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산업개발, 아시아나항공 유상증자 무기한 연기…포기설 무성
이스타항공, 산업은행 금융지원 심사 통과 못해…제주항공 부담 늘어
한국항공협회 "정부, 무담보 저리 대출 확대·지급보증 해달라"
전문가들 "항공산업 살리기, 국가기간산업 관점서 봐야"
[미디어펜=박규빈 기자]글로벌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며 항공업계가 쇼크 상태에 빠진 가운데 아시아나항공과 이스타항공 등 인수합병(M&A)도 불협화음을 내고 있어 항공산업 생태계 자체가 큰 위기에 봉착했다. 정부의 적극적 관심과 지원이 절실한 상황이다.

   


6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HDC현대산업개발은 지난 3일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아시아나항공 주식 61.5%를 취득하는 기업결합을 승인받았다. 경쟁 당국이 M&A에 청신호를 켜줬음에도 불구하고 HDC현대산업개발은 웃지 못하는 모양새다.

HDC현대산업개발은 오는 7일로 예정됐던 1조4700억원 수준의 유상증자를 무기한 연기한다고 발표했다. 아시아나항공은 유상증자 일정 변경에 대해 해외 6개국에서 진행 중인 시장 감시 당국의 기업 결합 심사를 이유로 들었지만 시장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다. 유상증자 일정이 '당사자들이 합의하는 때'로 변경됐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HDC현대산업개발이 표면적으론 인수 작업에 문제가 없는 척 하지만 무기한 연기해 사실상 인수 자체를 포기하는 수순을 밟은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돌고 있다.

HDC현대산업개발이 일정을 미루는 이유로는 아시아나항공의 부실한 재무구조가 꼽힌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DART)에 따르면 아시아나항공은 지난해 영업손실 4437억원, 당기순손실 8179억원을 기록했다. 이 같은 실적 부진은 코로나19가 종식될 기미를 보이지 않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에어서울·에어부산·아시아나IDT·아시아나에어포트 등을 거느린 아시아나항공의 적자 규모가 더욱 커진다는 것은 기업 가치가 훼손되고 있다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결과적으로 HDC현대산업개발이 시장 적정가보다 비싸게 사들이게 된 셈이다.

한국산업은행을 위시한 채권단 역시 이를 중차대한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 어렵사리 성사된 M&A인데 차입금에 대해 HDC현대산업개발이 상환 유예신청 등 금융지원을 해올 가능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대로 둘 경우 국내 2위 항공사가 오갈 데가 없어져 그대로 파산의 길을 걸을 것이란 분석이 나와 기획재정부와 산업은행 개입 여부에 관심이 쏠린다.

   


제주항공의 이스타항공 인수도 매끄럽게 진행되지 않는 건 마찬가지다.

지난달 2일 제주항공은 이스타항공 최대주주 이스타홀딩스와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했다. SPA에 따르면 제주항공은 오는 29일 이스타항공 주식 497만1000주(51.17%)를 인수하며 이스타홀딩스 측에 545억원을 넘기게 된다.

그러나 제주항공 역시 코로나19의 장기화로 인해 자금사정이 좋지 않아졌고, 전 노선 셧다운을 발표한 이스타항공은 40% 정리해고·항공기 12대 반납을 공지했다. 

이런 와중에 산업은행은 지난 5일 제주항공에만 2000억원의 인수금융을 지원하고 이스타항공에 대한 구제금융을 거절했다. LCC 중 유일하게 지원금을 못 받는 것이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이스타항공이 금융지원 심사를 통과하지 못했다"며 "인수자인 제주항공을 통해 간접 지원이 이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스타항공은 지난해 말 자본잠식상태에 빠졌다. 사실상 빈 껍데기 뿐인 이스타항공을 제주항공이 떠안게 된 셈이다. 2000억원을 인수 자금으로 지원한다 해도 정상화가 가능할지는 의문이다. 이스타항공은 2월 직원 급여를 40%만 지급했고, 그나마도 연말정산금도 못 준 상태다. 3월부터는 디폴트를 선언해 급여를 아예 주지 못하는 실정이다. 또 날이 갈 수록 운영비 등 적자 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건 덤이다.

하루가 시급한 이스타항공으로 하여금 기업결합심사 승인까지 기다리라는 것이 정부 당국의 조처인데, 사실상 금융지원을 하지 않겠다는 것과 다름없다는 게 항공업계 분석이다. 아울러 당국의 태만한 업무 처리에 제주항공의 부담도 더욱 커질 것이란 게 항공업계 중론이다.

한편 한국항공협회는 지난 3일 대정부 입장문을 통해 "정부가 전체 항공사에 대한 무담보 저리대출을 확대하고, 지급보증을 서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공학부 교수는 "박근혜 정부 시절 한진해운 파산을 막지 않아 결과적으로 국내 기업들이 머스크 등에 훨씬 비싼 물류비를 지출하고 있다"며 "항공산업 살리기는 국가기간산업 관점에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허희영 한국항공대학교 항공경영학부 경영학과 교수는 "항공운송은 네트워크 사업이기 때문에 공장폐쇄 후 기계를 재가동하는 제조업과는 다르다"며 "운송망은 한번 붕괴되면 고객이 떠난 자리를 복구하기가 어렵다"고 진단했다.

허 교수는 "금융당국은 항공교통이 왜 기간산업인지를 생각해야 한다"며 "항공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가 관계 부처와 정치권을 설득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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