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조한진 기자] 삼성을 글로벌 기업으로 이끌고, 한국경제의 선진화에 큰 이정표를 세운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5일 별세했다. 영화와 강아지를 좋아하던 소년에서 글로벌 기업 삼성의 수장으로, 이 회장은 한국 경제사에 굵직한 족적을 남겼다.

이 회장은 1942년 1월 9일 대구에서 삼성그룹 창업주인 호암이병철 회장과 박두을 여사의 3남 5녀 중 일곱 번째이자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 이건희 회장의 유년 시절 /사진=삼성전자 제공

어린 시절 이 회장은 경남 의령 친가로 보내져 할머니의 손에서 자란다. 1945년 해방되고 어머니와 형제를 만날 수 있었다고 한다.

형으로는 제일비료 회장을 지낸 맹희 씨와 고인이 된 창희 씨, 누나로는 인희(한솔그룹 고문), 숙희, 순희, 덕희 씨가 있다. 신세계그룹 회장인 명희 씨가 유일한 동생(여동생)이다.

이 회장은 유년기를 대구에서 보내다 사업확장에 나선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1947년 상경했다. 혜화초등학교에 다녔다.

이 회장은 부산사범부속초등학교 5학년 때인 1953년, 선진국을 배우라는 아버지의 뜻으로  일본 유학을 떠났다.

이 회장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유독 과학탐구에 대한 열정이 컸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평생 즐겨 쓴 휘호가 무한탐구(無限探究)였다. 무슨 물건이든 손에 잡히면 뜯어보고 해부해봐야 직성이 풀렸다. 기계에 대한 관심도 그때 생긴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첫째 형이 도쿄대학 농과대학에, 둘째 형이 와세다대학을 다니고 있었으며 어린 이 회장은 둘째 형과 같이 지냈다. 그러나 나이 차이가 아홉 살이나 났던 만큼 외로움을 많이 느낄 수밖에 없었고 혼자 생각하는 시간이 많았다.

   
▲ 1987년 회장 취임식에서 이건희 회장이 깃발을 흔들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제공

이 회장은 개를 유독 좋아했다. 개 기르기는 취미가 돼 1979년엔 일본 세계견종종합전시회에 순종 진돗개 한 쌍을 직접 출전시키기도 했다. 순종을 찾느라 150마리까지 키워보기도 했다고 한다. 또 영화에 심취해 일본 유학 3년간 1200편 이상을 본 걸로 알려져 있다.

이후 이 회장은 3년간의 일본 유학생활을 마치고 서울사대부속중학교에 편입했고 서울사대부속고등학교를 다녔다. 고등학교 시절 레슬링부에 들어갔으며 2학년 때는 전국대회에 나가 입상하기도 했다. 일본 와세다대학 유학 중엔 당시 전설로 불리던 한국계 프로레슬러 역도산을 만난 일화도 있다.

럭비에도 뛰어들었다. 이 회장은 자작 에세이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1997년 출간)에서 "럭비는 한번 시작하면 눈비가 와도 중지하지 않는다. 걷기도 힘든 진흙탕에서 온몸으로 부딪치고 뛴다. 오직 전진이라는 팀의 목표를 향해…"라고 썼다.

당시 스포츠와 맺은 인연을 계기로 대한레슬링협회장을 지내는 등 아마스포츠 육성에 적극적으로 나섰고 1996년에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이 되기도 했다.

서울사대부고를 나온 뒤에는 연세대학교에 합격했으나 부친의 권유로 일본 와세다대학 상학부로 진학했고, 와세다대학 졸업 후에는 미국 조지워싱턴대학 경영대학원에서 경제학을 전공하면서 부전공으로 매스커뮤니케이션을 공부했다.

   
▲ 2002년 사장단 워크숍에서 이건희 회장이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제공

도쿄 하네다 공항에서 서울대 응용미술과에 재학 중이던 홍라희 여사를 만나 맞선을 봤다. 1967년 1월 약혼을 하고 홍 여사가 대학을 졸업한 후인 그해 4월 웨딩 마치를 울렸다.

1970년대 이 회장은 미국 실리콘밸리를 누빈다. 1973년 오일쇼크 이후 첨단 하이테크 산업으로의 진출을 모색하던 때였다.

당시 한국반도체가 그의 시선에 들어왔다. 조악한 집적회로로 전자시계를 만들던 한국 반도체가 파산 위기에 직면했을 때 '삼성이 인수하자'고 건의했으나 호암은 고개를 저었다.

서른둘의 이 회장은 본인의 돈으로 한국반도체 지분 50%를 인수했다. 그리고는 실리콘밸리를 50여 차례 드나들며 반도체 기술이전을 받아오려 애썼다. 페어차일드사에는 지분 30%를 내놓는 대신 기술을 받아오기도 했다. 256메가 D램의 신화는 이때부터 싹을 틔웠다.

삼성그룹 후계자로서의 본격적인 경영수업은 1978년 8월 삼성물산 부회장으로 승진하면서 시작됐다. 이듬해에는 삼성그룹 부회장으로 승진해 서울 태평로 삼성 본관 28층에서 일을 시작했다. 창업주의 집무실 바로 옆방이었다.

   
▲ 이건희 회장이 반도체 사업장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제공

이 회장이 그룹 총수에 오른 것은 1987년이다. 당시 취임 일성은 “"삼성을 세계적인 초일류기업으로 성장시키겠습니다”였다.

이후 이 회장은 삼성의 비약적 발전을 이끌었다. 7년 10조원이 채 못되던 삼성그룹의 매출은, 2018년 현재 386조원을 넘기면서 39배 늘어났다. 시가총액은 1조원에서 396조원으로 396배나 커졌다.
[미디어펜=조한진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