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영’으로 삼성의 운명 바꿔…”세계적인 초일류기업으로 성장시키겠다“ 현실로
한국 경제의 '거목'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25일 타계했다. 이 회장은 지난 2014년 5월 급성심근경색으로 쓰러지기 전까지 '삼성호'의 방향타를 잡고 혁신을 주도했다. 그는 과거와는 차원이 다른 기술·인재·시스템을 적용하면서 삼성을 글로벌 굴지의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삼성의 운명을 바꾼 '초격차 승부사' 이 회장의 발자취를 5회에 걸쳐 되돌아 본다. <편집자주> 

[미디어펜=조한진 기자] 삼성은 이건회장 ‘전’과 ‘후’로 나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회장이 취임한 뒤 삼성은 그야말로 ‘초일류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했다. ”삼성을 세계적인 초일류기업으로 성장시키겠습니다“라고 취임 일성은 현실이 됐다.

이 회장이 성장 사업의 토대를 닦은 삼성의 발전상은 수치로도 확연히 드러난다. 1987년 이 회장이 취임할 당시 10조원이던 매출액은 2018년 387조원으로 약 39배 늘었다. 이익은 2000억원에서 72조원으로 259배, 시가총액은 1조원에서 396조원으로 396배나 치솟았다.

   
▲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CES2010을 참관하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제공

삼성의 초고속 성장 배경에는 이 회장의 냉철한 현실 판단이 밑바탕 됐다. 글로벌 경영환경의 격변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일류가 돼야 하고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기업이어야 하는데, 삼성의 수준은 이에 미치지 못한다고 이 회장은 진단했다.

‘질’보다 ‘외형’ 성장에 집중하던 삼성은 이 회장의 결단으로 부가가치와 시너지 확대, 장기 생존전략에 눈을 뜨게 됐다. 1990년대 초만 해도 삼성의 제품은 동남아 등 일부 시장에서 부분적으로 성공을 거두고 있을 뿐, 미국, 일본 등 선진국 시장에서는 싸구려 취급을 받았다.

이 회장은 1993년 2월 전자 관계사 주요 임원이 참석한 가운데 미국 LA에서 전자부문 수출상품 현지비교 평가회의를 주재했다. 삼성이 잘한다고 자부하는 제품들이 세계 최대 시장에서 어떤 대접을 받는지 직시하자는 취지였다.

   
▲ 이건희 회장이 2004년 반도체 30년 기념물에 서명을 하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제공

미국에서 삼성 제품은 현지 매장에서 고객으로부터 외면받아 한쪽 구석에 초라하게 놓여 있었다. 이 현장을 임원들과 목격한 이 회장은 “삼성이란 이름을 반환해야 한다. 한쪽 구석 먼지 구덩이에 처박힌 것에다 왜 삼성이란 이름을 쓰는가”라며 “그나마 진열대에 놓여 있는 제품 중에는 뚜껑이 깨져 있거나 작동이 안 되는 것도 있지 않은가. 이는 주주, 종업원, 국민, 나라를 기만하는 행위”라고 한탄했다.

삼성을 바꾼 결정적 계기는 프랑크푸르트 ‘신경영 선언’이다. 이 회장은 1993년 6월 7일 비장한 각오로 임원과 해외주재원 등 200여 명을 프랑크푸르트 캠핀스키 호텔로 불러 모았다.

당시 사장단 회의를 갖고 여러 선진국들을 둘러보면서 이건희 회장은 국가도 기업도 개인도 변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우선 회장 자신부터 변해야겠다고 생각한 이 회장은 삼성이 뼈를 깎는 아픔을 감내하고 스스로 변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결단을 내렸다.

프랑크푸르트에서 이 회장은 “삼성은 이제 양 위주의 의식, 체질, 제도, 관행에서 벗어나 질위주로 철저히 변해야 한다"며 삼성 신경영을 선언했다. ”마누라와 자식빼고 다 바꾸라.“는 유명한 말도 여기서 나왔다.

   
▲ 이건희 회장이 19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신경영 선언을 하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제공

신경영 선언 이후 이 회장은 긴박하게 움직었다. 주요 임원들은 프랑크푸르트로 긴급 소집됐고, 신경영을 전파하기 위한 회의와 교육이 쉼 없이 이어졌다.

프랑크푸르트를 시작으로 스위스 로잔, 영국 런던에서 이 회장이 주재하는 회의와 특강이 이어졌다. 이어 7월 4일부터는 일본에서 도쿄, 오사카, 후쿠오카로 옮겨가며 8월 4일까지 회의와 특강이 계속됐다. 2개월여에 걸친 긴 여정을 통해 삼성의 신경영 철학은 세계화의 현장에서 제시되고 확산됐다.

신경영은 삼성의 운명을 완전히 바꿨다. 2020년 삼성의 브랜드 가치는 623억달러로 글로벌 5위에 자리하고 있다. 스마트폰과 TV, 메모리반도체 등 20개 품목에서 월드베스트 상품을 기록하는 등 명실공히 세계 일류기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미국 매장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삼류’ 취급을 받던 30여 년 전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상전벽해’다.

   
▲ 이건희 회장이 2005년 구미사업장을 찾아 직원들을 격려하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제공

아울러 이 회장은 소프트 경쟁력 강화에서 많은 정성을 기울였다. 이 회장은 1996년을 ‘디자인 혁명의 해’로 선언하고 디자인 경쟁력 강화에 매진했다.

이 회장의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히는 제품이 2002년 4월 출시된 휴대폰 'SGH-T100'이다. 이 회장은 이 제품 개발 단계부터 꼼꼼히 디자인을 살폈고, 잡기 쉽게 넓으면서 가볍고 얇은 디자인을 제안했다. 조가비 형태의 혁신적 디자인의 이 휴대폰은 ‘이건희폰’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출시와 함께 큰 화제가 됐고 글로벌 1000만대 판매라는 대기록을 수립했다.

이 회장의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2005년 세계적 명품과 디자인의 격전지인 밀라노에 주요 사장들을 소집하고 '디자인 전략회의'를 주재했다. 이 자리에서 이건희 회장은 삼성의 디자인 경쟁력을 1.5류로 평가하며 다시 한번 글로벌 초일류 수준으로 혁신할 것을 강조했다.

   
▲ 이건희 회장이 2012년 베트남 사업장을 찾아 액자에 서명을 하고 있다. /사진=

아울러 이 회장은 삼성의 ‘밀라노 4대 디자인 전략’도 발표했다. 그 내용은 독창적 디자인과 UI 아이덴티티 구축, 디자인 우수인력 확보, 창조적이고 자유로운 조직문화 조성, 금형기술 인프라 강화 등으로 1996년에 이은 '제2 디자인 혁명' 선언이었다.

이후 삼성의 디자인은 다시 한번 벽을 뛰어넘었음. 이듬해 출시된 와인잔 형상의 보르도TV는 2006년 한 해에만 300만대가 판매되며 세계 TV시장의 판도를 바꿨다.

[미디어펜=조한진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