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렵게 성사된 간담회, 성과 없이 마무리…공은 금감원 제재심으로
대책위, 배임 벗어날 대안 마련했지만 기은 피해 안보려 제안 ‘퇴짜’
기은 “피해최소화 노력중, 금감원 제재심 성실히 임할 것” 원론적입장 고수
[미디어펜=류준현 기자] 기업은행(기은)의 디스커버리펀드 사기판매 사태를 두고 피해자와 은행 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펀드 판매를 전담한 기은은 피해자로 구성된 기은 디스커버리펀드 사기피해대책위원회(대책위)와 2년째 협상을 이어오고 있다. 

   
▲ 디스커버리펀드 사기피해대책위원회가 기업은행과의 간담회 내용을 발표한 후 규탄성명을 내고 있다./사진=미디어펜


하지만 지난 14일 열린 간담회에서도 양측은 입장을 좁히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15일 금융권에 따르면, 기은과 대책위는 전날 오후 2시부터 약 1시간 동안 주요 현안에 대한 간담회를 열었지만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간담회에서는 △배임이슈에 대한 법률적 검토 및 사적화해 가능성 △디스커버리펀드 환매 이후 펀드 청산절차 및 중간 점검 △금감원 제재심 이전 대책위 추가 의견 전달 △자율배상과 분쟁조정에 대한 입장 재확인 등의 의제를 논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양측은 입장을 좁히지 못했고, 대책위의 하소연만 있었다는 평가다. 이의완 대책위 상황실장은 “(간담회를 마련하기까지) 아주 지난한 합의과정을 거쳐 간담회를 열었는데 생각보다 잘 진행되지 않아 실망스럽다”며 “전국에 있는 국민들과 피해자, 이 사태를 지켜보는 관계자가 우롱당한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밝혔다. 

특히 대책위는 간담회에서 핵심문제로 떠오른 배임이슈 해결방안과 사적화해 가능성에 대해 기은 측의 긍정적인 입장을 요구했지만 큰 성과는 없었다고 밝혔다. 

지난해 4월18일 이 펀드의 TF팀장을 맡고 있는 김성태 기은 전무(부행장)는 펀드 피해자들과 만나 자본시장통합법에 따라 배임에 휘말릴 위험이 있다며 기은 차원의 해결방안이 없음을 내비쳤다. 

대책위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해 9월 법무법인을 통해 배임이슈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대법원 판례와 타당성을 담은 법률검토자료를 기은 측에 제출했다. 하지만 간담회 당일까지 법률의견에 대한 답변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최창석 대책위 위원장은 “대책위는 배임이슈를 회피하기 위한 대법원 판례 등 법률적 근거를 제출하였으나 기업은행은 4개월이 지나도록 아무런 답변도 없었고 오늘도 형식적 만남으로 성의없이 끝내 버렸다”고 말했다. 

대책위는 기은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는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기은의 소극적인 태도 배경에 윤종원 기은 행장이 크게 작용한다는 설명을 내놨다. 

기은이 금융당국의 결정이나 법원 판결이 나오면 순순히 따르겠다는 의견을 펼치면서도, 피해자 외 제3자와의 협의는 극도로 꺼리는 까닭이다. 

대책위 관계자는 “윤 행장은 다른 금융기관처럼 적극적으로 피해자들의 편에 서서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보다 형식적으로 상위 기관에서 정해주는 대로 따를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펼치고 있다”며 “전형적인 공무원 자세를 보이고 있다. 자기가 나서서 하겠다는 건 없었다”고 일갈했다. 

   
▲ 디스커버리펀드 사기피해대책위원회가 기업은행과 14일 간담회를 가졌다. /사진=디스커버리펀드 사기피해대책위원회 제공


대책위는 배임이슈에서 벗어나기 위한 묘수로 기은이 ‘사적화해’에 응해줄 것을 바라고 있다. 사적화해란 피해자와 은행 간 자율협상 및 자율조정을 통해 분쟁을 해결하는 것을 뜻한다. 

대책위는 금감원이 이 사건에 대해 금융기관과 피해자가 자율조정으로 해결할 것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금감원 입장에 따라, 대책위는 협상팀을 합동으로 만들자는 입장을 내놨지만, 기은은 ‘못한다’로 맞서고 있다. 대신 금감원의 제재심이나 법적소송에 따른 판결로 해결하겠다는 입장을 내세우고 있다. 

대책위 법률대리인을 맡고 있는 신장식 변호사는 “많은 금융기관들이 ‘사적화해’라는 법률상 근거조항을 가지고 자율조정으로 문제를 해결했는데 기은은 자율조정을 못한다고만 한다”며 “기업은행의 특성이 있어서 그렇다고 하는데 우리에게 (그 점에 대해) 분명한 설명을 하지 못했다. 우리 외 언론과 금감원에도 분명히 설명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라임펀드 불완전판매 사태로 큰 곤혹을 치른 KB증권은 금감원의 제재심에 따라 직원들이 징계를 당하는 한편, 피해자들이 보상을 받기까지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금감원의 제재심보다 기은이 피해자와 사적화해에 나서면 이런 과정을 거칠 필요가 없어 빠르게 분쟁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게 신 변호사의 설명이다. 

