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교분리란 국교(國敎) 안 만든다는 원칙일 뿐
탈정치란 사악하고 부정의한 권력이 원하는 것
   
▲ 조우석 언론인
정치와 종교 사이의 긴장이 지금 한국사회를 압박하고 있다. 구속 수감된 한기총 대표회장 전광훈 목사의 건강 이상설이 며칠 전 일부 우파 매체를 통해 제기된 데 이어 법무부가 그게 사실 무근이라며 바로 반박한 바 있다. 이 소동의 앞뒤 배경을 우리 모두 다 안다.

태극기 애국세력을 상징하는 인물을 구치소에 가둔 채 4월 총선을 치르고 싶어 하는 수상쩍은 권력과, 이에 반발하는 기독교 사이의 갈등이다. 정치-종교 갈등은 종교 집회를 둘러싼 논쟁에서도 확인된다. 청와대를 포함한 권력은 중국 폐렴이 기승을 부리는 지금 강제력을 동원해서라도 종교집회를 막겠다는 것이고, 교회는 그걸 종교 탄압이라고 맞받아친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가? 그건 기독교가 체제 수호의 마지막 보루이기 때문인데, 차제에 나는 정치-종교 문제에 대한 근본적 성찰을 하고 싶다. 이 글의 궁금증은 이렇다. 정교는 정치에 비판하거나 간여할 수 없으며, 간여하더라도 선을 지켜야 한다는 널리 퍼진 주장은 과연 올바른가?  

결론을 말하면 그건 미신이다. 그걸 굳게 믿은 채 현실의 모순과 고통을 외면한 채 기도만 올리자는 교회가 상당수라는 게 현실이다. 대형교회일수록 교회와 교인이 정치에 대해 말하면 큰일 나는 것으로 생각하고, 그래서 종종 종종 교회 내부의 갈등으로도 번진다. 이런 상황에서 교회 안팎에서 영향력이 큰 정동수 목사(인천 사랑침례교회)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헌법 규정의 문제

"많은 교회와 목사 그리고 성도들이 모든 걸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만 하자고 한다. 예수가 내일이나 내년에 온다는 게 확실하다면 그동안 어찌되든 견디고 살겠지만, 그건 아무도 모르지 않느냐? 이 상황에서 눈앞 현실의 모순과 고통에 담대하게 발언하는 건 기독교인의 의무다."

그에 따르면, 정치에 대해 말하면 큰일 나는 걸로 아는 배경에는 정교분리란 큰 원칙을 잘못 이해한 탓도 크다. 정교분리란 국교(國敎·국가종교)를 만들지 않는다는 원칙이란 주장이 백번 맞다. 그래야 종교자유를 보장받을 수 있기 때문인데, 단 소수의견이 일부 없지 않다. 정교분리원칙이란 종교단체에 대해 정치개입 금지를 선언한 것이란 또 다른 견해가 그것이다.

그런 오해와 혼란을 부추기고 있는 게 우리 헌법이다. 현행 헌법 제20조 2항은 "국교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고 규정했는데, 이건 국교 불인정과 함께 종교단체에 대해 정치개입 금지를 동시에 주문하고 있다. 다분히 절충주의적 규정이 아닐 수 없다. 

때문에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는 괜한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사족일 따름이다. 이 규정을 보고 교회의 탈정치를 말하는 건 권력의 요구에 순응하는 바보짓이자, 큰 패착이다. 그리고 좌파는 이 조항을 가지고 장난치고 있다. 올해 초 전광훈 목사를 구속하라는 국민청원을 진행하면서 헌법 제20조 2항의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고 규정을 들고 나온 게 우연이 아니다.

저들은 이 조항을 들먹이면서 전 목사와 한기총이 바로 이 헌법 조항을 어겼으니 처벌해달라고 주장했는데, 그건 코미디 중의 코미디다. 오만방자한 저들은 한기총 전광훈 대표회장의 발언과 행동을 기독교 근간을 무너뜨리는 신성모독이라고까지 떠들어대니 그야말로 적반하장이 아닐 수 없다. 

