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업, 정부는 멀리 보고 의연하게 대처해야
한국이 낳은 세계적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느닷없이 애국주의, 중화주의에 휩싸인 중국 관영 언론들과 네티즌들로부터 집중적인 공격을 받았다. 깜짝 놀란 중국 진출 한국 대기업들은 서둘러 BTS와 관련된 자사 제품 온라인 쇼핑몰을 차단하고 BTS가 나오는 광고 이미지와 영상을 비공개 처리하는 등 굴종적으로 대응했다.

발단은 BTS의 수상 소감에서 비롯됐다. 한미친선 비영리단체 코리아소사이어티가 BTS를 '밴 플리트상'을 수상자로 선정했고 BTS의 리더 RM(본명 김남준)은 지난 7일 수상 소감에서 "올해는 한국전쟁 70주년으로 우리는 양국이 함께 겪었던 고난의 역사와 많은 남성과 여성의 희생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 국민이라면 당연히 할 수 있는 지극히 상식적인 발언임에도 일부 중국 네티즌들은 북한을 돕다 희생된 중국 군인들을 존중하지 않아 중국을 모욕했다며 웨이보(微博·중국판 트위터) 등 중국 소셜미디어에 비난성 게시물을 올렸다. 

국수주의 성향의 중국 관영 언론사 환구시보는 "RM이 수상 소감에서 말한 양국은 '한국과 미국'을 의미한다"면서 "부적절한 발언으로 중국 네티즌들의 반발을 샀다"고 보도해 애국주의에 불을 붙였다. 

이 신문은 중국 네티즌들의 공격으로 삼성전자, 현대차 등 한국 대기업들이 BTS의 중국 내 광고를 내리고 있다고 자극적으로 보도했는데, 이 기사에는 순식간에 10만명이 '좋아요'를 눌렀고, 3800여개의 댓글이 달렸다고 한다.

네티즌들의 생트집에 관영 언론까지 가세하면서 12, 13일 이틀 동안 중국에서는 BTS에 대한 광기어린 조리돌림이 이어졌다. 웨이보에는 '방탄소년단(BTS)'과 '탈덕(팬을 그만두겠다는 뜻)'을 뜻하는 중국어 단어가 실시간 인기 검색어에 올랐다. "BTS 좋아하면 매국노"라는 글이 폭발적 지지를 받았다. "BTS팬이란 이유로 길거리에서 무차별 폭행을 당했다"는 주장까지 올라왔다.

   
▲ 세계적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느닷없이 애국주의, 중화주의에 휩싸인 중국 관영 언론들과 네티즌들로부터 집중적인 공격을 받았다. 한국 대기업들은 서둘러 BTS와 관련된 자사 제품 온라인 쇼핑몰을 차단하고 BTS가 나오는 광고 이미지와 영상을 비공개 처리하는 등 굴종적으로 대응했다. /사진=삼성전자 제공

중국 언론과 네티즌의 사이버 폭력에 대해 BBC, 파이낸셜 타임스, 뉴욕타임스 등 전세계 주요 언론들이 중국인의 집단주의, 편협한 애국주의를 비판하고 나섰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중국의 편협한 민족주의에 BTS가 희생양이 됐다고 지적했고 로이터 통신은 세계 2위 경제대국인 중국에서 사업을 영위하는 글로벌 기업들에 정치적 지뢰가 시장 곳곳에 깔려 있음을 보여주는 가장 최근 사례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중국 언론과 네티즌들의 광기는 해외 언론의 비판적 보도와 중국 당국의 자제 입장이 나온 뒤 급격히 소멸했다. 지극히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중국인들의 편협한 자국 중심주의, 비뚤어진 애국주의가 수시로 반복되고 있어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이번 BTS 사태는 2016년에 있었던 걸그룹 트와이스 사태의 재연이다. 

트와이스의 대만 출신 멤버 쯔위가 한국 방송에서 대만 국기를 흔들자 중국 관영 언론들과 네티즌은 벌떼 같이 들고 일어나 "대만 독립 세력을 부추긴다"며 맹렬한 비난을 가했다. 당시 소속사인 JYP 홈페이지는 사이버 공격으로 마비되고 중국 기업들은 광고 계약을 줄줄이 취소했다.

BTS가 한국인으로서 당연히 할 수 있는 말을 했듯이 쯔위도 대만인으로서 대만 국기를 흔드는, 당연히 할 수 있는 행동을 했지만 중국인의 생각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집단 린치를 당한 것이다.

