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지호 기자]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과 정의선 부회장의 현대글로비스 지분 매각이 불발되면서 삼성SDS를 비롯한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정 회장 부자의 이번 블록딜(대량 매매) 무산으로 단기 충격을 받고는 있지만 아직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선택 가능성은 많이 남아있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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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부회장./사진=뉴시스 |
13일 투자은행(IB) 업계 등에 따르면 정 회장과 부자는 보유중인 현대글로비스 주식 1627만1460주(43.39%) 중 502만2170주(13.39%)를 시간외 블록딜 방식으로 매각하려던 계획을 철회했다. 이 블록 트레이드의 주관은 씨티글로벌마켓증권이 맡았고 투자자 모집을 위해 제시된 주당 할인율은 12일 종가보다 7.5∼12% 낮은 주당 26만4000∼27만7500원 수준이었다. 하지만 블록딜 물량이 방대하고 일부 조건이 맞지 않아 성사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블록딜이 무산된 데는 시장이 그간 현대글로비스를 중심으로 한 지주사 전환과 정 부회장으로의 경영권 승계에 무게를 뒀던 것도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는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차→현대제철→현대모비스의 순환출자 구조로 돼 있다.
하지만 정 부회장은 순환출자구조의 핵심에 있는 현대모비스 지분을 갖고 있지 않다. 현대모비스 지분은 기아차(16.88%), 정 회장(6.96%), 현대제철(5.66%), 현대글로비스(0.67%)순으로 보유하고 있다. 정 부회장은 순환출자 고리에 들어있는 회사 중 기아차 지분만 1.74%, 현대글로비스 지분 31.88%를 소유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정 부회장이 그룹 승계를 위해 보유 중인 현대글로비스 지분을 매각해 현대모비스 지분을 사들이거나 현대글로비스와 현대모비스를 합병을 통한 지주회사 체제 전환으로 그룹의 경영권을 승계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왔다. 시장은 현대글로비스와 현대모비스를 합병을 유력하게 점쳐왔다. 하지만 이번 블록딜 시도로 현대글로비스와 현대모비스를 합병해 지주사로 전환하려는 전망이 타격을 입게 된 것이다. 현대글로비스 주가는 13일 하한가로 직행했다.
블록딜이 실패로 돌아갔지만 정 회장 부자는 현대글로비스 지분을 처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정부는 2013년과 지난해와 공정거래법과 시행령을 고쳐 자산총액 5조원 이상 대기업 중 대주주 일가의 지분이 30%를 초과하는 계열사의 내부거래 금액이 200억원 또는 연간 매출의 12% 이상일 경우 처벌토록 했다.
이번 블록딜이 성공했다면 정 회장 부자의 현대글로비스 지분은 43.39%에서 29.99%로 낮아질 수 있었다. 때문에 이번 블록딜을 통해 공정거래법의 처벌 규정도 피하면서 경영권 승계를 위한 현대모비스 지분 취득을 위한 자금 확보를 노린 것이었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정 부회장 측은 현대글로비스와 현대모비스의 합병을 통해서는 현대모비스의 충분한 지분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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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사진=뉴시스 |
삼성그룹도 현대차그룹과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이 부회장은 제일모직→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SDI→삼성물산→제일모직으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구조의 정점에 있는 제일모직의 지분 23.24%를 보유하고 있는 최대주주라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나은 편이다.
그러나 이 부회장이 그룹에 대한 지배력을 높이려면 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의 지분을 늘려야 한다. 이 부회장의 삼성전자 지분율은 0.57%로 미미한 수준이다. 이 부회장이 아버지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으로부터 삼성전자 지분 3.38%와 삼성생명 지분 20.76% 넘겨받으려면 천문학적인 세금을 물어야 한다. 이에 삼성전자가 지주회사와 사업회사로 인적분할한 뒤 제일모직과 합병하거나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을 합병하는 시나리오가 거론되고 있다. 삼성물산은 삼성전자 지분 4.1%와 삼성SDS 지분 17.1%를 보유하고 있다.
삼성SDS는 상장이후 이 부회장이 지분을 언제든 내다팔 수 있다는 우려가 불거지면서 주가가 약세를 보여왔다. 이 부회장이 정 회장 부자와 같이 삼성SDS 지분을 시장에 내던질 것이냐를 두고는 시각이 엇갈리고 있다. 이 부회장은 보호예수로 인해 오는 5월까지 보유 삼성SDS 지분을 내다팔 수 없다. 그러나 5월 이후 이 부회장이 삼성SDS 지분을 어떻게 처리할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최관순 SK증권 연구원은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SDS 지분을 꼭 매각하지 않아도 될 뿐 아니라 정 회장 부자처럼 시장이 아니라 삼성전자에 팔수 있고 지분 맞교환을 시도할 수도 있다”며 “이 부회장에는 여러 가지 카드가 있기 때문에 이번 정 회장 부자의 지분매각 실패를 삼성SDS의 지배구조 개편에 적용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김인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삼성SDS 지분은 그룹 지배구조와 관련이 없기 때문에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삼성전자 지주사에 현물로 출자하거나 상속세 마련을 위해 이 부회장이 팔아버릴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지목현 메리츠종금증권 연구원은 “지분관계는 추정할 수 없는 문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