그는 “미국펀드라 손실이 엄청나더라도 손해를 확정하려면 펀드가 청산돼야 한다. 청산이 어려워 손해가 확정되지 않으면 소송도 안 된다”며 “기업은행에서는 손해가 확정되지 않아서 분쟁조정안을 거부할 수도 있다. (금감원의 제재심에 따라 가이드라인을 받으려면) 앞으로 2~3년이 더 걸릴 수 있다. 이게 해결되지 않으면 우리로선 계속 투쟁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간담회에 참석한 일부 피해자는 기은의 최종 결정권자가 ‘선관주의의무’ ‘투자자보호에 대한 의무’를 간과한 채 사기상품을 회사 PB(프라이빗뱅커) 등 직원들에게 떠넘겨 판매한 게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이 과정에서 펀드 판매 시 허용하지 않는 전화판매 방문판매 등 불법적 수단을 동원해 무작위로 판매량을 늘린 게 이 사건의 원인이라는 설명이다. 이 외에도 이미 작성완료된 청약서에 사인만 하도록 하거나, 고위험상품 투자수익률 조작 등으로 피해자를 양산했다고 주장했다. 

특히 디스커버리펀드는 투자수익률이 27%에 육박하는 초고위험 상품이었지만, 고객에게는 3%로 속여 '안전한 저수익펀드'로 많은 사람을 유인했다. 

한 참석자는 “애초에 잘못된 투자제안서였는데, 펀드를 판매할 때 당사자도 아닌 사람을 대리로 위조사인까지 시켰다. 이게 공기업이 할 일이냐”라며 “기은이 사고치고 피해자들을 피눈물 흘리게 해놓고 금감원 (제재심이나), 법원 판결에 따르겠다는 식으로 응하고 있다. 수십년간 기은을 믿어온 고객에게 신의를 저버리는 행위다. (도의적으로) 피의자가 할 행동은 아니다”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또 다른 참석자는 “조금이라도 피해가 보이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게 기은의 입장이다. 그들의 머릿속에 피해자 고통은 없는 거다”며 “자기들이 전국 PB를 동원해 잘못된 상품을 팔아서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받은 것에 대해선 일절 책임질 생각을 안 한다”고 지적했다.

대책위는 윤 행장이 협상에 좀 더 적극적인 태도로 다가서길 바라면서도, 이 사건으로 피해를 입은 국민을 위해 기업은행 행수를 임명하는 대통령과 청와대가 직접 나서줄 것을 요청했다. 

관계자는 “직접협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윤 행장의 결단이 (우선) 있어야 한다고 본다”며 “결단을 내린다면 피해자들은 은행과의 직접협상을 통해 이 문제를 원만하게 해결할 수 있도록 노력할 자세가 되어 있다”고 말했다.

   
▲ ‘기업은행 디스커버리펀드 사기피해 대책위원회’는 지난해 11월9일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검사결과를 발표하고 피해 해결을 촉구하는 집회를 개최했다./사진=미디어펜


하지만 기은은 이미 법리검토를 통해 대책위의 의견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점을 내세우며 피해를 최소화하는 데 노력한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내놨다. 

기은 관계자는 “디스커버리 판매사 최초로 지난해 6월 투자원금의 50%를 선가지급하는 등 투자자 피해 최소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대책위가 사적화해 실무협상단 구성을 요청했으나 이미 법리검토 등을 통해 현실적으로 어려운 사안임을 감안, 부정적 의견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또 금감원의 제재심과 분조위 절차가 진행 중이므로 이에 성실히 임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한편 디스커버리펀드는 장하성 주중 한국대사(전 대통령비서실 정책실장)의 동생 장하원 씨가 대표로 있는 디스커버리자산운용이 기획한 사모펀드다. 

위험등급 6등급 중 최고등급(1등급)인 ‘초고위험’ 상품임에도 펀드가입자에게 판매자가 원금을 전액 손실할 수 있음을 고지하지 않았고, 판매자가 소비자에게 안전하다는 식으로 속이면서 문제를 일으켰다. 

기은은 2017년부터 2019년까지 디스커버리US핀테크글로벌채권펀드와 US부동산선순위채권펀드를 각각 3612억원과 3180억원을 판매했다. 이중 글로벌채권펀드는 현재 695억원이 환매 중단된 상태다. 

일각에서는 이 사건을 두고 국책은행인 기은이 '정치적 입김'에 영향을 받아 불법적 정황을 감수하고 펀드를 대거 판매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해당 자산운용사는 창업한 지 갓 5개월밖에 안 된 자본금 25억원, 펀드순위 167위의 회사로, 기은이 상품을 확인조차 하지 않고 대규모로 판매해 논란을 일으켰다. 

[미디어펜=류준현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