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경선 연기 논란의 핵심은 '상당한 사유'가 타당하느냐의 문제
코로나19나 정권재창출의 충정은 시의 부적절하거나 자의적인 판단
   
▲ 이석원 정치사회부장
[미디어펜=이석원 정치사회부장]“현재의 상황이 ‘상당한 사유’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고, 따라서 더불어민주당의 경선 연기는 당헌 위반이다.”

지난 4.7 재보선 전까지 민주당의 권리당원이었다가, 민주당이 후보를 내기 위해 당헌을 개정한 것에 대한 항의로 당을 탈당한 어떤 사람이 격분해 기자에게 쏟아낸 말이다.

‘대통령 선거 180일 전에 대통령 후보를 뽑아야 한다’는 게 지난 해 8월 민주당이 당원들의 동의를 얻어 결정한 당헌이다. 1년이 채 안 된 일이니 속된 말로 민주당 당헌에 잉크도 마르지 않았을 수 있다. 물론 그 당헌에는 ‘상당한 사유’가 있으면 당무위원회를 열어 일정을 정할 수 있다고 했다. 지금 그 ‘상당한 사유’가 말썽이다.

경선 연기를 주장하는 쪽에서 내세우는 ‘상당한 사유’ 중 하나가 코로나 19다. 그러나 이는 정부의 방역 지침이나 현재 사회적 분위기에 반하는 여당 일부의 억지로 보인다. 코로나 19 확산이 지금보다 더 심각했고, 또 백신 접종율도 미미하던 때 민주당은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후보를 뽑았다. 그리고 재보궐 선거를 치렀다. 대통령 후보와 서울시장 부산시장 후보가 다르지 않냐는 말은 설득력이 전혀 없다. 

게다가 지금은 코로나 신규 확진자의 확산세가 줄고 있고, 백신 1차 접종도 이미 30%에 육박하고 있다. 방역 당국은 지난해 12월부터 6개월을 유지하던 거리두기 조치도 완화했고, 다음 달부터는 6인에 이어 8인의 사적 모임도 가능하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9월 경선이 코로나 19로 인해 어렵다는 것은 결코 ‘상당한 사유’가 될 수 없다. 하루 수십만 명의 감염자가 속출하는 가운데도 미국 대통령 선거가 치러졌다는 건 굳이 얘기하지 않더라도.

정세균 전 총리는 한 라디오와 인터뷰에서 “코로나 사태도 그렇고, 상대가 어떻게 하느냐와 보조를 맞추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며 경선 연기 의사를 피력했다. 하지만 이는 ‘상당한 사유’가 되지 못할뿐더러 대통령 후보 경선 시기를 고정한 당헌이 무의미하다는 주장이나 마찬가지다. 이 당헌 규정이 만들어지기 전인 2020년 5월에 개정된 국민의힘 당헌에는 이미 ‘대통령 후보는 선거 120일 전에 정한다’고 규정했다. 그럼 민주당이 180일 당헌 규정을 만들었을 때 왜 ‘상대방이 어떻게 하느냐와 보조를 맞출’ 생각을 하지 못했는지도 설명이 안된다. 

혹여 윤석열이라는 강력한 후보를 감안한 발언이라면 어이가 반 푼어치도 없는 일이다. 마치 “당헌을 만들 때는 여당의 그 누구라도 상대할 야당의 대선 후보가 나타나지 않을 줄 았았다”고 읽힐 수도 있다. 윤석열이라는 강력한 상대가 나왔고, 그 상대가 국민의힘의 후보가 될지, 아니면 제3 지대의 후보가 될지를 보고 민주당의 후보를 결정하자는 얘기로 들린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국민의힘의 후보인 경우와 제3 지대 후보인 경우, 즉 대선 구도에서 민주당과 국민의힘 양당 구도인 경우와 민주당+국민의힘+윤석열인 구도는 정치공학적으로 완전히 다른 양상이라 그에 대응하는 민주당 후보의 경쟁력도 달라진다는 분석이다. 그래서 ‘상당한 사유’를 들어 경선을 미룬다면 이는 책임있는 여당의 떳떳함과는 거리가 먼 기회주의적 발상이 될 수 있다.

이 전 대표는 “정권재창출을 위한 충정에서 의견을 말하는 것으로 믿고 있고, 또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경선 연기론자들의 입장을 두둔함으로써 결국 자신의 생각을 얘기했다. 비겁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 민주당의 경선 연기론은 당원 뿐아니라 국민들도 동의할 수 있는 진짜 '상당한 사유'를 찾아야만 한다. 사진은 지난 17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누리꿈스퀘어에서 열린 정세균 전 총리의 대선 출마 선언식에 참석한 이낙연 전 대표, 이광재·김두관 의원이 함께 ㅎ나 모습./사진=박민규 기자

이 전 대표는 경선 연기가 자신의 주장이라기 보다는 많은 의원 구성원들의 요구라고 에둘러 말하는 듯하다. 물론 지난 재보궐 선거 때 당헌을 바꿔가며 서울과 부산에서 시장 후보를 냈고, 그 결과 참혹한 심판을 받은데 따른 신중함일 수 있다. 게다가 앞서 언급했듯이 대통령 후보 경선 연기는 재보궐 선거 후보를 내는 문제와는 달리 당헌을 깨부수지 않아도 가능한 일이라는 논리를 들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 전 대표의 ‘상당한 사유’는 ‘정권재창출을 위한 충정’일까? 이건 코로나 19보다도 더 설득력이 없다. 불과 10개월 전에는 정권재창출에 대한 충정이 없어서 180일 전이라고 못 박았다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든다. 10개월 새에 정권재창출로 가는 길에 어떤 ‘상당한 사유’가 발생했을까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10개월 새의 변화라면 두 가지다. 4.7 재보선의 참패 이후 당 지지율 하락과 윤석열 전 총장의 대선 무대 등장이다. 4.7 재보선 참패의 이유가 100가지, 200가지일 수 있지만, 당헌을 바꿔가며 후보를 낸 것도 큰 이유다. 재보선 후 민주당 스스로가 낸 분석도 그렇게 얘기하고 있다. 그래서 이후 민주당의 지지율은 국민의힘의 지지율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이는 반성하고 극복해야 하는 사안이다. 

윤 전 총장의 대선 무대 등장은 결코 변화라고 할 수 없다. 윤 전 총장이 아니더라도 이 정도 강력한 상대는 늘 있기 마련이다.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에도 불구하고 홍준표 당시 자유한국당 후보가 24%가 넘는 득표를 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10개월 전에도 30% 이상의 지지율을 받을 국민의힘 후보를 염두에 뒀을 것이다. 그런 상태에서 현재의 당헌을 만들었다.

현재 경선 연기 반대 입장은 이재명 경기도지사나 박용진 의원, 그리고 추미애 전 법무부장관 정도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출마 선언했거나 출마 의사를 가진 잠룡 9명 중에서 소수다. 경선 연기론이 더 힘을 받고 설득력을 얻으려면 ‘상당한 사유’가 더 명확해야 하고, 이를 당내 경선룰을 넘어 내년 대선과 연결하려면 당원뿐 아니라 국민들에게도 타당해야 한다. 그러니 ‘상당한 사유’는 코로나 19나 정권재창출의 충정보다 더 확실한 것이어야 한다. 민주당은 4.7 재보선의 교훈을 새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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