는 내게 가려졌다고 나는 판단한다.

유감천만이다. 그런 실망스러운 결과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런 점은 3년 전 나왔던 책 <신현확의 증언>(메디치미디어 펴냄)에서 나왔던 한계였다. 그 책 역시 아들이 썼다. 그래서 부제가 '아버지가 말하고 아들이 기록한 현대사의 결정적 순간들'이다.

그럼에도 <내 아버지의 꿈>은 흥미롭게 읽힌다. 제1회 고등고시 수석(1950년)으로 출발해 영혼이 살아있던 한 위대한 경제관료의 초상화는 영원히 빛난다. 이 책의 등장으로 그는 비로소 같은 시대를 풍미했던 '불도저 서울시장' 김현옥에 못지 않는 훌륭한 캐릭터로 재부각됐다. 일부 부족한 대목, 결함이 있는 대목은 다음 기회에 보완하면 되지 않을까? /조우석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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