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개혁' 완수라는 명분으로 결국 윤석열 정치판 끌어들인 셈
권력 수사·검찰 수사권 수호 모두 버리고 사실상 대선 출마 선언
   
▲ 이석원 정치사회부장
[미디어펜=이석원 정치사회부장]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사의를 끌어낸 것은 더불어민주당의 강경파들이다. ‘검찰개혁도 숨을 쉬어가며 해야 한다’고 이런저런 우려를 하는 사람들(또는 민심들)의 생각을 무시하고 ‘물 들어왔을 때 노 저어야 한다’고 밀어붙인 민주당 강경파들이 결국 윤 전 총장을 끌어내리는데 성공한 것이다.  

또한 그들의 ‘미련’한 밀어붙이기는 내년 대선 판도를 뒤흔들어 놓았다. 이제 윤 전 총장 본인이 “나는 내년 대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선언을 하기 전에는 ‘자연인 윤석열’은 차기 대선 주자다. 아직까지 민주당이 독주하다시피 한 내년 대선 판도에 찬물을 끼얹은 것도 중대범죄수사청(이하 중수청)을 밀어붙인 민주당 강경파다. 

한 마디로 민주당 강경파의 무모하고 정치적이지 못한 과욕이 정권을 유지하려는 민주당을 깊은 수렁으로 던졌다. 

설사 중수청이 아니었더라도 윤 전 총장은 검사 옷을 벗어던지고 정치판으로 뛰어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년 대선판은 애매했다. 추미애 전 법무부장관이 윤 전 총장을 징계하려고 했고, 또 그것이 법원에서 구제된 상황에서 특별한 이슈없이 윤 전 총장이 갑자기 총장직을 던지고 정치판으로 뛰어들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민주당 강경파가 울고 싶은 애 뺌을 제대로 때려줬다.

민주당에서도 윤 전 총장의 그런 움직임에 대해 슬쩍 눈치는 챈 듯하다. 윤 전 총장이 그제 국민일보와 인터뷰에서 “100번이라도 직을 걸고”라고 말하고, 또 어제 ‘검수완박’니 ‘부패완판’이니 하는 지극히 정치적인 수사를 사용할 때 민주당 지도부는 “아차!”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전 같으면 윤 전 총장의 그런 정치적인 발언에 대해 거품을 물고 비판하고 비난했을 테지만 민주당 지도부도, 의원 개개인도 입을 꼭 다물었다. 마치 ‘더 심기 건드리지 말자’는 듯.

하지만 이미 그러기에는 너무 늦어버혔다. 윤 정 총장이 ‘100번이라도 직을 걸고’나 ‘검수완박, 부패완판’이라는 ‘너무나 정치적인’ 신조어를 만들어냈을 때 윤 전 총장은 이미 정치판으로 마음을 옴겨 놓은 것이다. 결국 민주당은 스스로의 오만과 오판으로 내년 대선판을 더욱 혼돈스럽게 만들었고, 이해찬 전 대표의 ‘20년 집궈 정당’ 계획도 심하게 어려워진 것이다. 스스로가 자초한 ‘더 혼탁해진 정치판’이다.

윤 전 총장은 무책임하기 이를데 없다. 그리고 너무나 영악하게 정치적이다. 

우선 윤 전 총장은 3일 대구고검 앞에 놓인 응원의 화환을, 더 거슬러올라가 대검 건물을 빙 둘러쌌던 응원의 화환들만을 봤다. 이미 검찰총장으로 권력으로부터 검찰의 중립을 지켜달라는 시민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그를 ‘차기 대통령 후보’라고 연호하는 시민들의 목소리만 들었다. 

자신을 두고 환호하는 사람들 중 권력층에 대한 수사를 뚝심으로 밀어붙이는 것을 바랐던 사람들은 그가 총장직으로 버리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일선 검사들은 추동력을 잃고 수사가 지지부진해질 것이고, 본인의 말처럼 ‘검수완박’이 될 것이다. 

게다가 그가 사의를 표하면서 “이 사회가 어렵게 쌓아 올린 정의와 상식이 무너지는 것을 더는 두고 볼 수 없다”고 했는데, 그게 중수청의 설립을 이야기하는 것이라면 그는 ‘ 사회가 어렵게 쌓아 올린 정의와 상식이 무너지는 것’을 두 눈 뜨고 똑바로 보게 되는 것이다. 그 자리에서 “이 나라를 지탱해온 헌법정신과 법치 시스템이 파괴되고 있다”고 항변했지만, 그것이 검찰의 수사권을 완전히 박탈하는 입법을 두고 하는 얘기였다면 그는 ‘이 나라를 지탱해온 헌법정신과 법치 시스템이 파괴되’는 것을 방임하게 됐다.

   
▲ 윤석열 검찰총장이 4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 출근해 자신의 거취 관련 입장을 밝힌 뒤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게다가 그의 사퇴 시점도 절묘하다. 차기 대선이 딱 1년하고도 닷새 남은 시점. 

지난해 12월 열린민주당 최강욱 의원이 대표 발의하고, 같은 당 김진애 강민정, 민주당 김종민 김남국 의원 등 13명이 공동 발의한 ‘검찰청법 일부개정안’에는 ‘검사로서 퇴직 후 1년이 지나지 아니한 사람은 ’공직선거법‘ 제49조에 따른 후보자등록을 할 수 없다’고 돼 있다. 기존 공직선거법에는 공직 선거 후보자로 입후보하는 경우, 90일 전까지 공직에서 사직하도록 돼 있다. 그런데 개정법률안에는 공직자 중 검사에 한해서는 공직 선거 출마 가능 시한을 강화한 것이다.

게다가 이 법은 국회에서 통과될 경우 법 시행 당시에 퇴직한 검사도 저촉받도록 소급입법 했다. 그 시점은 2021년 3월 9일이고, 윤 전 총장은 그 법 개정안이 통과되더라도 내년 대선에 출마할 수 있게 2021년 3월 4일 사의를 표명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불과 이틀 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100번이라도 직을 던질 수 있다”고 한 그의 말은 허언이 되는 셈이다. 4일 사의를 표명할 거면서 2일 훨씬 더 순수한 충심으로 검찰의 수사권을 지키기 위해, 본인이 얘기한 헌법정신과 법치 시스템이 파괴당하지 않게 하기 위해 ‘100번이라도 직을 건다’는 말을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지금 시점에서 윤 전 총장이 검찰총장직을 던진 것의 순수성은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윤 전 총장이 기자들 앞에서 서기 전 사의 표명 가능성이 짙다는 보도들이 나왔을 때 한 일선 검사는 “결국 자신의 개인 영달을 위해 조직을 버린 것”이라고 화를 냈다. 월성 원전 문제나 김학의 불법 출금 관련 수사 등이 동력을 잃고 표류할 것은 뻔하고, 윤 전 총장이 검찰 수사권을 지켜내기 위해 싸우는데 힘을 보태겠다던 이들의 의기를 꺾는 것도 당연하기 때문이다.

윤 전 총장은 사의 표명에서 “제가 지금까지 해온 것과 마찬가지로 앞으로도 어떤 위치에 있든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힘을 다하겠다”고 했다. 이는 내년 대선 출마 선언과 다르지 않다. 그가 검찰총장직을 버리고도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힘을 다할’ 방법이 대통령이 되는 것 외에 또 무엇이 있을까?

민주당의 ‘윤석열 밀어내기’는 결국 ‘윤석열의 대선 출마 선언’으로 귀결된 셈이다. ‘검찰주의자’였던 윤 전 총장은 이제 치열한 정치판에 놓인 ‘흑돌’이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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