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업계 "HDC현대산업개발, 러시아 정부 핑계로 인수 사실상 포기"
미래에셋대우, 중국 안방보험과 7조원대 계약 파기해 법정공방
   
▲ HDC현대산업개발·미래에셋대우 컨소시엄이 유동성 위기로 아시아나항공 인수 절차를 미루고 있고, 아시아나항공 역시 1분기 영업손실이 2000억원을 넘어 M&A 절차가 길어질 전망이다.


[미디어펜=박규빈 기자]HDC현대산업개발·미래에셋대우 컨소시엄이 유동성 위기로 아시아나항공 인수 절차를 미루고 있고, 아시아나항공 역시 1분기 영업손실이 2000억원을 넘어 인수합병(M&A) 절차가 길어질 전망이다. 한국산업은행·한국수출입은행발 구제금융으로 인해 아시아나항공 지분 25% 가량이 정부 소유가 될 것으로 보여 '주인 없는 기업'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18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아시아나항공은 올 1분기 매출 1조2937억원, 영업손실 2920억원, 당기순손실 6832억원을 기록했다.

세계 각국의 한국인 입국 제한(입국중단 151개국·시설격리 14개국·검역강화 18개국·운항중단 6개국)에 따라 여객 부문 수요가 2월부터 급감했고, 국제선 운항편수가 기존 계획 대비 8% 수준에 머물렀기 때문이라는 것이 이번 대규모 영업 적자의 배경이라는 설명이다.

실적 악화와 함께 아시아나항공 매각 절차 역시 큰 어려움에 직면했다. 제주항공을 제치고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겠다던 HDC현대산업개발·미래에셋대우 컨소시엄 또한 유동성 위기로 인수를 미룬 상태이기 때문이다.

   
▲ 현대산업개발 로고./사진=현대산업개발


HDC현대산업개발은 지난해 12월 27일 아시아나항공 주식 61.5%(금호산업 보유분 30.77% 포함) 취득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올해 초에는 한국 공정거래위원회를 비롯, 아시아나항공이 영업 중이던 미국·중국·러시아·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터키 등 해외 6개국에 기업결합을 신고했다.

미국 경쟁 당국이 승인함에 따라 해외 기업결합 승인은 '9부 능선'을 넘었다던 것이 업계 중론이었으나 돌연 HDC현대산업개발은 지난달 30일로 예정됐던 주식 취득 일정을 '거래종결 선행조건이 모두 충족되는 날부터 10일이 경과한 다음 날 혹은 당사자들이 합의하는 날'로 미룬다'고 밝혔다. 또 러시아 경쟁 당국이 승인을 내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인수 연기에 대한 설명도 곁들였다.

그러나 항공업계에서는 HDC현대산업개발이 러시아 정부를 탓하며 인수를 미루는 모양새지만 사실상 포기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당초 HDC현대산업개발은 각국 경쟁 당국의 기업결합승인을 얻어내면 곧바로 아시아나항공 1조47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에 참여해 산업은행·수출입은행 차입금 1조1700억원을 갚을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됐다. 또한 약 3000억원 수준의 추가 공모채 발행과 인수금융 등을 통해 나머지 인수 자금을 마련하고, 지난달 말 주금납입과 동시에 인수 절차를 모두 마무리한다는 방침이었다.

   
▲ 인천국제공항 주기장에 멈춰 서있는 아시아나항공 여객기들./사진=연합뉴스


하지만 아시아나항공의 부채비율도 지난해 말보다 큰 폭으로 증가해 채권단에 내야 할 차입금도 1조1700억원을 훌쩍 넘길 것이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글로벌 코로나 사태가 길어지고, 지난해 아시아나항공 전체 영업손실이 4437억원, 당기순손실이 8179억원에 달하자 투입해야 할 돈이 더 많아질 것이라는 계산이 나왔고, 결과적으로 적정가격 대비 더 비싸게 주고 인수하게 되는 꼴이 돼 HDC현대산업개발이 심각한 딜레마에 빠졌다.

어렵사리 딜을 성사시킨 채권단도 이 같은 상황을 보다 못해 지원 사격에 나섰다. 지난해와 올해 4월 산은과 수은은 아시아나항공에 대해 총 3조3000억원을 대출해주기로 의결했다. 올해 도래하는 아시아나항공의 시장성 차입금은 2조5000억원 규모이며, 매월 나가는 고정지출이 2000억원이다.

