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은 지원 대책 속도가 문제…경영간섭 우려 등 조건부 지원 시장 불신 씻어야
정부가 22일 5차 비상경제회의에서 90조 원에 이르는 기간산업 지원 및 고용안정 대책을 포함한 '코로나 뉴딜 정책'을 발표했다. 코로나19의 직접적 타격을 발원지로 꼽히는 중국에 이어 가장 먼저 맞았지만 지원책은 우왕좌왕했다. 실기에 대한 우려가 높았지만 다행스런 일이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늦었지만 속도로 따라 잡아야 한다. 그런데 첫 단추부터 꿰는 모양새가 영 시원찮다. 코로나19 쇼크로 글로벌 경제는 '시계 제로'다. 미국을 비롯한 각국이 난국타개를 위해 천문학적 재정을 투입하고 있다. 

한 나라 경제의 토대가 되는 기간산업이 속속 멈춰 서고 있다. 실기를 하면 재건은 고사하고 국제사회에서 도태된다. 우리나라 기간산업은 대부분 대기업 중심이다. 항공·해운·조선·자동차·기계·전력·통신 등 초기 거대자본과 지속적인 연구 개발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이유 때문이기도 하다. 

문 정부는 그동안 대기업을 적폐인양 취급해 왔다. 그 어느 정부보다 반기업 정서가 횡행했다. 자유시장경제의 틀을 벗어나 규제로 일관했다. 코로나는 발등의 불을 보게 만든 계기다. 기간산업이 무너지면 국가 경제가 무너진다. 문 정부가 내세우는 일자리는 기업 고용 없이는 모래성 쌓기다.  

   
▲ 정부가 22일 5차 비상경제회의에서 90조 원에 이르는 기간산업 지원 및 고용안정 대책을 포함한 '코로나 뉴딜 정책'을 발표했다. 이번 기간산업안정기금은 긴급재난지원금의 전철을 밟아서는 안된다. 밤샘 줄서기에도 분통만 터트리게 한 소상공인 대출의 실수가 재연되어서도 안된다. /사진=청와대

대기업을 지원하겠다는 문 정부의 정책은 환영한다. 문제는 꼬리를 밟고 있다는 것이다. 40조원의 기간산업안정기금은 산업은행이 자금을 빌려 주고 정부가 지급 보증을 하는 방식이다. 조건이 있다. '고용총량유지'와 '정상화 이익의 공유' 등이다. 

미증유의 위기 극복에 나서는 정부의 입장에 일견 이해는 간다. 하지만 자칫 지푸라기 던져 주고 봇짐 내 놓으라는 식으로 변질될 우려도 있다. 고용유지가 절박한 것은 삼척동자도 안다. 생존기로에 선 기업에게 고용유지는 희망고문이다.  

정부의 지원 조건은 이뿐이 아니다. 지원금액의 15~20%를 주식연계증권으로 확보해 경영이 정상화 되면 회수하겠다는 것이다. 방향은 맞다. 지금껏 수조원의 혈세를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의 지원경험이 말한다. 그럼에도 미심쩍은 건 이를 빌미로 경영 개입에 나설까 하는 합리적 의심이다. 이미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를 강화했다. 우려를 씻기에는 시장의 의혹과 불신이 크다.

문 대통령은 22일 비상경제회의에서 "모든 방식을 총동원해 기간산업이 쓰러지는 것을 막겠다"고 밝혔다. 여기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코로나 사태로 돈줄이 말라가는 항공·자동차·해운 등 업종에는 이 기금 수혈로 일분 숨통은 트일 전망이다. 

기업들은 일단 환영 입장이지만 속내는 복잡하다. 항공사는 지원을 빌미로 국유화하려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정부 대책에 "기업이 정상화되면 지원 자금의 일부를 주식으로 전환하는 형태(전환사채 등)로 이익을 국민과 공유해야 한다"는 내용 때문이다. 

4개월간 33조원의 유동성 공급을 주장해온 자동차 업계도 일단 환영이다. 하지만 부품업체는 그림의 떡이라는 반응이다. 대기업과 완성차 중심으로 자금이 뿌려지면 2·3차 협력업체는 그 사이 무너진다며 부실 대책이라고 항변한다. 정부의 정확한 진단이 필요한 지점이다.  

뒤늦었지만 정부가 내놓은 기업지원책은 차질 없이 진행되어야 한다. 긴급재난지원금을 놓고 주먹구구식으로 시간낭비를 하고 있는 모습을 우리는 지금도 목도하고 있다. 표를 얻기 위한 포퓰리즘 경쟁에 애꿎은 국민들만 볼모가 돼 있다. 나라 곳간지기가 안 보인다. 긴급재난지원금은 아직도 미완의 숙제다. 

돈줄 막힌 국가기간사업의 비명은 이미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그동안 정부는 대기업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지켜보기만 했다. 전폭적 지원에 나서는 선진국들의 뒤를 밟고 있다. 다행스럽게 이제라도 방향을 잡은 만큼 속도가 중요하다. 

한 발 늦게 출발했지만 전력투구로 한 발 앞서야 한다. 항공업계나 자동차업계 모두 일시적 유동성 위기를 넘길 수 있도록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 한다. 이런 위기 상황에서조차 혹여나 기업 길들이기를 생각한다면 그야말로 자가당착에 빠진다. 기업도 잃고 일자리도 잃고 국가경쟁력마저 잃는다. 

지금은 아무도 가보지 않는 초유의 위기상황이다. 비상한 대책으로 임해야 한다. 기업이 생로를 찾을 수 있도록 최대한 자율성을 보장해야 한다. 천재지변처럼 다가온 코로나 재앙에 기업의 잘못은 없다. 지원을 대가로 옭아매는 것은 국가의 의무를 배임하는 것이다. 

이번 기간산업안정기금은 긴급재난지원금의 전철을 밟지 않아야 한다. 밤샘 줄서기에도 분통만 터트리게 한 소상공인 대출의 실수가 재연되어서도 안된다. 정부의 신뢰와 여야의 초당적인 협력 속에 속전속결의 정치력이 요구된다. 기업이 무너지면 경제가 무너지고 삶도 무너진다. 지금 문재인 정부에겐 더 이상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미디어펜=편집국]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