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멈춰 달란 호소에 기업 규제 결정판으로 응답…인공호흡기마저 떼는 정부
규제를 멈춰달라고 호소하는 재계의 읍소에 정부가 아예 대못질을 했다. 뒤통수를 제대로 맞은 재계는 충격에 휩싸였다. '기업규제 3법'으로 불리는 상법·공정거래법·금융그룹감독법이 국무회의를 통과한지 한 달도 채 안돼 법무부가 집단소송제를 모든 분야로 확대하는 법안을 23일 기습적으로 입법예고했다. 

집단소송제는 기업 규제의 결정판으로 불린다. 집단소송제는 피해자 중 일부가 제기한 소송 결과로 같은 피해를 본 모든 피해자가 함께 구제받는 제도다. 법무부가 이날 입법 예고하자 기업들은 가뜩이나 어려움 속에서도 “소송 대응 하다가 날 새겠다”는 하소연이 쏟아지고 있다.

법무부가 이날 입법 예고한 예정안에 따르면 집단소송법은 적용 대상은 분야에 제한 없이 피해자 50인 이상 모든 손해배상 청구가 가능해진다. 판결의 효력은 모든 피해자에게 미치게 된다. 집단분쟁 사건에 사회적 의견을 반영하기 위해 1심에 국민참여재판이 적용된다. 

이와 함께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하도록 상법도 개정하겠다고 밝혔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모든 상행위에 적용되고 손해액의 최대 5배까지 배상명령이 날 수 있다.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상법으로 통합되면 모든 회사가 징벌적 손해배상제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기업 부담이 늘어나는 것은 자명하다.

특히 자동차 업계는 징벌적 손해배상의 직격탄으로 천문학적 비용 부담에 직접적으로 노출돼 우려가 크다. 2009년 도요타자동차 리콜 사태, 2015년 폭스바겐 디젤 게이트로 도요타와 폭스바겐이 미국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을 명령받고 회사 경영이 휘청거린 전례가 있다. 

당시 도요타는 총 40억 달러(약 4조7000억 원)에 이르는 손해배상액을 얻어맞았다. 폭스바겐의 배상액은 95억 달러에 달했다. 국회는 올해 1월 고객 손해액의 최대 5배 범위에서 자동차 제조사에 징벌적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한 자동차 관리법 개정안을 통과시킨 바 있다. 여기에 이번 개정안까지 더해지며 자동차 업계는 도요타·폭스바겐의 전례가 국내에서 되풀이되는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 기업규제 3법'으로 불리는 상법·공정거래법·금융그룹감독법이 국무회의를 통과한지 한 달도 채 안돼 법무부가 집단소송제를 모든 분야로 확대하는 법안을 23일 기습적으로 입법예고했다. 기업을 살리는 나라가 아니라 기업을 죽이는 나라다./사진=청와대

집단소송제와 징벌적 손해배상제 확대 등은 문재인 정부 출범 장시 100대 국정과제에 포함됐던 것들이다. 이번 법안 추진은 지난 4·15총선에서 거대 의석을 차지한 후 속도를 냈다. 일각에서는 현 정부 임기가 불과 1년 7개월 남은 시점에 사회적 논란이 큰 법안을 추진하는 것은 문재인 정부 내 성과를 내기 위한 것으로 분석한다.

집단소송제의 경우 법 시행 전에 발생한 사건에 대해서도 소급 적용이 가능하도록 한 것도 큰 문제를 불러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1조7000억 원대 규모의 펀드 환매 중단 사태가 벌어진 라임자산운용 사건이나 옵티머스자산운용 사건, 폭스바겐 배기가스 조작 사건,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피해자들은 집단소송에 나설 수 있다.

기업들은 집단소송이 제기되면 그 자체로 기업 이미지와 영업활동에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타격을 입을 것이란 불안감에 싸여 있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맥도널드가 광고 내용보다 칼로리가 높아 비만 위험을 관리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집단 소송을 당하는 등 천문학적인 손해 배상 위험에 노출돼 있다. 

기업들은 다수의 피해를 구제한다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소비자의 권익만 대폭 강화했고 소송 남발로 인한 폐해에 대한 고려는 없다며 하소연 한다. 뿐만 아니라 소송에 참여하지 않아도 일률적으로 배상을 한다는 점에서 기업은 막대한 부담을 떠안게 됐다. 스마트폰, 가전제품, 자동차, 식품 등 동일한 제품을 대량으로 판매하는 기업은 언제든지 타깃이 될 수 있다.

징벌적 손해배상제와 집단소송제는 선진국에서 조차 외면당하고 있다. 독일·스위스·이탈리아·일본 등에서는 모두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유럽연합(EU)도 2014년 공정거래법상 손해배상 청구에 관한 지침을 제정하면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하지 않았다. 이유는 발생한 손해보다 더 많은 배상액을 기업에 물리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고 타당성도 떨어진다는 점이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인정하는 미국에서도 배상 요건을 강화하거나 배상액 한도를 설정하는 식으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적용을 엄격히 제한하는 추세다. 미 연방대법원은 2007년 형법이 해야 할 일을 징벌적 손해배상을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위헌 소지가 있다고 판결하기도 했다. 

백악관 분석 자료에 따르면 2004년 집단소송제 때문에 매년 2500억달러(약 290조원)가 낭비되고 있다는 문제가 제기되면서 제도 유지를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제도 자체가 피해자에 대한 효율적 구제 수단이 아니라 기업에 대한 합법적 협박으로 변질된 것이 현실이라고 주장도 커지고 있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코로나19로 글로벌 경제는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선진국들은 세제 혜택과 규제 완화로 기업 기 살리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대한민국만 거꾸로 가고 있다. 기업을 적폐로 몰고 규제를 쏟아내며 인공호흡기마저 떼어 내려 한다. 

뿐만 아니다. 기업 죽이기로도 성이 안차 기업 총수들 망신주기에 앞다퉈 나서고 있다. 다음달 7일부터 21대 국회 첫 국정감사 시작된다. 벌써부터 기업 총수와 고위 임원들에 대한 증인 신청이 줄을 잇고 있다. 이미 여야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비롯, 5대 그룹 총수들을 국감 증인으로 신청했다. 이외에도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 임병용 GS건설 부회장 등 규모와 업종을 망라한 다양한 기업인들이 포함돼 있다.

코로나로 생존싸움을 벌이고 있는 기업은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의 터널을 걷고 있다. 기업인들은 하루하루 가슴을 죄고 있다. 외부 환경과 맞서기도 어려운 판국에 내부 총질을 멈추지 않고 있다. 

기업규제 3법에 집단소송제, 징벌적손해배상제, 국감 소환 등 사면초가다. 기업 흔들리면 경제가 주저앉는다. 이래저래 우리나라는 세상에서 가장 기업하기 힘든 나라다. 기업을 살리는 나라가 아니라 기업을 죽이는 나라다.
[미디어펜=편집국]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