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 주인은 시민이 아니다? 서울시 공기업 경영에 노조 참여
[미디어펜=김규태 기자] 15일 서울시는 지방공기업 혁신방안 마련 의견서를 행정자치부에 제출했다. 이는 ‘2015 지방공기업 혁신방안 마련을 위한 자치단체 의견서’이다. 의견서에는 서울시 산하 5개 공기업(SH공사, 서울메트로, 서울도시철도, 서울농수산식품공사, 서울시설공단)의 기능, 구조, 재무, 인사, 조직, 운영 등을 아우르는 향후 계획이 담겨 있다.
산하 공기업에 참여형 노사관계 모델을 도입하겠다는 서울시 비전의 구체적인 내용은 아래와 같다.
◦ ‘노동이사제도’ 도입하여 이사회 참여 보장
- 노동조합에서 추천한 노동이사를 이사회에 참여시켜 노조의 이익대변
◦ 회사경영 협의를 위한 노사 ‘경영협의회’ 설치·운영
- 노동조합이 회사경영과 관련한 사안을 책임 있게 협의하게 하여 상호간 신뢰를 바탕으로 노사갈등 사전예방
|
참고로 지난 2014년 상반기에 서울시 산하 5개 공기업의 적자는 도합 23조 6558억 원이었다. SH공사 18조7581억 원, 서울메트로 3조3836억 원, 서울도시철도 1조2674억 원, 서울농수산식품공사 1932억 원, 서울시설공단 535억 원 순이다.
서울시는 노동이사제도와 노사 경영협의회의 도입 운영을 통해 노사가 함께 성장하는 참여형 노사관계를 정립하고자 한다. 시는 독일 노사관계제도 및 사례를 벤치마킹하여 노동조합의 경영 참여를 보장하려고 하며, 노동자의 책임성을 강화한다는 도입 취지를 덧붙이고 있다.
|
 |
|
▲ 서울시 산하 5개 공기업 부채 현황(2010년부터 2014년까지) |
산하 5개 공기업에 참여형 노사관계 모델을 도입하겠다는 서울시의 입장에 대하여, 본지는 담당 공무원들과 전화 인터뷰를 했다.
서울시의 공기업담당 김수경 공사공단팀장은 “서울시는 산하 공기업 노조와 대립이 아니라 상생, 협력을 꿈꾸고 있다”면서, “구체적인 방안은 앞으로 논의해서 결정될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일각의 우려는 오해, 지방공기업의 주인은 근로자 협력업체 등 이해관계자
본지는 김수경 팀장에 이어, 서울시 조성주 노동전문관과 보다 심도 있는 질의응답을 나누었다.
Q1) 노동이사제·경영협의회 모두 독일 사례를 벤치마킹하여 노조의 경영 참여를 보장한다는 것이 골자입니다. 그런데 독일의 경우, 나치 정권에 협력했던 회사를 견제하기 위해서 당시 독일정부가 그러한 노조경영참가 방식을 도입했다고 들었습니다. 나치에게 부역했던 회사들을 규제하기 위했던 독일의 방식을 우리나라에 적용해도 될런지 의견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A1> 노동이사제, 경영협의회와 같은 방식은 독일 뿐 아니라 미국을 포함한 선진국 각국에서 운영하고 있습니다. 스웨덴 덴마크 등 북유럽은 물론이고 미국에는 결정참가제도가 있습니다. 이 중 선진국에서 주목 받고 있는 것이 독일 사례입니다. 다만 독일 사례를 우리나라 서울시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습니다. 공기업이기 때문에 일반 상법과는 다른 법적용을 해야 합니다. 독일과 같은 제도의 도입 취지를 가져오자는 선언이며, 앞으로 이뤄질 제도의 구체적인 설계는 서울시 상황, 한국 상황에 맞추어서 진행될 것입니다.
