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석명 연예스포츠팀장
[미디어펜=석명 연예스포츠팀장] 올해 미국 아카데미상(오스카상) 시상식이 다가오고 있다. 오는 26일(이하 한국시간) 열리는 2021년 아카데미 시상식을 한국 영화팬들은 지난해에 이어 다시 한 번 주목하고 있다. 미국 영화지만 사실상 한국 영화라 할 수 있는 '미나리'(감독 정이삭)가 무려 6개 부문 후보에 올라 수상 여부에 이목이 쏠리고 있기 때문이다.

'미나리'는 작품상, 감독상(정이삭), 남우주연상(스티븐연), 여우조연상(윤여정), 음악상, 각본상 등 아카데미 6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됐다. 지난해에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각본상, 국제장편영화상, 감독상, 작품상 등 4관왕을 휩쓴 바 있다. 한국 영화사상 최초의 쾌거에 영화팬들뿐 아니라 전국민이 감동하고 열광했다.

'미나리'는 올해 아카데미에서 어떤 성과를 올릴까. 지금까지 분위기나 다른 영화제 수상 결과를 볼 때 가장 유력한 수상 후보는 윤여정의 여우조연상이 꼽힌다.

윤여정 배우의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수상을 '미리' 축하해 본다.

아직 시상식이 열리지도 않았는데 윤여정의 여우조연상 축하를 앞당겨 하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 사진=영화 '미나리' 스틸컷


우선, 수상이 확실시 되기 때문이다. 그동안 유수의 비평가협회상, 각종 영화제 등에서 윤여정은 여우조연상을 휩쓸었다. 가장 최근인 지난 12일 열린 영국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수상까지 트로피를 무려 37개나 수집했다. 시상식 예측 매체 골드더비 투표에서도 윤여정은 1위를 차지해 아카데미 수상 가능성을 높였다. 수상 후 쏟아질 축하 홍수를 피해, 어차피 꼭 해주고 싶었던 수상 축하, 여기서 미리 해본다. "윤여정 배우, 장하고 자랑스럽습니다. 정말 축하 드립니다."

또 다른 이유는, 수상이 불발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일이 없었으면 하지만, 알 수 없는 일이다. 아카데미상 못지않게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진 골든글로브에서는 윤여정이 아예 여우조연상 후보에도 들지 못했다. 만에 하나라도 수상을 못하는 일이 벌어질 경우 축하를 못해주는 불상사(?)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영화관을 찾아 '미나리'를 직접 본 직후 윤여정 배우가 왜 그렇게 수많은 수상을 하는지 잘 모르겠다는 느낌이었다. 연기력 얘기를 하는 것은 아니다. 이민세대의 자식(딸)을 위해 물설고 낯선 이국만리 미국땅으로 건너가 손자, 손녀를 돌보는 한국 할머니 역을 연기한 윤여정은 영화 속 인물 그 자체였다. 연기 자체는 완벽했다.

다만, 너무나 익숙한 모습이었기 때문에 그런 느낌이 들었을 것이다. 몇몇 영화에서, 드라마에서 배우 윤여정을 봐왔다. '윤식당', '윤스테이' 같은 예능 프로그램에서 인간(결국은 배우이긴 하지만) 윤여정을 봐왔다. 그런 편안함에 또 하나의 편안함이 추가돼, 물 흐르는 듯한 연기를 물 흐르듯 받아들였는지도 모르겠다.

윤여정은 어떤 틀에 갇혀 있는 전형적인 배우는 아니었다. 재벌가나 부잣집 마나님 역을 해도, 깐깐한 시어머니나 자상한 어머니 역을 해도, 쟁쟁한 후배 여배우들과 수다를 떨어도, '죽여주는' 박카스 할머니나 치매 걸린 남편을 가슴으로 품는 할머니로 나타나도, 제주도 해녀 할망이 돼 사투리를 쓰며 물질을 해도, 외국에서 식당을 운영하며 직접 요리를 해도, 한옥에서 외국인 손님들을 맞는 영어 잘하는 숙박업소 사장을 해도, 윤여정은 윤여정이었다.

   
▲ 사진=더팩트 제공


세대 차이가 있다보니 윤여정 배우의 젊은 시절 연기는 거의 본 적이 없다. 한국영화사에 영원한 문제작으로 남아 있는 윤여정의 데뷔작 '화녀'(1971년, 감독 김기영)를 최근 영화 소개 프로그램에서 보면서 '한국 영화사에서 여배우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놀랍고도 대단한 분이었구나' 하는 생각을 새삼 했다.

데뷔 연도로 따지면 윤여정의 배우 인생은 50년이 됐다. 개인사로 꽤 긴 공백기를 가진 적도 있지만 젊어서도, 중년에도, 노년이 돼도 그는 꾸준히 연기와 함께 해왔다.

10여 년 전 윤여정이 토크 예능 '무릎팍도사'에 출연한 적이 있다. 그는 "배우가 제일 연기를 잘할 때는 돈이 필요할 때"라는 거침없는 말을 했다. 당시 그 얘기를 들었을 때 그야말로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배우들의 연기를 저속하게 빗댄 말이 아니었다. 연기가 인생이고 실생활이며 삶의 수단인 배우가 다른 배우들에게(또는 팬들에게) 해줄 수 있는 최상의 조언처럼 들렸다.

사실 배우 윤여정의 필모그래피에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이 대단한 것은 아닐 수도 있다. 데뷔작 '화녀'로 처음부터 국내 영화상(대종상 신인상,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과 해외 영화상(시체스영화제 여우주연상)을 휩쓸었고, 불과 5년 전에는 '죽여주는 여자'(2016)로도 해외 평단의 주목을 받으며 몬트리올판타지아영화제 여우주연상 등을 수상한 적이 있다. 

그렇다 해도 영화의 본고장 미국의 최대 영화제이자 전세계적으로 가장 주목받는 시상식인 아카데미이기에 수상 자체가 가지는 의미 자체는 각별할 것이다. 더군다나 윤여정은 50년 연기 경력을 쌓아 한국 나이 75세에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다. 와우~

덧붙여, 이번 수상을 진심으로 미리 축하(기원)하는 또 다른 이유. 최근 미국에서 아시아인에게 가혹하게 자행되고 있는 인종차별과 인종혐오 때문이다. '미나리'의 윤여정과 그 일가족을 보고도 아시아인(또는 다른 인종)에 대해 혐오의 마음을 가지고 해하려는 아메리칸이 있다면, 그들은 인간이기를 포기한 악마다.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이민자의 후손이며, 그들이 미국 시민으로 정착하는 과정에서는 출신 국가와 인종은 달라도 윤여정 같은 할머니와 어머니들이 분명 수없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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