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정 담화'서 맹비난하자 여권서 "발목 잡기" 해체론 나와
“대북제재 틀 속 남북협력 공간 넓히고 해법 찾자” 정부 입장
[미디어펜=김소정 기자]북한이 대적행동을 시작하면서 대북전달 살포와 한미워킹그룹에 대한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여권에서도 “남북관계 악화에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다”며 한미워킹그룹의 해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하지만 접경지역 주민 안전을 위해 대북전단 살포를 금지하려는 움직임과 똑 같은 잣대로 한미워킹그룹 해체를 쉽게 거론하는 것은 신중하지 못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미워킹그룹은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틀 속에서 남북협력의 공간을 넓혀보려는 취지로 탄생했다. 무엇보다 한미워킹그룹이 없어진다고 해도 미국과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는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2018년 11월 20일 공식 출범한 한미워킹그룹은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이 시작되고, 남북 간 교류협력이 기지개를 켤 무렵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틀 속에서 한미가 공조할 수 있는 방안을 찾기 위한 회의체로 탄생했다. 

당시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프로세스 전반에 대해 한미 사이에 더욱 긴밀한 논의를 하기 위한 기구로 안다”고 말했다. 또 미 국무부는 워킹그룹의 의제를 한미 간 외교 공조, 비핵화 노력, 대북제재 이행, 유엔 제재를 준수하는 남북협력의 4가지로 제시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와 미국 행정부의 독자제재 등 얽히고 설킨 대북제재 틀 속에서 남북협력이 이뤄지는 상황이었다. 미 국무부가 남북협력을 명시한 대로 워킹그룹에서 실제로 제재 면제를 결정한 사례가 남북연락사무소 개소, 개성 만월대 공동 발굴 등 12건이 있다.

   
▲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오른쪽)과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부장관 겸 대북특별대표./연합뉴스

특히 한미워킹그룹은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틀 속에서 남북협력의 공간을 찾고 해법을 찾아나가는 자리였으므로 이를 없애면 향후 남북협력사업은 더 어려워진다는 것이 현재 정부의 입장이다.

따라서 김여정 북한 제1부부장이 한미워킹그룹에 대해 조목조목 비난한 이후 여당 의원들마저 한미워킹그룹을 비난하고 해체설을 주장하는 것은 북한의 무리한 요구를 수용하는 무책임한 ‘비위 맞추기’로 비칠 수 있다.

김여정 제1부부장은 17일 담화에서 “훌륭했던 북남 합의가 한 걸음도 이행의 빛을 보지 못한 것은 남측이 스스로 제 목에 걸어놓은 친미사대의 올가미 때문”이라며 “북남 합의문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상전이 강박하는 ‘한미실무그룹’이라는 것은 덥석 받아들고, 사사건건 북남 관계의 모든 문제를 백악관에 섬겨 바쳐온 것이 오늘의 참혹한 후과로 되돌아왔다"고 지적했다.

시기적으로 개성에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만들면서 한미워킹그룹이 탄생한 점에서 맞교환됐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그리고 북한이 연락사무소를 폭파하는 충격적인 행태를 보인 이후 한미워킹그룹을 맹비난하자 냉정한 분석을 방해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리는 더불어민주당 윤건영 의원마저 16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한미워킹그룹이 본연 취지와 다르게 왜곡되게 나타나고 있다”며 “남북관계 걸림돌로 작용한다고 일각에서 비판하는 상황이라 그 지점을 외교부는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올해 초 문재인정부는 북한 개별관광과 남북 철도‧도로 연결, 남북 방역보건 협력을 새로운 대북협력사업으로 제시했다. 하지만 미국이 이 사업들에 공식적으로 반대 목소리를 낸 사실이 없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3월 코로나19 방역 지원 의사를 담은 친서를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보내 한국의 남북 방역사업에 힘을 싣기도 했다. 또 지난 2월 서울에서 열린 한미워킹그룹 국장급회의에서 남북철도연결과 북한 개별관광 사업을 논의한 사실도 있다. 최소한 미국의 암묵적 동의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오히려 그동안 북한은 남측의 제안에 침묵으로 일관해왔다. 애당초 북한은 우리정부의 남북협력사업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볼 때 김정은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밝힌 개성공단이나 금강산관광 재개도 순수한 남북협력 진전을 위한 제안이라고 볼 수 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제재 기준 ‘월경’서 ‘이전’으로 바꾸는 등 정비 필요

다만 일각에서 지적하듯이 남북협력사업 추진이 가시화되면서 일부 ‘발목잡기’로 비춰질 만한 상황도 있었던 만큼 본연의 취지가 살아나도록 정비할 필요는 있어 보인다.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지난달 발간된 ‘창작과 비평’ 대담에서 대북제재에 대한 ‘적극적인 해석’을 주문하며 제재 기준을 ‘월경’(越境)에서 ‘이전(移轉)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은 금수 품목이 북한 국경을 넘어가는 것을 기준으로 삼았지만 실제 소유권을 북한에 넘기는 경우에만 제재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와 관련해 2018년 말 북한에 보내려던 독감치료제 타미플루가 무산된 경우가 있었다. 당시 이를 싣고 갈 트럭이 대북제재에 저촉될 수 있다는 판단으로 한미 간 조율이 늦어지자 북한은 타미플루 수령을 거부했다. 

올해 1월 한국정부가 북한 개별관광을 추진하겠다고 하자 해리 해리스 주한미국대사가 “이 문제는 한미워킹그룹을 통해 다뤄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언급해 논란이 된 일도 있었다.  

일각에서는 한미워킹그룹에서 통일부가 빠져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하지만 한미워킹그룹에서 한미공조 못지않게 대북제재 문제를 적극 논의해왔다는 정부의 입장을 들어볼 때 통일부가 회의체에 포함돼 미국에 남북협력사업을 설명하는 역할을 맡을 필요는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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