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합의체 판결 뒤집을 정도로 직권남용 입증해야" vs "당시 검찰수사에 강압있었나 조사 필요"
[미디어펜=김규태 기자] 한명숙 전 총리 사건에 대한 재심 여부를 놓고 여권이 군불을 때고 나섰지만 법조계는 신중한 입장이다.

한 전 총리는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대법원 확정 판결을 받고 2년을 복역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그동안 여당 내에서 맴돌던 '한명숙 결백론·피해자론'을 언급하며 재조사하자는 주장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수사대상으로 삼자는 얘기까지 나온다.

집권여당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는 재조사 요구와 관련해 지난 22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를 제기하는 것이 왜 오만한 것인가"라고 반문하면서 "검찰 수뇌부도 한만호 씨 비망록에 육성까지 공개가 됐으니 '우리는 무결점 수사를 했다'고 생각하지 말고 의심을 갖고 한번 조사를 해보라는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김 원내대표는 "사법구조를 보면 재심이 가장 어려운 과정이다. 법률적으로 보면 어렵다"며 말을 아꼈다.

박주민 민주당 최고위원은 지난 21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공수처가 설치되면 수사범위에 들어가는건 맞다. 공수처 판단에 달린 문제"라고 지적했다.

법조계는 한 전 총리의 불법정치자금 수수 사건의 재심 요건은 형사소송법 420조에 따라 증거 위변조 등 7가지로 엄격해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을 내놨다.

   
▲ 사진은 한명숙 전 총리가 2015년 8월 24일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 앞에서 지지자들을 만나 인사를 한 뒤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다./사진=연합뉴스
형사소송법 420조(재심이유)에 따르면 재심 청구가 가능한 경우는 증거물이 위조 또는 변조인 것이 증명됐을 때, 증언·감정이 허위인 것이 증명됐을 때, 원판결이 인정한 죄보다 경한 죄를 인정할 명백한 증거가 새로 발견된 때, 원판결 공소제기에 관여한 검사가 그 직무에 관한 죄를 범한 것이 확정판결에 의해 증명된 때 등이다.

한 전 총리 경우는 '검찰의 강압수사로 한 전 총리에게 뇌물을 줬다고 허위진술을 했다'는 내용이 담긴 고 한만호씨의 옥중 비망록이 논란의 중심에 놓여있다.

익명을 요구한 고등법원 판사 출신의 한 법조인은 23일 미디어펜과의 인터뷰에서 "소위 한만호 비망록은 이미 한명숙 재판에서 다루었던 사안"이라며 "새 증거도 아니고 대법관 전원이 검토해 채택된 증거다. 여당이 노리는 지점은 증거 위변조가 아니라 오히려 관련 검사의 직무에 관한 죄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는 "공수처로 사건 관련 검사의 해당 직무에 관한 죄를 어떻게든 밝혀내서 뒤집겠다는 계산인데, 당시 수사팀이 고 한만호씨를 회유하거나 협박해 허위진술을 받아낸 것을 입증하고 이를 판결로 확정해서 한명숙 사건의 재심 절차를 밟겠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그는 "이를 친정권 공수처가 실행에 옮기면 재심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고 한만호씨는 지난 2018년 출소 직후 숨졌다. 비망록에 담긴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를 찾기 쉽지 않을 것이다. 수사팀의 회유나 협박도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또다른 법관 출신 한 법조인도 이날 본지의 취재에 "대법관 13명 전원이 뇌물액 9억 중 3억에 대해 유죄로 봤던 전원합의체 판단이 뒤집힐 정도로 담당 검사의 직권남용 행위가 명백해야 한다"며 "재판 증거채택 과정을 돌이켜보면 녹록치 않다. 공수처가 무슨 수를 쓰더라도 직권남용 증거를 확보하기 힘들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민주당 입장에서는 공수처 밖에 유효한 카드가 없다"며 "여권은 재심 가능성을 흘리면서 재조사, 공수처 조사 카드부터 꺼내들어 '당시 검찰수사가 잘못됐다'는 프레임으로 가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한편 서울지방변호사회 소속 한 법조인은 22일 본지의 취재에 "공수처법에 따라 공수처는 검사의 직권남용 등 직무에 관한 범죄를 수사할 수 있다"며 "여당이 정치적 프레임을 짰다는 얘기는 지나친 지적이다. 판결을 뒤집기 보다는 당시 관련수사가 억울한 피해자가 없도록 법에 따라 적절히 잘 다뤄졌는지 살펴보는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한 전 총리 사건에서 항소심과 대법원은 고 한만호씨의 진술을 비롯해 한 전 총리 동생이 받은 수표와 채권회수목록 등 물증까지 고려해 유죄를 인정했는데, 문제의 비망록은 피고인이 아니라 검찰이 확보해 제출한 증거"라며 "회유 또는 강압적인 협박이 없었을 것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또한 그는 "사건에 대해 법무부가 진상조사단을 꾸려 당시 검찰수사에 실제 강압이 있었는지 살필 수 있다"며 "공수처 출범 전 법무부 차원의 조사도 나쁘지 않다"고 언급했다.

법조계에 따르면 재심 요건은 7가지로 제한될 정도로 매우 엄격하다. 여권 일각의 한명숙 사건 재조사, 공수처 수사, 재심 청구 주장이 어디까지 실현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