국책은행 중심의 채권단이 아시아나항공에 대해 거액을 쏟아부었으나 HDC현대산업개발이 환입해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이는 곧 HDC현대산업개발의 부채가 엄청나게 커진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아시아나항공 인수 경쟁자였던 애경그룹 제주항공보다 1조원을 더 써냈기 때문에 HDC현대산업개발의 고민과 속쓰림은 더욱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HDC현대산업개발그룹이 인수를 포기할 경우 인수금액의 10%인 계약금 2500억원은 공중분해된다. 일각에서는 그럼에도 인수 중단을 선언하는 것이 재무건전성을 위해서라도 더 나은 방법이라는 이야기가 돌고 있다.

   
▲ 미래에셋자산운용 로고./사진=미래에셋자산운용


아시아나항공 인수전에서 돈줄 역할을 했던 미래에셋그룹은 현재 중국 안방보험과의 법적 분쟁을 벌이고 있다. 이는 미래에셋이 안방보험 소유의 7조원대 미국 내 15개 고급호텔 인수계약을 취소했고, 안방보험이 계약 불이행에 대해 미국 현지 법원에 소송을 낸 것에 기인한다. 이 외에도 미래에셋그룹은 프랑스 파리 소재 마중가타워에도 1조원 이상을 투입했지만 적절한 투자자를 찾는데 실패했고, 재판매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래에셋대우 홍보실 관계자는 "현재 당사는 현금 4조8000억원을 보유하고 있어 유동성 위기는 없다"며 "아시아나항공 인수 작업에 있어 우리가 추가로 납부해야 할 액수는 계약금 500억원을 포함한 5000억원으로, 전혀 부담되지 않는다"고 전했다.

이에 더해 "안방보험과의 분쟁은 계약금 7000억원을 돌려받을 수 있느냐의 문제"라며 "설령 패소하더라도 충분한 현금을 보유하고 있어 아시아나항공 인수 건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덧붙여 "금산분리 원칙에 따라 FI(재무적 투자자)로 참여한 우리는 HDC현대산업개발이 인수하게 되면 공동 투자를 하게 되는 것일 뿐"이라고 했다.

따라서 현재 HDC현대산업개발-미래에셋대우 컨소시엄의 아시아나항공 인수 작업이 진척을 보이지 못하는 것은 아닌 전적으로 HDC현대산업개발 측의 문제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편 산은·수은이 구제금융을 통해 떠안고 있는 아시아나항공 채권을 전환사채(CB)로 바꿀 경우 정부 당국은 아시아나항공 지분 25%를 갖게 된다. 사실상 민영 항공기업이 공기업화 되는 것인데, 방만한 경영이 우려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허희영 한국항공대학교 항공경영대학 경영학부 교수는 "애초 계획대로 HDC현대산업개발과 미래에셋이 잔금을 내고 사가는 것이 좋겠으나, 인수자들이 난색을 표함에 따라 불확실성이 커졌고, 상황이 여의치 않아졌다"며 "산업은행 역시 아시아나항공 지분을 청산하기 어려워 발목을 잡힌 것은 마찬가지"라고 진단했다.

허 교수는 "결국 아시아나항공은 대우조선해양의 전철을 밟게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부연했다.

항공업계에서는 아시아나항공 방정식의 해법은 시장에 있다고 말한다. 1990년대~2000년대 초, 미국 노스웨스트항공·US에어웨이즈·컨티넨탈항공·에어트랜·버진아메리카 등 수없이 많은 항공사들이 파산했다. 이 당시 델타항공과 유나이티드항공이 M&A를 함으로써 시장이 재편됐고, 현재 미국 항공 시장은 4개 항공사가 중심이 돼있는 상태다. 따라서 이와 같이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그림이라는 것이 항공업계의 주장이다.

항공업계 한 관계자는 "영국 브리티시 에어웨이즈·프랑스 에어프랑스·독일 루프트한자·호주 콴타스 항공 등 우리나라보다 인구가 많고 국토 면적이 넓은 나라들도 FSC는 1개사 뿐"이라며 "전라도 항공 기업도 있어야 한다는 정치·정책 논리가 민항기 시장에 개입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피력했다. 이어 "미국의 사례를 보듯 구조조정은 시장에 맡겨야 한다"며 "동종 업계 내 M&A가 이뤄지는 것이 이상적인 모습"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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