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 국가의 자산…재벌 응징은 개발독재만큼이나 시대착오적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8일 열린 국정농단 관련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 받고 법정구속됐다. 이 부회장은 2018년 2월 5일 2심에서 집행유예로 석방된 지 1078일만에 서울구치소에 재수감됐다. 삼성은 물론 재계 전체가 큰 충격에 빠졌다.

지난해 10월 이건희 회장의 별세에 이어 3개월 만에 그룹 총수의 구속을 맞은 삼성은 또다시 시계제로 상태에 빠졌다. 2017년 수감됐다가 집행유예로 풀려난 이 부회장은 또 약 1년 반 동안 감옥에 있어야 한다. 2017년 2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이 부회장이 구속 중이던 당시 삼성전자의 대형 투자는 올스톱 됐었다.

이재용 부회장은 지난 4일 평택 반도체 공장을 찾아 "시스템반도체에서도 신화를 만들자. 새로운 삼성으로 도약하자"며 '뉴 삼성'을 선언했다. 이틀 뒤에는 삼성리서치센터에서 "선도기업으로서 몇 백 배 책임감을 갖자"고 강조하는 등 연초부터 현장행보를 이어왔다. 

위기 돌파를 진두지휘하던 오너의 구속은 기업에겐 치명적이다. 수십 조원에 달하는 반도체 투자와 인수합병(M&A) 등 '뉴 삼성'을 향한 현안이 근본부터 흔들릴 우려가 커졌다. 세계를 무대로 한 글로벌 기업의 의사결정은 분초의 싸움이다. 삼성과 같은 글로벌 기업의 총수 부재는 큰 위기이자 경쟁력의 상실로 이어진다.

이번 판결로 '뉴 삼성'의 새로운 주주친화 정책, 삼성판 환경·사회·지배구조 구축에 걸림돌이 예상된다. 삼성의 대외신인도에도 부정적 영향을 끼칠 것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우리 경제·산업 전반에 악영향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우려했다. 국가경제적으로 엄청난 손실을 치러야 한다는 것이다.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8일 열린 국정농단 관련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 받고 법정구속됐다. 이 부회장은 2018년 2월 5일 2심에서 집행유예로 석방된 지 1078일만에 서울구치소에 재수감됐다. /사진=연합뉴스

삼성이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나 위상은 절대적이다. 2019년 기준 삼성그룹 매출은 314조 원을 기록했다. 국내총생산(GDP)의 16%에 달하는 규모이며 국내 기업이 내는 법인세의 비중도 이와 비슷하다. 삼성전자의 시가총액은 코스피 전체 시총의 25%에 육박하고 있다. 

삼성의 오너 리스크는 한국경제의 위기나 다름없다. 삼성은 우리나라의 최대 효자산업인 반도체 생산과 수출을 주도하고 있다. 대한민국 미래 먹거리를 키우는 데도 선두를 달리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반도체와 스마트폰, 인공지능(AI) 등 삼성전자가 주력하는 분야에서 글로벌 기술 전쟁은 격화되고 있다. 반도체 시장은 인텔이나 도시바처럼 순간의 방심으로 순식간에 변방으로 밀리는 정글이다. 

자율주행차와 AI 가전, 5세대 이동통신 상용화 등으로 삼성전자의 새로운 성장동력인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시장만 해도 그렇다. 파운드리 수요가 급증하자 선두 업체인 대만의 TSMC는 올해 40조원이 넘는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미국 시스템반도체 업체 엔비디아도 설계업체 ARM을 44조 원에 인수하는 등 세계 반도체 업계는 심하게 요동치고 있다. 삼성전자도 대규모 투자나 중요한 M&A에 실기하면 일대 위기를 맞을 수밖에 없다. 4년간 사법 리스크에 발이 묶여 투자에 속도를 내지 못하던 삼성전자는 이 부회장 재구속으로 상황이 더 어렵게 됐다.

지금은 코로나19가 불러온 미증유의 경제위기다. 이런 때에 초일류 기업의 발목을 잡는 사법부의 판단이 나온 것은 유감이다. 이 부회장은 2018년 2월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난 뒤 국내외를 누비며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그 노력의 성적표가 지난 2년간 삼성의 비메모리 반도체와 바이오 분야의 눈부신 성과다. '10만전자'를 바라보며 동학개미들이 몰리고 있다.

이런 와중에 내려진 이번 판결이 우리 경제에 몰고 올 충격은 예측불가다. 갈수록 신기술 선점은 타이밍이다. 이 부회장의 부재로 삼성이 이러한 기회를 놓칠 수도 있다는 것은 결코 과장된 우려가 아니다. 노키아와 소니의 악몽이 결코 멀리 있지 않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5월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경영권 대물림 포기까지 약속했다. 재판부가 양형에 반영하겠다며 제안해 만들어진 준법감시위원회도 '실효성 미흡'으로 배척했다. 결국 대한민국에서 기업인으로 산다는 것은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것과 같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 부회장에게 내려진 유죄 판결의 '묵시적 청탁'이라는 논리는 그야말로 '관심법'이나 다름없다. 2심에선 묵시적 청탁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대법원이 이를 뒤집었고, 파기환송심에서 재인정한 것이다. 이는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만큼 입증하지 못한다면 피고인에게 유리하게 판단한다'는 형사재판의 대원칙에도 위배된다, 명백한 증거도 없이 어떻게 사람 마음속을 알 수 있을까. 

대한민국에서 대통령의 요구를 외면할 기업이 진짜 있다고 믿는 것일까. 문재인 정부 들어 기업 환경은 악화일로다. 상법·공정거래법에 이어 중대재해기업처벌법까지 국회 문턱을 넘었다. 규제의 홍수다. 아직도 재벌을 응징해야 한다는 시각은 개발독재만큼이나 시대착오적이다. 기업은 국가의 자산이다. 그럼에도 기업인들은 여전히 교도소 담장 위를 걷고 있다. 
[미디어펜=편집국]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