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공기 압박 속에서도 싱카포르 세라야 복합화력발전소 성공 수행
주택 브랜드 '래미안' 소비자 사랑 속 지난 2015년 이후 '미분양 제로'
건설산업은 국내총생산(GDP)의 15%를 차지하는 경제의 기둥이다. 건설업의 역사는 대한민국의 발전과 궤를 같이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저마다의 성공 DNA장착한 국내 건설사들은 이제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에서 저력을 과시하고 있다. 본보에서는 건설 성공 DNA를 일깨운 주요 현장 및 사사(社史), 오너 일가 등의 스토리를 재조명해 시리즈로 소개한다.<편집자주>

[건설사 성공DNA①-삼성물산(2)]뒤늦은 주택사업 시작에도 불구하고 '래미안' 성공

[미디어펜=홍샛별 기자]국내시공능력평가 명실상부 1위 기업인 삼성물산은 국내에서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돋보적인 이력을 가지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인 두바이의 '부르즈칼리파'를 시공하는 등 건축·토목·플랜트 등 분야별 최고 수준의 인재와 기술역량을 바탕으로 국내 ‘넘버원’이자 글로벌 건설사의 위상을 확고히 해 나가고 있다. 주택시장에서는 '래미안'으로 업계의 패러다임 변화를 이끌어 가는 중이다. 최근에는 5년간의 공백을 딛고 반포 재건축 수주에 연거푸 성공하며, 반포 지역에서 약 9500여 가구의 ‘래미안 타운’을 탄생시킬 것으로 기대감을 끌어올리고 있다.

◆위기를 기회로…‘싱가포르 세라야 복합화력발전소’ 

세라야 복합화력발전소는 삼성물산이 발전분야를 핵심상품으로 선정한 이후 최초로 수주한 현장이다. 또 발전분야 세계적 메이저사인 독일 지멘스와의 컨소시엄을 구성해 EPC 방식으로 수행하는 것이었기에 성공적인 수행 여부가 관심으로 떠올랐다. 

   
▲ 싱가포르 세라야 복합화력발전소 전경 /사진=삼성물산글로벌 발전플랜트 EPC플레이어로 명성을 확보하게 됐던 싱가포르 세라야 복합화력발전소는 말 그대로 삼성물산의 위기극복의 대표적인 사례다. /사진=삼성물산

물론 상황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공기가 특히 짧아 한치의 지연요소도 용납되지 않았다. 발주처의 엄격한 스펙, 기존 발전설비와의 간섭, 발주처의 컨설팅사인 PBMM의 까다로운 요구사항, 싱가포르의 특이한 법규, 매립부지 지반의 극심한 불규칙성, 수중의 지장물, 1960년 이래 최대 집중강우 등이 공사수행의 장애요인으로 다가왔다.
 
삼성물산은 삼성 특유의 저력과 자존심을 걸고 더욱 집중했다. 그 결과 계획한 단계를 전부 앞당겨 완료해 발주처의 격찬을 받았다.

◆뒤늦은 주택사업 시작…소비자 사랑 속 지난 2015년 이후 미분양 제로 ‘래미안’

   
▲ 래미안 BI /자료=삼성물산
삼성물산은 주택사업에는 뒤늦게 뛰어들었다. 그러나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단시간에 국내 대표적인 아파트 건설업체로 자리잡았다. 획기적으로 차별화된 상품 및 기술개발이 현실적으로 곤란한 주택업의 특성을 고려해 핵심적인 상품차별화와 함께 상품 이외의 차별화전략을 추진한 영향이었다. 

삼성물산은 대부분의 기업들이 회사명을 아파트 이름으로 사용하던 1990년대, 기존 관습을 깨고 브랜드 개발에 착수했다. 브랜드 적용은 아파트를 단순한 건축물에서 소비자가선호를 갖게 되는 상품(Commodity)으로 패러다임의 변화를 이루기 위한 첫 단계였다. 사내외공모전 및 네이밍 전문회사에 의뢰해 브랜드 명을 공모했다. 1200여 개의 응모작 가운데 ‘래미안(來美安)’을 최종 브랜드로 확정했다.  