중국 관영 언론과 네티즌들의 위세에 겁먹은 한국 기업들은 그 때나 지금이나 비겁하게 행동했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휠라 등은 잠시 기다려보지도 않고 즉각 BTS 관련 제품의 판매를 중단하거나 BTS를 활용한 마케팅 활동을 중단했다. 아무런 잘못도 없는데도 생트집에 굴복한 것이다. 대단히 우려스러운 상황이다.  

쯔위 사태 때 박진영 JYP 대표 프로듀서는 화장도 제대로 하지 않은 16세 소녀를 불러내 중국 네티즌들에게 사과를 강요했다. 쯔위는 "중국 활동을 중단하고 제 잘못을 돌아보도록 하겠다"고 사죄하며 울먹였다. 

JYP의 이런 비겁한 태도는 대만과 한국에서는 물론 국제사회에서 큰 비판을 받았다. 중국 시장 비중이 큰 기업들로서는 중국의 애국주의 논란에 엮이면 당장 매출에 타격이 올 수 있어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너무 저자세로 나갔다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

일련의 사건들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중국인들의 편협한 중국 중심주의의 발현이다. 중국에서 돈을 벌어가니 중국인 입맛에 맞추라는 것이다. 이는 매우 근시안적이고 중국에도 좋지 않은 생각이다. 지금 중국인들이 향유하고 있는 번영은 호혜적인 교역과 교류에서 나왔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한국은 중국에 대한 외국인 직접투자 1, 2위를 다투는 국가이다. 한국의 자본이 중국의 번영에 중요한 토대가 되고 있는 것이다. 

   
▲ 현대차는 전기차 브랜드 아이오닉을 홍보하기 위해 글로벌 슈퍼스타 방탄소년단(BTS)과 함께 하고 있다. /사진=현대차 제공

중국이 한국의 서비스와 상품을 더 많이 수입해 무역적자를 내지만 한국의 상품과 서비스는 재가공돼 중국내에서 또는 중국 이외 국가에서 중국인들에게 막대한 흑자를 가져다준다. 서로 이익이 되는 호혜적 관계인 것이다. 

BTS 건만해도 한국의 젊은 청년들이 생산한 세계 최고 수준의 음악과 영상을 중국인들이 저렴하게 소비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언젠가 중국 아이돌 그룹들도 BTS에 영감을 얻어 세계 무대에 진출하게 될 것이다. 그 때를 대비해 열린 태도, 상호 존중의 문화를 키워야 할 것이다.

이번 소동은 다행히 해프닝으로 끝나지만 이 과정에서 한국의 기업들이 보인 비겁한 태도는 두고두고 문제가 될 것이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휠라 등은 글로벌 기업임에도 서둘러 BTS 관련 온라인 쇼핑몰의 문을 닫고 광고를 중단하며 중국인들 눈치보기에 급급했다. JYP가 어린 소녀에게 사과를 강요하고 중국 눈치보기를 급급했던 모습 그대로다. 

기업들은 그러나 쯔위 사태는 대만의 의연한 대응을 통해 해결됐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은 당시 "한국에서 활동하는 16 대만 연예인이 중화민국 국기를 든 화면 때문에 억압을 받았다"면서 "대만의 국가 정체성과 국제사회에서의 공간은 반드시 존중받아야 한다"고 의연하게 대응했다. 이어 중국 지식인들의 자제 촉구와 당국의 대응이 이어지면서 문제는 해결됐다.

중국 네티즌들의 폭주는 반복될 것이다. 그럴 때마다 저자세로 나가서는 문제 해결이 안된다. 상식과 관행을 벗어난 지나친 공격과 폭력에 대해서는 한국 정부도 기업도 단호하게 "이건 아니지 않느냐"고 용기 있게 말해야 한다. 쯔위 사태는 하나의 중국이라는 극히 민감한 주제에 불이 붙었음에도 의연한 대응이 이어지는 가운데 중국의 집단 이성이 발휘돼 진화됐다. 

한국의 기업들도 휘발성 높은 중국인들의 대응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냉철하게 대응하며 중국인들의 집단 지성이 발휘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거듭 말하지만 냉철하고 의연한 대응만이 장기적으로 중국 네티즌들의 폭주를 막을 수 있다. 세계 최강국 중 하나로 부상한 중국에도 배려심과 품격을 갖춘 대국이 되어 달라고 당부한다.
[미디어펜=편집국]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