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에 붙어 있는 먼지를 제거한 뒤 디지털 스캐너에 넣는다. 현실 속의 필름이 컴퓨터 안으로 들어가 ‘파일’이 된다. 이제부턴 마치 문화재를 복원하듯 음향과 색을 보정한다. 간혹 필름이 오래돼 손상된 부분이 있을 경우 실제로 복원작업이 수행된다. 이것이 최근 명작 영화들의 ‘재개봉’과 더불어 화제가 되고 있는 디지털 리마스터링 작업의 대략이다.
드르륵 필름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영화가 상영되는 시대는 지나갔다. 서울에 남아 있던 마지막 필름 영사기가 디지털 영사기로 교체된 지도 어느덧 1년이 지났다(광화문 씨네큐브 극장). 마지막 영화필름 현상소인 서울필름현상소의 매출은 ‘제로’ 부근을 맴돌고 있다.
마냥 슬퍼만 할 일일까. 디지털이 재현하지 못하는 필름 영화의 미학은 물론 있다. 그러나 필름이 구현하지 못하는 영역을 디지털이 해내는 면도 있다. 최근 들어 명작 영화들이 차례차례 재개봉하고 있는 일련의 흐름도 바로 그 지점에서 이어지고 있다.
재개봉이 ‘장사’가 된다는 걸 보여준 사례는 작년 2월 재개봉한 ‘러브레터’였다. 1999년 개봉해 “오겡기데스까(잘 지내시나요)”라는 말을 유행시킨 이 영화는 재개봉으로 무려 4만5천여 명의 관객을 끌어 모았다. 4월 재개봉한 ‘레옹’(1994)은 4만2천여 명, ‘시네마 천국’(1988)은 2만7천여 명을 동원했다. 최근 재개봉한 ‘메멘토’(2000) 역시 재개봉 닷새 만에 관객 1만을 돌파하는 기염을 토했다.
목록은 이어진다. 특히 12월4일에는 ‘퐁네프의 연인들’ ‘하울의 움직이는 성’ ‘피아노’ 등 무려 세 편의 영화가 동시에 재개봉 됐다.
|
 |
|
▲ 4일 재개봉한 영화 '피아노' |
한국에서 프랑스 영화 ‘열풍’을 일으킨 것으로 평가 받는 레오 까락스 감독의 ‘퐁네프의 연인들’(1991)은 개봉 당시 삭제됐던 5분가량의 장면을 포함해 재개봉함으로써 의미를 더했다. 해변 연주 장면으로 유명한 제인 캠피온 감독의 ‘피아노’(1993) 역시 여배우 홀리 헌터가 직접 연주한 피아노 선율을 향상된 음향으로 즐길 수 있어 기대감을 자극한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연출과 기무라 타쿠야의 목소리, 거장 히사이시 조의 음악을 함께 즐길 수 있는 ‘하울의 움직이는 성’(2004)의 디지털 리마스터링 버전도 한국에서 최초로 공개됐다. 기술은 변했지만 명작은 남는다. 과학은 이렇게 가끔 ‘새롭지만 낯익은’ 만남을 흔쾌히 주선해 주기도 한다. [미디어펜=이원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