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짓' '시비' 김종인 발언에 "전제군주식 당 운영" 비판
"김종인 식 '자유 극대화'는 소극적 자유 아닌 사회주의"
"저항은 새로운 혁신 방법 제시되고 있다는 뜻" 엄호도
[미디어펜=손혜정 기자]미래통합당이 난항 끝에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돌입했지만 내부에선 다소간 잡음이 꺼지지 않을 모양새다.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취임 일성으로 내놓은 발언이 당의 지향 가치에 대한 논쟁으로 비화되고 있다는 관측이다.

김 위원장은 비대위 출범 직전부터 "'보수', '자유우파'라는 말도 쓰지 말라"고 발언한 것으로 알려져 보수·우파 진영에 한 차례 파동을 일으킨 바 있다. 비대위 첫 회의에서도 그는 "진보보다 더 진취적인 정당을 만들 것"이라고 말해 '민주당보다 더 좌클릭'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자아내기도 했다.

4.15 총선에서 중진 고지에 오른 장제원 통합당 의원은 지난 2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 위원장의 발언을 꼬집으며 "'개혁보수'라는 말도 쓰면 안되는 건가"라고 반문했다. 장 의원은 "(김 위원장이) '보수는 시대에 뒤떨어진 낡은 가치'란 말도 한다. 보수의 가치마저 부정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며 "정당의 지향점은 뚜렷해야 한다. 유사민주당 심지어 유사정의당을 만드는 것이 우리의 가치 지향점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 김종인 통합당 비대위원장./사진=미래통합당
당내 일부 불만을 의식한 듯 김 위원장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21대 국회 통합당 첫 의원총회에서 의원들과 상견례를 하며 내부 반발 진압에 나서기도 했다. 그는 "솔직하게 말해서 내가 꼭 '이 짓'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한번도 없다"며 "다소 불만스러운 일이 있더라도, 과거와 같은 가치와 동떨어진 일이 일어난다 해도 이에 대해 너무 '시비'를 걸지 말고 협력해달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의 '이 짓', '시비' 발언은 재차 당내 갈등을 부추겼다. 당초 김 위원장 영입에 반대 의사를 표해왔던 장 의원은 페이스북에 "우려했던 일들이 현실화되고 있다"며 "당의 명운을 걸고 맡긴 직책이 '이 짓' 정도인지, 당에 대한 충정을 가지고 던진 고언이 고작 '시비'로 치부될 문제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날을 세웠다.

국회의원 한 명 한 명은 각 지역에서 유권자들의 선택을 받은 '헌법기관'으로서, '이 짓', '시비'라는 말을 들어야 할 입장은 아니라는 지적인 것이다. 또한 김 위원장의 발언은 "민주정당을 운영하는 리더십에는 걸맞지 않은 '전제군주식'"이라는 평가도 나왔다.

김 위원장 발언의 파급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3일 통합당 내 초선 공부모임의 첫 강연자로 나선 김 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나는) '보수'라는 말 자체를 좋아하지 않는다. 보수가 지향하는 '자유'는 말로만 하는 형식적 자유"라며 "실질적인 자유, 물질적인 자유를 어떻게 구현해야 하는지가 정치의 기본 목표"라고 사실상 '적극적 자유' 표방과 기본소득제 도입 추진을 시사했다.

이어 그는 "궁핍으로부터의 자유도 있어야 한다"며 "배고픈 사람이 빵집을 지나다가 김이 나는 빵을 먹고 싶은데 돈이 없어 먹을 수가 없다면 그 사람에게 무슨 자유가 있겠나. 그런 가능성을 높여줘야 물질적 자유라는 게 늘어나는 것"이라고 발언했다.

김은혜 통합당 대변인도 '미디어펜'에 "자유시장경제 본질은 그대로 두되 '형질'만 변화해나가자는 취지일 것"이라며 "'보수·자유우파'를 버리는 '마이너스'는 아니다"라고 해석했다.

그러나 김 위원장의 해당 '말말말'에 학계는 즉각 예민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통합당 경제자문단 공동단장을 역임했던 오정근 한국금융ICT융합학회 회장은 '미디어펜'에 "더불어민주당도 기본소득에 대한 말을 조심하고 있는데 (통합당이) 먼저 선점하겠다고 더 좌클릭한 면모를 보이고 있다"며 "'자유시장' 본질을 그대로 둔다는 것도 일종의 기만이다. 기본소득 논의 자체가 본질을 바꾸겠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오 회장은 "시장경제를 근본으로 하되 코로나19로 인한 대량 실업자 등은 선택적 복지로 끌어안아야 하고 이럴 때일 수록 기업 활성화 환경 개선을 위해 규제·노동개혁 논의부터 시급히 해야 한다"며 "기본소득 얘기부터가 근로 윤리와 자립정신, 기업가 정신을 붕괴시키고 경제 순환 구조 및 나라 경제를 끊어버리는 것"이라고 질타했다. 이어 "취약계층에 대해선 근로 윤리를 촉진하는 선택적 복지와 포용적 시장경제로 접근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학 교수도 '미디어펜'에 "'김 위원장의 말은 '사기'에 가깝다"며 "성장을 논하지 않고 재분배만 부르짖는 복지주의자들이 똑같은 소리를 한다. '자유' 극대화 외피를 쓰고 기만하겠다는 건데 현 정부여당에 발맞춰 복지수혜 베풀기의 경쟁으로 가겠다는 것"이라고 힐난했다.

   
▲ 김종인 통합당 위원장과 당 의원들이 지난 2일 국회에서 열린 21대 국회 첫 의원총회에서 공식 상견례를 가졌다./사진=미래통합당.

교수는 "자유의 본질은 적극적 자유가 아닌 소극적 자유로 유지될 때만 지켜질 수 잇는 것"이라며 "민주당 정책을 뒤따라가면서 떡을 던지고 표를 얻겠다는 좌파식 포퓰리즘을 마치 자유주의의 일종인 것처럼 호도한 사회주의"라고 지적했다.

일련의 지적에 김현아 통합당 비대위원은 김 위원장이 그리는 청사진에 대해 설명하며 엄호에 나섰다.

김 비대위원은 이날 KBS 라디오 '김경래의 최강시사'에 출연해 "진취적인 용어에 계속 수반되는 것은 시대흐름과 같이 가겠다고 하는 수식어가 붙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김 위원장이 불만스러운 일이 있어도 시비 걸지 말라고 하는 것은 역으로 보수의 가치가 흔들리는 것에 대한 불만이 많다는 이야기 아닌가'라는 취지의 질문에는 "아직까지 많다고 보지는 않는데 그걸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분명히 계시다"고 답했다. 이어 김 비대위원은 "혁신하기 위해선 반드시 내부의 저항이 있다"며 "저항이 있다는 건 그만큼 우리에게 새로운 혁신의 방법들이 제시되고 있다고 보인다"고 말했다.
[미디어펜=손혜정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