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윤 조서 남기지 않아 논란 자초…'3자 협의 난관' 검찰 직접수사·기소 가능성
[미디어펜=김규태 기자] '김학의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한 불법 출국금지' 사건 피의자인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에게 자신의 관용차까지 내주고 '휴일 에스코트 조사'를 받게 한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이 궁지에 몰렸다.

'뱉은 말을 지키기 위해 자진 사퇴하라'는 법조계 일각의 지적에서부터 공수처·검·경 간 사건·사무규칙 제정 논의가 벽에 부딪힐 것이라는 관측까지, 공수처·검찰간 갈등의 골이 깊어질 전망이다.

일명 '황제 조사' 파문이 커지자 2일 김진욱 처장은 "보안 상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며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아, 앞서 공정성과 중립성을 수차례 강조했던 자신의 얼굴에 스스로 먹칠을 했다.

김 처장은 이날 추가 해명자료를 통해 "조사 당시 공수처에는 청사 출입이 가능한 관용차가 2대 있었는데 2호차는 피의자의 도주를 방지하기 위해 뒷좌석에 문이 열리지 않는 차량이라 이용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검찰 내 친문 핵심인사인 이성윤 지검장에 대한 김 처장의 편향적인 태도에 법조계는 "앞으로 공수처의 모든 조사 대상자는 전부 이 지검장처럼 공수처장 관용차를 내주고 황제 조사 받게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비아냥까지 나온다.

   
▲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처장. /사진=공수처 제공
앞서 김 처장은 지난 3월 7일 이 지검장을 만난 사실에 대해서도 9일이 지난 3월 16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질의응답 과정에서 알려져 논란을 자초했다.

더욱이 김 처장은 당시 피의자인 이 지검장은 65분간 만나면서 면담 및 기초 조사를 했다고 밝혔으나 조서 한 줄도 남기지 않아 더 큰 논란을 야기했다.

불법 출국금지 사건 수사를 무마한 혐의를 받고 있는 이 지검장은 줄곧 자신의 사건을 수사해온 수원지검의 출두 요구를 4차례 거부했고 공수처 이첩을 요구한 바 있다.

사건을 이첩 받은 김 처장은 피의자인 이 지검장을 불러 면담하고 기초조사를 했다고 주장하는 상황이다.

김 처장 덕분에 이 지검장은 공수처장 관용차로 출입하면서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고 출입기록을 남기지 않은채 국가보안시설인 정부과천청사 5동(공수처)에 1시간 넘게 머물렀다. 사건 피의자인데도 아무런 조사 내용을 남기지 않았다.

김 처장의 이러한 행보는 청사 출입 법령(행정안전부 훈령 청사출입보안지침 15·17·19·33조)과 대통령령인 공용차량 관리 규정(10조)을 위반한 것은 물론이고, '피의자 조사 시 조서를 남겨야 한다'는 형사소송법(244조) 및 '조서 작성 않을 경우 사유를 별도 서류로 작성해 수사기록에 편철해야 한다'는 '검사와 사법경찰관의 상호협력과 일반적 수사 준칙에 관한 규정'(26조) 또한 어긴 것이다.

겉보기엔 김 처장이 주도권을 쥐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칼은 검찰이 쥐고 있다. 검찰은 김 처장의 '황제 조사'와 관련해 주요 피의자를 전격 기소하고 나섰다.

지난 1일 수원지검은 차규근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과 이규원 당시 대검 과거사진상조사단 검사를 재판에 넘겼다.

김 처장은 앞서 사건을 검찰로 재이첩하면서 '수사 뒤 기소 여부를 판단할 수 있도록 사건을 다시 넘겨달라'고 요청했으나, 이를 단칼에 거부한 셈이 됐다.

향후 검찰은 이 지검장 사건 또한 공수처로 송치하지 않고 불구속 기소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김 처장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공익신고인이 허위공문서 작성 등 혐의로 김 처장을 검찰에 고발했다. 변호사단체인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모임은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 및 부정청특금지법 위반 등으로 검찰에 고발해 김 처장 자신이 검찰의 출두 요청을 받을 가능성도 생겼다.

   
▲ 검찰 내 '친문' 핵심인사로 꼽히는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 /사진=대검찰청 제공
그토록 공정성을 강조했으면서 뒤로는 정반대 행보를 보인 김 처장에 대해 법조계는 당장 자진 사퇴까지 거론하고 있다. 공수처장 본인이 시작부터 완전히 다른 행보를 보인 이상, 뱉은 말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지방청에 근무하는 한 현직 부장검사는 3일 본보 취재에 "검찰이 공수처 요구를 정면으로 거부하고 기소 사실을 공수처에 통지했다는게 포인트"라며 "말 그대로 김진욱 처장에게 물을 먹인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익명을 요구한 그는 "공수처 출범 시작부터 완전히 어긋났다. 누가 봐도 여러 관련 규정을 어긴 불법적 특혜인데 2호 관용차 핑계를 대고 있다"며 "자진 사퇴 가능성은 제로지만, 김 처장은 앞으로의 행보를 여기저기서 감시받고 견제받을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달 29일 공수처·검·경 간 열린 첫 3자 실무협의회는 서로의 입장만 확인하고 끝난 것으로 알려졌다.

사건·사무규칙 제정 논의가 공전되고 있는 가운데, 앞으로 김 처장이 어떤 전향적인 태도를 보일지 주목된다. 내미는 카드가 무엇이냐에 따라서 검찰이 이를 받을지, 혹은 갈등이 커질지 관심이 쏠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