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박규빈 기자]글로벌 코로나19 사태의 장기화로 유동성 위기에 빠진 대한항공이 서울 종로구 송현동 부지 등 유휴자산 매각에 나선 가운데 서울시가 시가보다 싼 값에 호텔 부지를 인수하고자 공원 조성안을 조성하면서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이 난색을 표하고 있다.
29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서울시는 지난 27일 도시·건축공동위원회를 열고 북촌 지구단위계획 내 특별계획구역으로 지정된 종로구 송현동 49-1번지 부지 일대를 문화공원으로 용도변경하는 안을 포함한 결정안 자문을 상정했다.
서울시는 다음달 내 열람 공고와 같은 절차를 밟아나가며 문화공원을 조성한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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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특별시 종로구 송현동 49-1번지 소재 대한항공 소유 호텔 부지./캡쳐=네이버 지도 |
문제는 서울시의 계획이 정작 땅 주인인 대한항공의 의사와는 전혀 무관하게 추진되고 있다는 점이다. 구 주한미국대사관 직원 숙소 자리였던 광화문·경복궁 옆 3만6642㎡ 규모의 송현동 부지는 2002년 6월 부지의 소유권이 국방부에서 삼성생명으로 넘어갔다. 이후 삼성생명은 2008년 대한항공에 2900억원에 매각했고, 대한항공은 이를 호텔 포함 복합문화단지로 탈바꿈 하고자 했으나 서울특별시교육청의 학습권 침해 논리 등 관련법에 가로막혀 물거품이 됐다.
광활한 대지에 20여년째 아무것도 지어지지 않아 사실상 방치된 현재 이곳은 최소 5000억원, 입찰 흥행 시 6000억~7000억원에 팔릴 것이라는 게 시장의 평가다. 대한항공은 코로나19 여파로 직격탄을 맞아 월 평균 운영비가 6000억원에 달하는 등 유동성 위기를 맞고 있다. 때문에 매입자를 찾아 적정가격에 털어야 하지만 매수 의사를 적극적으로 밝히고 있는 서울시는 매입가를 2000억원 미만으로 희망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항공업계에서는 "서울시가 생떼를 부려 대한항공이 송현동 부지를 제값 받고 팔기 어려워진 모양"이라며 "시 당국이 대한항공의 경영난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한 항공업계 관계자는 "취득 원가보다 낮게 팔라는 게 말이냐"며 "봉이 김선달도 울고 갈 만한 일"이라며 서울시를 강도 높게 힐난했다.
매입 대금 지급 역시 거래 시점이 아닌 자체 감정평가와 예산 확보 과정을 거쳐 2년 후를 고려한다는 점도 문제다. 2년 후에는 송현동 부지가가 현재 평가액인 5000~7000억원보다 훨씬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는만큼 12년 전 해당 부지를 2900억원에 취득한 대한항공은 어이가 없다는 반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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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사진=대한항공 통합커뮤니케이션실 |
실제 이를 반영하듯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은 전날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장의 장인 고(故) 김봉환 전 국회의원의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나오는 길에 받은 기자들의 질문에 "송현동 부지가 (적정가에) 팔리지 않을 경우 계속 소유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전해진다.
당초 대한항공은 한국산업은행과 한국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 채권단으로부터 1조2000억원을 긴급 수혈받으며 송현동 부지 매각을 통해 해결책을 마련하고자 했다. 하지만 서울시 계획이 암초로 작용해 셈법이 다시금 복잡해진 만큼 조 회장은 또 다른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관련, 지난 26일 대한항공은 최대주주로 있는 지상조업사 한국공항의 보통주 전량(188만5134주, 59.54%)을 담보로 제공하는 계약을 체결하며 근질권을 설정했다. 대한항공의 한국공항 주식 보유분은 대략 824억원으로 평가된다.
대한항공은 자구안 마련으로 압박하는 채권단과 싼 값에 땅을 내놓으라는 서울시 양측의 압력에 시달리고 있다. 항공업계에서는 대한항공의 추가 자금 확보 여력이 충분하지 않은 만큼 조 회장이 시장의 예상대로 기내식과 항공정비(MRO)사업부를 매각할 가능성도 점치고 있다.
[미디어펜=박규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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