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한진 KTB수석연구원
[미디어펜=김은영기자] 올해로 30년을 증권가 애널리스트로 살아온 김한진 KTB투자증권 위원. 증권가 애널리스트의 '아버지'라 불릴 만한 그는 1986년 신영증권에 입사해 경제 분석가로 활동하다 외환위기 직후 자산운용사에서도 활약을 펼쳤다.

이후 다시 증권으로 돌아와 현재 KTB투자증권의 수석연구위원으로서 고객의 합리적인 투자결정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다. 그가 반환갑의 세월을 애널리스트로 몸담은 데는 고객을 위한 투자 정보와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는 자부심 때문이다.

자산운용까지 합해 올해로 30년째 여의도의 삶을 산 그를 직접 만나 그가 남긴 여의도의 발자국을 되돌아 봤다.

Q : 언제부터 애널리스트로 활동하게 됐나?
A: 1986년도에 처음으로 신영증권 리서치에 입사해서 지금까지 증권사에 일을 하고 있다. 그 당시는 리서치가 아닌 조사부 정도였던 것으로 지금의 리서치센터와는 사뭇 달랐다. 현재의 리서치처럼 체계적인 분석을 하고 전략을 짜는 이런 리포트 형태가 부족했다.

지금과 같은 이런 리포트 보고서는 외환위기 이후 자리 잡게 된 것이다. 그전까지는 체계성도 없었으며 섹터 애널리스트, 투자전략, 이코노미스트 등과 같은 전문성이 분업화 되지 않았다.

또 어닝 전망과 같은 모델 등도 부실했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제조업부분에서는 과잉이나 비효율성 등이 해소됐고, 금융산업 부분에서도 자원배분이 효율성을 갖췄으며 은행들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하게 됐다.

증권사 경우에서도 과학적이고 분석적인 리포터 보고서는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많이 나오게 된 것이다. 즉, 애널리스트라는 체계는 외환위기 이후에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다.

Q : 외환위기 때의 기억은?
A : 외환위기 때 외국 증권사의 애널리스트들과 반대 되는 의견을 끊임없이 제시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당시 외국 증권사의 애널리스트들은 한국에 대해 굉장히 비관적인 시각이 강했고 경제체제가 아주 나쁘다는 평판만 내놓았다. 그리고 외사들이 점점 철수하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근데 우리는 달랐다. 우리는 아무래도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말처럼 우리의 경제는 살아날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을 꿋꿋이 내놓았다. 환율이 다시 1000원대가 되고 금리가 한 자리가 될 것이며, 코스피 지수의 회복도 곧 나타난다는 등의 분석을 내놓았다.

사실 생각해보면 그때 우리 애널리스트들은 지금처럼 정보가 많은 것도 아니고 전문성이 미국이나 선진국에 비해 부족했다. 격차가 많이 났음에도 거기에 뒤지지 않기 위한 우리 경제의 자존심을 지키고자 했던 기억이 난다.

Q : 30년 전의 여의도 증권가의 모습은?
A : 여기 여의도는 거의 공터였다. 현재 대신증권 있는 쪽에만 증권사가 좀 있었고 KTB투자증권 이 근처는 거의 빈 공터였다. 건물이 빡빡하게 세워진 여의도가 아니라 테니스장이 있었던 여의도였다.

또 현재 없어진 대형 증권사도 많다. 당시 럭키, 대우, 동서, 대신 등이 대형사였고, 중소형사에서 신영. 부국, 유화 등이 있었다. 여의도보다는 증권가들이 명동에 많았다.

사채업자들과 증권가들이 명동에 몰려 있었다. 그래서 주로 사채업자들이 주식을 사고파는 일이 많다보니 주식, 증권 이런 것들이 도박과 같은 이미지를 보이기도 했다. 그러다가 명동에 있던 증권사들이 하나 둘씩 여의도로 왔고 지금의 여의도 증권가가 만들어졌다.

Q :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무엇인가?
A :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은 맥주집이다. 맥주집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됐고, 많은 것을 배우게 됐다. 신영증권 첫 직장에 있을 당시 상사가 굉장히 인사이트를 많이 가르쳤는데 그 분이 거의 맥주집에서 노가리 먹으며 여러 이야기를 해주셨다.

상사 앞에서는 기록하는 모습을 보이기가 힘들어서 화장실가서 말씀하셨던 내용들을 다 메모했었던 기억이 난다. 또 다른 말씀 놓치기 싫어서 자리에 돌아가서 또 듣고 또 화장실 기록하고, 이렇게 공부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 상사가 했던 말 중에 기억나는 것은 주가는 경기가 좋을 때만 오르는게 아니다 라는 것이다.

경기가 나쁠 때 금리를 내리면 그 힘으로 경기가 오른다든지 다른 변수로도 주가는 오를 수 있다는 이런 이야기다. 지금은 변수에 대한 여건을 항상 열어놓지만 당시에는 참 신기했다. 그래서 첫 직장이 참 좋았고 지금도 이 직업에 있는 이유는 첫 직장에 대한 향수라고 할 수도 있다

Q : 오랜동안 애널리스트만 고집한 이유는?
A : 다른 직업에 종사는 분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애널리스트들은 특히 자기 계발을 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그래서 책을 많이 읽는 것이 중요하다. 굳이 경제 분야의 책만을 읽는 것이 아니라 여러 분야를 읽고 주위 환경을 읽을 줄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인문학 서적, 역사책, 과학책도 많이 읽어야한다. 그러나 가끔 세계 상황이라는 부분 안에 갇혀서 생각할 수 도 있다. 그래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생각이 닫힐 수 있다. 잡혀버린 생각에서 벗어나려면 역발상, 비논리적인 것에서도 답을 찾아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런 노력들이 단순히 자기의 성장으로 끝내서는 안된다. 이런 노력을 하는 이유는 바로 클라이언트, 고객들에게 적합한 투자 정보를 주고 투자 가이드라인을 잡기 위한 것이다. 즉 배워서 남에게 주자는 마음가짐도 있어야 한다. 애널리스트의 매력을 여기서 느낄 수 있다. 나를 계발해서 나와 너가 함께 좋은 결론을 내고자 하는 것이 있어야 한다. 1+1이 아니겠는가 싶다.

Q : 앞으로의 각오는?
A : 애널리스트 이름이 자기 이름을 걸고 자기 자존심을 걸고 글을 쓰는 직업이라서 자부심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자신이 이름으로 내 놓고 쓴 글이기 때문에 그에 대한 책임도 당연히 가져야 한다. 이 여의도에서 살아가는 한 책임과 자존심을 걸고 맡은 바 업무에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고자 하는 다짐을 항상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