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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으로 수렴한 영국의 보수와 진보
편집국 기자 | 2021-03-24 15:24
공립 교육이 키운 지도자 대처·사립 교육이 배출한 엘리트 블레어 국가 번영 이끌어

마거릿 대처(제71대 영국총리. 재임기간: 1979년 5월~1990년 11월)는 영국 역사상 가장 강력한 권력을 휘둘렀던 평민 출신 여성이었다. 엘리자베스 1세 여왕 이후 등장한 최고의 여성 권력자로 불린다. 입법, 사법, 행정 3권이 분리되어 있지 않은 의원내각제에서 여당의 대표이자 총리로서 11년 반 동안 '독재적 권력'을 행사하며 영국 사회를 완전히 탈바꿈시킨 인물이다. 신자유주의의 원조로 불리는 '대처리즘'이란 이념을 탄생시킨 사상가이기도 하다. 


영국은 국민이 직접 뽑는 하원의원 선거에서 승리해 하원을 지배하는 여당 대표가 상원 의장을 임명한다. 상원 의장은 대법원장이기 때문에 집권 여당의 대표는 입법권과 사법권을 장악한다. 여당 대표는 총리가 되어서 행정권까지 휘두른다. 미국의 대통령제는 입법, 사법, 행정의 3권분립을 바탕으로 견제와 균형이 작동하는 체제이지만 영국의 의원내각제는 하원을 장악하는 다수당 대표가 입법, 사법, 행정을 모두 장악하고 책임정치를 펼친 뒤 국민의 심판을 받는 구조다. 


시민권(투표로 선출된 권력)이 왕권에 대항해 권력을 이양받는 형식으로 민주화가 진행됐기 때문에 일어난 현상이다. 그래서 영국 총리는 총선에서 압도적 의석을 확보하면 대통령 이상의 권력을 가진다. 총선에서 과반 이상의  다수당이 못되면 3당과 연립해야하기 때문에 권력이 크게 제한된다. 대처는 여성 최초의 총리가 된 것은 물론 3번의 총선에서 압도적 승리를 거둬 탄탄한 권력 기반을 창출했고 이를 바탕으로 2차 대전 이후 영국 사회를 지배해온 '사회주의' 풍조와 전쟁을 치러 승리를 일궈냈다. 


대처는 20세기 영국 역사상 가장 강인하며 가장 유능하고 가장 성실한 총리였다. 국내적으로는 사회주의, 노동조합, 복지만능, 패배주의와 싸웠고 국제적으로는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공조해서 공산권과 싸웠다. 영국 안에서는 영국병을 치유했고, 국제무대에서는 공산권 붕괴라는 놀라운 업적을 이뤘다. 


 
마가렛 대처 전 영국 총리(오른쪽)가 80세 생일파티에서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와 그녀의 남편 필립공과 인사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대처는 적자예산을 편성해서 정부 주도로 완전고용을 성취하고,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장점만을 채택한 혼합경제를 추구하며 '요람에서 무덤까지'로 대표되는 포괄적인 복지국가를 유지하는 것을 '불가능한 기만'으로 보았다. 개인에게 선택의 자유를 부여하고, 기업 활동을 옹호하며 보편적 복지가 아니라 선별적 복지로 어려운 사람을 더 많이 돕는 것이 옳다고 믿었다. '정부가 시장보다 더 쉽게 실패할 수 있으며 정부의 실패는 시장의 실패보다 더 큰 재앙의 근원이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뼛속까지 자유주의자였다.


대처의 가치관은 1975년 당 대표 연설에서 잘 드러난다. 대처는 이 연설에서 '인간 불평등'은 그 자체가 자연스러운 것이며 모든 인간이 평등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사회주의자들의 사기극이라고 지적했다. 대처는 "우리는 그 누구도 다른 사람과 같을 수 없으며 완전히 불평등하다. 그런데도 사회주의자들은 반대로 말한다. 우리는 모든 사람이 불평등할 권리를 갖는다고 믿는다.(중략) 모든 사람은 자신의 능력을 자신이 선택한 방식대로 개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대처가 제시한 보수주의는 경제적 자유주의와 사회적 도덕주의가 결합한 것이었다. 재정지출을 삭감하고 작은 정부를 실현해 자유시장경제를 활성화하는 한편 개인과 기업의 진취적 기상과 정신을 옹호해야 번영한다고 믿었다. 개인에게는 엄격한 자기통제, 규율과 도덕률, 가족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무책임과 방종을 경계했다. 공동체에 헌신하는 자력으로 성취한 개인들에게 찬사를 보냈다. 기업을 키우고 경제성장을 통해 전체 파이를 키워야 개인이 더 큰 파이를 가질 수 있다는 논리를 제시하며 중산층과 부유층의 확대에 노력을 기울였다. 