왜 그럴까? 쉽게 말해 가정과 사회의 확대가 국가이며. 따라서 정치는 어떤 특이한 제3의 영역이 아니다. 정치는 나라 살림이므로 당연히 국민 자신이 챙겨야 한다. 그래서 모든 국민은, 기독교인이건 불교도이건 정치에 대해서 의견을 말할 수 있다.

그런 맥락에서 정치 얘기 말자는 교회에서 선거 때가 되면 "투표는 잘하자"고 잠시 떠들어대는 건 심각한 모순일 뿐이다. 더욱이 문재인 정권처럼 안보 파괴를 통한 남북연방제를 획책하는 수상한 권력 앞에 이의 제기를 하는 건 너무도 당연한 국민적 의무가 아닐까?

   
▲ 구속 수감된 한기총 대표회장 전광훈 목사의 건강 이상설이 며칠 전 일부 우파 매체를 통해 제기된 데 이어 법무부가 그게 사실 무근이라며 바로 반박한 바 있다. 사진은 전광훈 목사(연합뉴스)와 서울구치소에 제출한 진단서.

한국교회는 '회칠한 무덤'

상식이지만, 미국 교회도 그렇게 돌아간다. 미국은 여전히 '회칠한 무덤'인 한국 교회와 달리 현실 정치에 민감하고 교회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선거에 개입하고 성도들을 독려한다. 미국 장로교에서 가장 유명한 조직신학자 중 한 사람인 웨인 그루뎀(Wayne Grudem)의 <성경과 정치>도 결국은 그 입장을 지지한다. 왜 그런가? 

미국을 세원 건 기독교인이었다. 그들이 국가를 세운 것 자체가 고도의 정치적 행위에 해당한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자기들의 자유 헌법에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인권, 자유, 정의, 복지 이런 모든 고귀한 가치들을 다 집어넣었다. 

이 고귀한 가치들은 상당 부분 성경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그게 잘 굴러가는지를 따져보고 감시하는 정치개입이란 너무도 상식에 속한다. 이런 명백한 사실 앞에 크리스천들이 정치적인 문제에 입을 다물어야 한다는 엉터리 주장은 너무도 어리석거나 사악한 것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더욱이 대한민국의 번영은 올바르고 튼튼한 기초에서 나왔고, 그 기초는 자유 민주주의 자유시장경제라는 게 상식일진대, 교회와 신자들의 정치 관여는 너무도 자연스러운 것이다. 미국이나 우리만 그런 게 아니다. 종교개혁가 캘빈의 경우 제네바의 시장이었으며, 극악무도한 히틀러 암살을 도모했던 신학자인 본 회퍼도 목사 신분이었다.

한국도 다르지 않다. 한국 개신교를 대표하는 고 한경직 목사는 1945년 9월 신의주제일교회 윤하영 목사와 더불어 '기독교민주당'을 창당했다. 그건 남북 통틀어 최초의 정당으로 꼽힌다는 걸 차제에 유념해두자. 장로교 목사님인 함태영 목사도 이승만 휘하의 부통령을 역임했다.

그 결과 제헌국회의 경우 198명의 국회의원 가운데 무려 25%에 해당하는 50명 정도가 기독교 신자였고 그중 이윤영, 오택관, 이남규, 오석주 등의 네 분은 목사 신분이었다. 조금 더 올라가면 3.1운동 당시 유관순도 위대한 기독교인이었다. 맞다. 기독교 교인들은 우파도 좌파도 아니다. 제발 우리의 '종교의 자유'를 지키자는 것이고, 그런 움직임은 너무도 당연하다.

힘든 시기다. 이 국면에서 구속 수감된 한기총 대표회장 전광훈 목사의 건강 이상설도 걱정이고, 청와대를 포함한 권력이 강제력을 동원해서라도 종교집회를 막겠다는 것도 큰 무리수다. 이럴 때일수록 원칙을 살펴야 하다. 기독교는 정치에 간여할 수 없다는 엉터리 주장은 깨져나가야 옳다. /조우석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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