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원 마련은 세율인상보다 세원확대가 바람직…조세형평성에도 어긋
법인세 인상을 통한 복지확대, 과연 가능할까. 무상보육·무상급식을 둘러싼 여-야간, 중앙-지방정부간 대립이 격화되고 있다. 복지재원 마련을 위한 세원확보가 어려움을 겪으면서, 법인세 인상 등을 통해 이를 해결하자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법인세 인상은 부담이 오히려 소비자에게 전가되고, 활력을 잃고 있는 한국경제에 또 다른 악재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는 상황이다. 바른사회시민회의는 법인세 인상논의의 문제점과 지속가능한 복지제도를 검토, 해결책을 모색하고자 토론회를 개최했다. 아래 글은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가 토론회에서 발표한 토론문 전문이다.

복지재원 조달과 관련한 대기업의 법인세율 인상 문제를 둘러싸고 우리나라의 사회적 합의 도출 능력이 다시금 시험대에 올라선 상태이다. 소득양극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법인세 감세혜택의 주역으로 지목받고 있는 대기업의 법인세율을 올리는 것에 신중론을 제시한다면, 부자감세에 대한 부정적인 국민적 정서에 반하는 정치적 자살행위에 가까운 것일 수도 있다.

세제개편은 항상 그렇듯이 고도의 정치적 의사결정 과정을 수반하는 복잡한 산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번 법인세율 인상 논의에서만큼은 엄중한 경제현실에 입각하여 국민을 위한 최선의 방책이 무엇인가를 최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정치적 합의도 중요하지만, 국민적 삶의 기반을 강건히 하는 것은 더욱 중요하기 때문이다.

   
▲ 바른사회시민회의가 18일 프레스센터 매화홀에서 개최한 <법인세 인상을 통한 복지확대, 과연 가능한가> 토론회의 전경. 

법인세율 인상에 따른 세수확대 효과가 반갑지만은 않은 이유는 무력한 근로자와 달리 기업은 다양한 조세회피 수단을 통해 늘어나는 조세부담을 순순히 떠안지 않으리라는 예상 때문이다. 세후수익 감소에 직면한 기업은 당장 근로자의 고용이나 임금의 수준을 조정하거나 생산물의 가격 인상을 통해 조세부담을 전가할 수 있고, 중장기적으로는 공장의 해외 이전을 통해 조세를 회피하려고도 할 것이다. 장기화되는 경기부진을 염려하고 있는 한국경제는 예상외의 복병을 만나게 될 수도 있다.

자본의 높은 이동성은 법으로도 제어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라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경제위기의 파고를 맞아 텅 빈 나라곳간을 채우는데 여념이 없는 각국 정부가 최근에 거의 모든 세목의 세율을 인상하고 있음에도 유독 법인세율을 인상하지 못하거나 오히려 인하하고 있는 것은 기업부문과의 정치적 유착 때문이 아니다.

세율인하의 효과가 투자증대로 연결되어 고용이 증대하는 재정학 원론이 당장 가시화될 것이라는 순진한 믿음 때문도 아니며, 불가불 이것이 정책적으로 거의 유일한 선택이기 때문이다. 기존의 감세정책에는 지갑을 속 시원히 열지 못한 기업들이 약간의 세율인상에 모세의 엑소더스처럼 신속히 생산터전을 박차고 나갈 것이라는 염려는 기우일 수 있지만, 열리지 않던 지갑은 더욱 닫혀버릴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현재 제기되는 법인세율 개편 주장에서는 과표구간의 세분화를 통한 누진세율의 적용을 특별히 강조하고 있다. 법인소득이 더 많은 기업에 더 높은 세부담을 부과하는 것이 피상적으로는 담세능력을 고려한 재분배정책과 닮아 있지만, 법인을 개인과 유사한 존재로 의인화하여 취급하는 것은 모순을 불러오게 된다.

생산시설과 고용의 규모가 수천 또는 수만 배의 차이가 나는 기업들이 일반적으로 존재하는 현실에서 최종적인 소득규모에 따라 담세능력을 결정한다면, 수익의 내용은 따지지 않고 외형만으로 세부담을 재단하는 우를 범하게 된다.

10명의 주주로 구성된 중소기업이 10억원의 수익을 내는 반면 10만명의 주주로 구성된 기업이 1000억원의 수익만을 내고 있다면, 전자(일인당 1억원)보다 후자(일인당 100만원)에 더 높은 세부담을 지우는 것이 과연 조세형평성 측면에서 바람직한 것일까 의문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많은 법인세 연구자들이 누진적인 법인세율 체계의 도입이 소득재분배 효과를 제고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결국 이로 인해 법인세율 인하정책을 부자감세라고 규정하는데 쉽게 동의하지 못하게 된다.

   
▲ 바른사회시민회의가 18일 프레스센터 매화홀에서 개최한 <법인세 인상을 통한 복지확대, 과연 가능한가> 토론회에서 패널로 참석해 토론을 벌인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 한상일 한국기술교육대 산업경영학부 교수, 허원순 한국경제 논설위원(좌측부터) 

법인의 세부담은 단순한 소득규모가 아닌 기업의 특성에 기초하여 차별화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창업초기에 수익이 정상화되기 어려운 기업들이나 성공위험이 높은 기술개발연구에 높은 비용을 지불할 수밖에 없는 기업에 대해 세부담을 낮추어 주는 것이 바로 그러한 예이다. 물론 이 때도 세율을 차별적으로 적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으며, 조세 감면제도를 이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세율은 실제 가치에 연동하여 결정되어야 할 상대가격을 인위적으로 바꾸는 것이고, 법인세율은 주요 생산요소인 자본의 비용에 즉각적으로 영향을 미치기에 생산전반에 걸쳐 왜곡효과를 가져온다. 부가세나 재산세에 비해 법인세의 비효율성이 높은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내용은 이론적이기는 하지만 엄연한 현실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것이 물론 현실의 전부는 아니다. 법인세율 인상의 배경에는 이론적인 고려만으로 무시될 수 없는 현실적 필요성이 분명히 존재한다. 무엇보다도 국가적 과제인 복지확대를 위한 추가적인 재원마련을 가계부문에서만 조달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며 바람직하지도 않다.

법인부문 특히 저축의 여력이 있는 대기업 부문이 복지재원의 분담에 동참해야 하는 것은 경제이론의 차원을 넘어선 사회공동체의 유지의 기본적인 문제에 속한다. 법인세율 인상과 같은 항구적 세부담의 증가는 일시적인 세수확대에 비해 국민경제적 비효율이 더 크기에, 이에 대한 검토는 신중히 이루어져야 하며 가능하다면 최종적인 단계에서 한시적인 수단으로만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따라서 법인부문 복지재원 분담의 일차적인 방법으로는 세율인상보다 세원확대가 더 바람직하다.

예를 들어, 법인세의 주요 감면제도인 고용창출투자세액공제나 R&D세액공제의 대기업 부분을 과감히 축소하거나 폐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가능하다면 단순히 감면규모를 줄이는 것보다는 감면의 방법과 대상 측면에서 창의적인 정책의 전환을 통해 기업부문의 복지비용을 위한 고통분담이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