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조성완 기자]지난 1일 국회 의안과가 문을 열자마자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1대 국회 1호 법안을 제출했다. 이후 의원들이 1호 법안을 쏟아내면서 12일 현재 발의된 법안은 390건에 달한다.
1호 법안은 보통 의원의 정체성을 담고 있다. 의원의 주된 관심 분야와 의정활동 주력할 부분을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하지만 21대 국회 개원이 얼마 지나지 않아 우후죽순처럼 1호 법안이 쏟아지면서 ‘막무가내 부실 입법’에 대한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박광온 의원이 제출한 1호 법안 ‘공공기관의 사회적 가치 실현에 관한 기본법안(사회적 기본법)’은 새로운 게 아니다. 지난 2014년 문재인 대통령이 국회의원 시절 대표 발의했지만 임기 만료로 자동 폐기됐고, 20대 국회에서는 김경수, 박광온 의원이 내용을 보완해 다시 발의했지만 통과되지 못했다.
|
 |
|
▲ 더불어민주당 박광온 의원이 1일 국회 의안과에 제21대 국회 '1호 법안'으로 일명 '사회적 가치법'을 접수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
21대 국회의 1호 법안이 어떤 결과를 맞이할지는 두고 봐야 할 일이지만, 역대 1호 법안의 성적은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다. 대부분 설익은 법을 내놓아 처리가 더디거나 자동폐기된 경우가 대다수다.
20대 국회에서는 박정 민주당 의원이 보좌진의 밤샘 대기 끝에 ‘통일경제파주특별자치시의 설치 및 파주평화 및 파주평화경제특별구역의 조성·운영과 지원에 관한 특별법’을 1호 법안으로 등록했다. 해당 법안은 “현 남북 관계 상황, 특구 지정에 관한 관련 부처의 의견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검토 보고서와 함께 폐기됐다.
19대 국회에서는 김정록 새누리당(현 미래통합당) 의원의 ‘발달장애인 지원 및 권리보장에 관한 법률안’이 1호 법안이었다. 18대 국회에서는 이혜훈 한나라당 의원의 ‘종합부동산세법 개정안’이 1호 법안으로 접수됐다. 결과적으로 두 법안 모두 대안이 반영돼 폐기됐다.
정책통으로 불리는 한 보좌관은 12일 ‘미디어펜’과의 통화에서 “1호 법안은 내용도 중요하겠지만 무엇보다 그 상징성이 중요하다”면서 “너도나도 1호 법안을 내는 과정에서 뒤처지면 안 된다는 생각에 다소 검토가 미비하게 발의되는 부분도 있다”고 말했다.
12일 오후 5시 20분 기준으로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접수된 법률안은 390건이다. 지난 1일 1호 법안 이후 하루 평균 32건의 법안이 발의된 것이다. 바꿔 말하면 의원 10명 중 1명은 하루에 한건씩 법안을 발의했다는 의미다.
20대 국회에서 발의된 법안은 2만4141건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같은 추세라면 이 기록을 쉽게 뛰어넘을 것으로 보인다. 의원들이 속도전 양상을 보이면서 졸속‧부실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
 |
|
▲ 국회 본회의장 모습./사진=연합뉴스 |
실제 일부 의원은 같은 날 다수의 법안을 무더기로 발의했으며, 같은 당 안에서 비슷한 내용의 법안이 같은 날 잇따라 발의되거나 이름만 조금씩 다를 뿐 같은 사안에 대한 내용을 다룬 법안도 있다. 실현가능성이 적거나 지역구에 대놓고 특혜를 주는 법안도 제출됐다.
문제는 보여주기식, 실적 채우기식 졸속 법안이 증가할수록 법안 처리의 실효성을 떨어뜨린다는 점이다. 발의 법안이 폭증하다 보니 중요 법안에 대한 진지한 논의와 심사를 하는 게 물리적으로 힘들다는 것이다.
한 다선 의원은 “의원들은 개개인이 독립된 입법기관이다. 의원이 발의한 법안 하나가 국민들의 생활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서 “단순 보여주기식 법안 발의가 아니라 정말 국민들이 필요로 하는 법안을 발의할 수 있도록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미디어펜=조성완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