Q2) 지방공기업의 주인은 서울시민들입니다. 서울시장과 지방공기업 사장들은 시민들의 대리인이지요. 서울시장이 임명한 지방공기업 사측이 시민들을 대리해서 지방공기업을 경영하는 겁니다. 이는 경영권이라는 헌법상 보장되는 권리로 대변됩니다. 그런데 서울시가 추진하는 지방공기업 노동이사제/경영협의회 적용은 경영권을 포기하는 것이라는 재계 관계자, 전문가의 지적이 있습니다. 노조의 노동권은 그대로 두고, 사측의 경영권을 노조에게 넘긴다는 얘깁니다.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A2> 기자께서 말씀하신 얘기는 지방공기업의 주인은 시민이라고 전제하고 계십니다. 이는 일종의 주주관계자 모델입니다. 하지만 학계에는 주주관계자 모델만 있지 않습니다. 기업의 주인은 시민이나 근로자, 협력업체 등 해당 기업의 이해관계와 관련된 모든 사람이 주인이라는 ‘이해관계자 모델’이 있습니다. 서울시의 이번 조치는, 이론상으로는 ‘이해관계자 모델’을 전제로 해서 적용하는 것입니다. 다만 노조의 경영 참여는 기초적인 수준으로 이뤄질 것입니다. 일각에서 우려하는 경영권을 포기한다는 의견은, 과도한 얘기입니다. 서울시는 북유럽 덴마크 수준으로 전체 이사의 절반 가까이 임명하겠다는 말이 아닙니다. 구체적인 계획은 차차 정해지겠지만, 서울시 산하 지방공기업의 기존 이사회 10~15명 중 1~2명 수준으로 넣으려고 합니다.
|
 |
|
▲ 2014년 7월 1일, 제 36대 서울시장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는 박원순 서울시장. /사진=뉴시스 |
공기업 노사 간 담합은 견제할 것, 노조 경영 참여는 일정 수준 제한되어야
Q3) 서울시 공기업 경영에 있어서 노조와 경영자 측의 적절한 상호견제가 없어진다는 우려 또한 있습니다. 서울시 공기업 경영을 두고 노사 간의 담합이 일어나는 경우, 앞으로 이를 어떻게 견제할 수 있을까요? 가령 서울시 공기업의 적자는 여전히 그대로이거 더 많아지는데, 노사가 자기들 멋대로 임금 인상의 확대 폭을 늘린다거나 하는 일이 발생할 경우를 말합니다.
A3> 일리있는 지적입니다. 독일에서도 노사가 담합하는 경우, 비리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노사 경영협의회에서 다루는 안건·의제의 범위입니다. 시민들의 공익성에 관련된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경영의 투명성, 윤리성과도 직결합니다. 서울시는 연구를 거쳐서 이를 검토하려고 합니다. 공신력 있는 기관의 연구를 통해 노동이사의 권한을 어디까지 다룰 것이냐, 그 폭을 어디까지 제한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할 것입니다. 일정 수준으로 노동이사 및 노조의 경영 참여를 제한하려는 것이 서울시의 혁신안입니다.
Q4) 서울시의 산하 공기업 혁신안에서는 노동자의 책임성을 강화하겠다는 언급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서울시 공기업에 적자가 발생할 경우, 노조가 책임지고 인력구조조정이나 임금삭감 등을 단행하겠다는 것인지요? 노동자의 책임성 강화를 어떻게 읽어야 할까요?
A4> 노동자의 책임성을 강화한다는 것은 일반적인 표현입니다. 이는 일종의 노사 결정 공동 제도를 의미합니다. 여기에는 좋은 효과가 존재합니다. 충분한 협의를 통해 노사 갈등을 줄일 수 있습니다. 노사가 경영에 대해서 공동으로 정하고 그 결과에 대해서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노사가 공동으로 논의하고 공동으로 책임질 것이지만, 이는 향후 제도가 정비된 후 각 공기업의 노사가 알아서 결정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