대처의 대척점에 서 있는 사람이 노동당이 낳은 20세기 최고의 정치인으로 불리는 토니 블레어(제73대 영국총리. 재임기간:1997년 5월~2007년 6월)다. 18년 보수당에 정권을 빼앗겨 패배주의에 빠져있던 노동당에 혜성과 같이 등장해 재집권의 길을 열었다. 블레어는 이른바 '제3의 길'을 주창하면서 전통적인 사회주의 노선을 포기해 진보진영뿐만이 아니라 중도 보수 진영을 흡수함으로써 집권했다. 


그는 당 대표가 되자마자 노동당 강령에서 "생산수단을 국유화한다"는 마르크스 철학의 핵심 내용을 삭제했다. 그리고 기업활성화 정책, 노동의 유연성 확대, 공기업 민영화 등 대처가 펼친 자유주의 정책을 적극 수용했다. 블레어는 '제3의 길'을 내세워 1997년부터 10년 이상 영국을 통치해 독일에 이어 유럽 제2의 경제대국 위치를 지켜냈다. 


모리스 사치 전 대처 총리 공보담당관은 "더 큰 케이크를 만드는 것만이 모든 사람이 더 큰 조각을 갖도록 하는 방법임을 대처는 확실히 알려줬다. 대처는 개인이 가난해서는 결코 독립할 수 없으며, 자유로울 수도 없다는 것을 명확하게 알았다"고 말했다. 블레어 역시 대처에 대해 "내가 한 거라곤 그녀가 만든 정책을 조금 수정한 것뿐"이라고 말했다. 블레어는 노동당이 낳은 대처의 계승자로 불렸고 본인도 이를 자랑스러워했다. 


흥미로운 점은 두 지도자가 정반대의 배경을 가졌다는 점이다. 대처는 작은 시골 도시에 있는 평범한 중산층 가정의 딸이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우리로 치면 경기도 작은 도시의 소형 마트(구멍가게) 주인으로 초등학교 교육만 받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독실한 감리교도로 남보다 더 노력하고, 더 많이 일하고 더 많이 창의적인 일에 몰두하면 언젠가는 보답이 온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대처는 이런 분위기 속에서 열심히 노력한 학생이었다. 영국의 그 유명한 사립교육 혜택은 전혀 받지 못했고 공교육 체계 속에서 성장했다. 공립학교 가운데 시험을 쳐서 입학하는 그래머 스쿨(Grammar Shool)을 다녔다. 그래머 스쿨은 이른바 '실렉티브 스쿨'로 시험을 봐서 들어가는 공립 중고등학교이다. 우리로 치면 입시가 있던 시절 각 지역에 있던 공립 명문학교 같은 곳이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열심히 공부한 대처는 옥스퍼드 대학 화학과에 진학했지만, 옥스퍼드 대학에서 보수당의 정치 조직에 들어가 정치인의 길을 걷게된다. 


토니 블레어는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블레어는 잉글랜드의 부잣집 아들이지만 스코틀랜드 최고의 명문 사립 중고등학교인 페티스 칼리지(Fetes College)를 다녔다. 하키, 수영, 승마, 테니스 등 각종 체육교육은 물론 전문적인 음악 교육을 포함해 말 그대로 귀족교육을 받았다. 대처가 다닌 학교는 학비가 무료였지만, 블레어가 다닌 학교는 학비가 1년에 5천만원에 달했다. 블레어 총리는 이 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옥스퍼드 법대에 진학해 변호사가 됐고, 노동당에 스카우트돼 순식간에 스타가 됐다. 


대처와 블레어는 이렇게 전혀 상이한 배경을 가졌지만 '선택의 자유'를 중시하며 시장원리를 존중하는 지도자가 됐다. 대처는 중산층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보수주의의 전형을 만들었고, 블레어는 실용주의적 좌파 정당으로 노동당을 변모시켜 집권했다. 


대처와 블레어로 이어지는 영국은 보수진영과 진보진영이 이념의 도그마에 매몰되지 않고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하는 영국의 실용주의(Pragmatism) 정신으로 수렴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정치적 '극한대립'이 지배하는 오늘 이 시점의 대한민국에서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 무엇인지 생각해본다. /송림·자유기고가


[송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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