래미안의 기본 콘셉트는 ‘미래(來), 아름다움(美), 편안함(安)’이다. △기술과 경험을 바탕으로 한 미래형 주거공간 △아파트의 기본 속성에 미적 요소를 결합시킨 심미적인 주거공간 △거주자의 안전과 편안함의 최우선 고려 등 삼성아파트가 추구하는 주거공간의 세 가지 가치가 함축됐다.  

래미안은 브랜드 런칭이후 대한민국 주택 업계의 패러다임 변화를 이끌어 왔다. 혁신적인 상품 개발과 선도적인 주거 서비스, 그리고 고객과의 소통을 강조하는 새로운 마케팅 활동으로 ‘최초의 브랜드, 최고의 브랜드’로서의 명성을 이어가며 아파트의 새로운 지향점과 업계의 고객 접근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래미안은 국가브랜드 경쟁력지수(NBCI) 17년 연속 1위뿐 아니라 국가고객만족도(NCSI) 22년 연속 1위, 한국산업의 브랜드파워(K-BPI) 19년 연속 1위, 한국서비스품질지수(KS-SQI) 5년 연속 1위의 자리를  굳건히 하고 있다. 

래미안은 고객들의 사랑을 바탕으로 지난 2015년부터 미분양 재고가 전혀 없는 ‘미분양제로’의 진기록을 이어가고 있다.

   
▲ 서울시 서초구 반포동의 '래미안퍼스티지' 단지 전경 /사진=삼성물산

◆삼성에서 건설이 탄생하기까지 

국내 최대 기업그룹인 삼성은 이병철 선대회장이 1938년 대구에 설립한 삼성상회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삼성상회는 무역업과 국수제조업을 겸했다. 해방 이후인 1948년 이병철 선대회장은 서울에 올라와 삼성물산공사를 설립했으며, 한국전쟁 발발 후인 1951년에 피난지 부산에서 삼성물산을 설립해 무역업으로 사업기반을 다져 나갔다.

삼성상회란 이름으로 창업된 이후 그룹을 정신적으로 이끌어 온 경영이념은 3가지였다. 기업활동으로 국가에 기여하는 사업보국, 사람을 소중히 여기고 사람을 키우는 인재 제일주의, 기업의경영은 매사 합리적으로 무리없이 수행되어야 한다는 합리추구의 정신이 바로 그것이었다.

삼성은 사업보국의 정신으로 수입물품의 국산화를 차기사업으로 추진했다. 1953년에 설탕 국산화를 위해 제일제당을 설립하고, 1954년에 모직 국산화를 위해 제일모직을 창업한 것이 바로그 것이었다. 이러한 수입대체산업 육성의 성공에 힘입어 삼성은 한국 최대기업으로 발돋움 할 수 있었다.

   
▲ 삼성그룹 창업자인 이병철 선대회장 /사진=삼성 제공


이후 삼성은 3개 시중은행의 주식과 안국화재를 인수함으로써 금융 보험업으로 사업 영역을 확대했으며, 1960년대에는 안보화재와 동방생명도 인수했다. 이와 더불어 동화백화점(현 신세계백화점)을 인수해 유통업에 첫발을 내딛었고 전주제지(현 한솔제지)를 설립해 제지업에도 뛰어들었다.

뿐만 아니라 문화, 복지사업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그 일환으로 이루어진 것이 동양라디오와 동양텔레비전방송, 중앙일보의설립이었다. 이 밖에 삼성문화재단과 고려병원도 이 무렵 설립했다.

1960년대 후반과 1970년대 중반에 이르러 삼성은 기업의 미래를 견인 할 수 있는 강력한 사업, 기업의 비약적인 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미래사업으로 전자산업과 중화학공업을 선정하고 적극 진출했다. 

전자사업으로는 1969년에 삼성전자를 설립하고 뒤이어 삼성전관(현 삼성SDI), 삼성전기,삼성코닝을 잇따라 설립해 수직계열화를 이뤘다. 

1970년대 중반, 삼성은 그룹전략 차원에서 중공업을 필두로 중화학부문에 대한 진출의지를 가속화시켜 삼성중공업을 중심으로 삼성조선, 대성중공업을 탄생시켰으며, 이와 함께 건설 전담회사의 설립을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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