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말에 으름장까지…북한에 대한 저자세가 아니라 철저한 상호주의 원칙 따라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의 '막말 수준' 협박에 청와대와 통일부, 국방부가 한꺼번에 나서 김여정의 비위를 맞추며 굴종적 태도를 보이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김여정은 지난 4일 새벽 담화를 통해 탈북민 단체의 대북 전단 보내기를 맹렬히 비난하면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남북 연락사무소 폐쇄, 남북 군사합의 파기' 등 대응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충격적인 것은 우리 정부의 대응이었다. 4시간 반 만에 통일부는 예정에 없던 정식 브리핑을 자청해 "전단 살포 중단 법률안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쓰레기들의 광대놀음을 저지시킬 법이라도 만들거나 잡도리를 단단히 하라"는 김여정의 언급에 뒤이어 나왔기 때문에 마치 김여정의 지시를 받는 것 같은 분위기가 연출됐다. 

청와대는 "대북 삐라는 백해무익한 행위"라면서 "안보에 위해를 가해는 행위엔 정부가 단호히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대북 삐라가 대한민국 안보에 위해를 가하는 행위라는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를 들어 초강경 대응을 예고하면서도 김여정 담화에 대해서는 논평 자체를 거부했다. 국방부도 "민간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는 접경 지역의 긴장을 고조시킨다"며 "이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에 위험을 초래하는 행위로서 중단돼야 한다"고 밝혔다.

조선중앙통신과 노동신문에 게재된 김여정의 담화는 '질 낮은' 언어들로 가득 차 있었다. 백두혈통을 내세우는 북한 최고 실력자 가운데 한 사람의 말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목숨을 걸고 자유를 찾아온 탈북민을 "쓰레기"라고 비난했다. "바보들", "들짐승보다 못한 인간추물", "똥개" 등 욕설 수준의 언어를 사용했다. 담화 막판에는 1인칭 화법까지 동원해 "나는 원래 못된 짓을 하는 놈보다 그걸 못 본 척하거나 부추기는 놈이 더 밉더라"고 했다.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의 '막말 수준' 협박에 청와대와 통일부, 국방부가 한꺼번에 나서 김여정의 비위를 맞추며 굴종적 태도를 보이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정부는 저자세로 일관할 것이 아니라, 남북관계 개선은 엄격한 상호주의에 의해서만이 가능하다는 원칙을 천명해야 한다. /사진=연합뉴스

여기서 '못 본 척하는 놈'이란 문재인 대통령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대통령에 대해 "이놈, 저놈"하는 것은 누가 봐도 옳지 않다. 당연히 김여정의 저급한 언어사용에 대해 우리 정부의 유감 표명이 있었어야 했지만 문재인 정부는 말한마디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김여정과 문재인 대통령은 이미 몇 번이나 만나 아는 사이인데 대통령을 떠올릴 수도 있는 대목에서 "이놈, 저놈" 하는 것은 인간의 도리에서도 크게 벗어난 행동이다.

정부는 또한 대북 전단 살포는 대한민국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권리인 "표현의 자유"에 속한 사안으로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정부가 함부로 제한할 수 없음을 분명히 했어야 한다. 김여정 조차도 "'개인의 자유', '표현의 자유'로 방치된다면"이라는 전제를 달아 대북 전단 살포의 무차별적인 금지가 어려운 사정을 인지하고 있음을 내비췄다. 

정부는 당연히 북한과 다른 체제인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는 '표현의 자유'는 '헌법적 권리'로 근원적 제한은 불가능하다고 당당하게 얘기했어야 한다. 법원은 이미 "전단 살포는 표현의 자유 실현을 위한 것으로, 원칙적으론 제지할 수 없다"고 판시한 바 있다.

통일부 논리도 허점투성이다. 통일부는 접경지 주민 안전 때문에 전단 살포가 불가하다는 입장이지만, 안전의 위협은 풍선을 향해 기관총을 발사하는 북한의 과잉대응에서 비롯된 것이다. 통일부 입장은 접경지가 아닌 곳에서는 얼마든지 북한으로 전단을 보내도 된다는 말로도 들린다. 전단 대부분이 남한 땅에 떨어져 환경을 오염시킨다는 논리도 제시했는데, 그렇다면 북한으로 가지도 않는 전단에 대해 김여정이 오버한 것이 된다.

정부가 가장 잘못한 것은 상호주의 원칙을 분명히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김여정은 대북 전단 살포는 모든 적대 행위를 금지하기로 한 9.19 군사합의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합의를 먼저 위반한 것은 북한이다. 북한은 지난해 11월 서해 대청도에서 불과 40여km 떨어진 창린도에서 해안포를 발사해 9.19 군사합의를 정면으로 위반했다. 

당시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의 지시로 해안포 사격이 이뤄졌다고 당당하게 보도했다. 지난달에는 북한군이 철원 인근 비무장지대(DMZ) 남측 감시초소(GP)에 총격을 가해 9·19 합의를 위반했지만 이에 대해 사과도, 해명도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전단 살포를 놓고는 막말을 쏟아냈다. 

정부는 저자세로 일관할 것이 아니라, 남북관계 개선은 엄격한 상호주의에 의해서만이 가능하다는 원칙을 천명했어야 한다. 일시적으로는 북한 김정은 정권의 심사를 헤아리고 달래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국민이 자존심에 상처를 느낀다면 장기적으로는 남북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것이다.

김여정은 담화에서 "선의와 적의는 융합될 수 없으며 화합과 대결은 양립될 수 없다"고 말했다. 옳은 말이다. 남북관계의 진전은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을 위해서는 양쪽 모두에서 선의와 화합이 우선해야 한다. 

수 틀린다고 막말을 쏟아내는 행위로는 진정한 화해를 이룰 수 없다. 긴 세월 도발의 주체는 늘 북한이었다는 것은 대한민국 국민이 기억하고 있다. 서로가 상대방 국민을 존중하고 품격과 약속을 지킬 때 비로소 진정한 화합이 시작된다는 것을 남북한 당국 모두가 유념해야 한다.
[미디어펜=편집국]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