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서우 기자] 국내 유통업계 오너들이 아이돌그룹을 결성한다면 어떨까.
유통기업들은 ‘시장 1위’를 놓고 경쟁하면서도 궁극적으로는 ‘소비자 혁신’이라는 큰 목표를 지향한다. 그룹의 성공을 전제로 하지만 그 안에서 독자적으로 살아남기 위해 치열하게 자신을 어필하는 아이돌 멤버들의 생존방식과도 닮은 점이 있다.
2일 식품·유통업계 홍보담당자 30여명을 대상으로 유통업계 오너들이 아이돌 그룹을 결성한다면, 각각 어떤 역할이 적합하다고 생각하는지 조사했다. 인기와 스타성이 소속사 수익으로 직결되는 아이돌그룹처럼, 홍보인들은 소비자에게 보이는 오너의 이미지와 회사 매출의 상관관계를 최전방에서 분석한다.
그룹을 결성할 멤버 후보군으로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재현 CJ그룹 회장△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허연수 GS리테일 대표△김범석 쿠팡 의장(이상 순서는 무작위)을 선정했다. 이들 기업은 온라인 쇼핑 시장 급성장과 함께 이종업계 간 협력, 인수합병 등으로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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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이재현 CJ그룹 회장, 허연수 GS리테일 대표,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 김범석 쿠팡 의장. 이상 나이순/사진=각 사 제공 |
◆확신의 센터상,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은 그룹 내 비주얼 담당과 예능 담당으로 압도적인 표를 받았다.
정용진 부회장은 유통업계뿐만 아니라 대기업 오너를 통틀어도 ‘세상에 없던’ 캐릭터다. 그의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는 70만을 눈앞에 두고 있다. 자신을 닮은 제이릴라(정용진+고릴라)로 부캐를 형성하고. 캐릭터 상품화에도 나섰다.
프로야구단 SSG랜더스 창단 이후에는 “롯데는 울면서 우리를 쫓아와야 할 것”이라는 도발적인 멘트를 던져, 구단주로서도 화제의 중심에 섰다. 사자탈을 쓰고 직접 야구단 응원가를 부르는 모습을 인스타그램에 공개하고, 노래실력을 뽐내기도 했다. 스타벅스와 이마트 등 회사 공식 유튜브에도 출연할 만큼 방송에는 이미 최적화돼있다.
득표수는 적지만 김범석 쿠팡 의장(3표), 허연수 GS리테일 대표(2표)도 그룹 내 비주얼 담당으로 꼽혔다. 정용진 부회장과 비교하면 김범석 의장과 허연수 대표는 공식 석상에 자주 모습을 드러내는 타입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들 모두 큰 키에 수려한 외모로 뭇 여성 홍보인들의 지지를 받았다.
◆정용진으로 시작해 이재현으로…‘덕후몰이’
아이돌그룹에서 리더보다 중요한 역할이라는 ‘덕후몰이(마니아층을 끌어 모으는 매력이 있는 멤버)’ 담당으로는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꼽혔다.
덕후몰이 멤버는 보통 고양이보다는 강아지상, 대중들에게 호감을 줄 수 있는 이미지의 생김새가 많다. 이재현 회장의 푸근한 인상뿐만 아니라, 앞서 비주얼 담당 멤버들에 비해 다소 아담한 체구와 유전병을 앓고 있어 건강이 염려된다는 점 등도 가슴 아프지만 팬들의 ‘모성애’를 자극할 수 있는 포인트로 꼽혔다.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도 의외로 덕후몰이 멤버로 꼽혔다. 연말 연탄 나르기 봉사활동 외에는 모습을 드러내는 일이 거의 없어 ‘은둔의 경영자’란 별명으로 불리기도 한다. 조용히 지내다가도 한 번씩 생존신고를 할 때는 면세점 사업 진출, 수도권 최대 규모 백화점 ‘더현대서울’ 개장 등 업계가 놀랄 만한 소식을 터뜨린다. 조용해서 더 ‘파보고 싶은 멤버’라는 답변이 나왔다.
미디어펜 연예부 기자는 “팬들은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멤버로 그룹에 호감을 가지기 시작한 뒤, 숨겨진 매력이 있는 멤버에게 푹 빠지는 경향이 많다”며 “덕후몰이 멤버가 있어야 그룹의 코어(마니아 팬층)가 탄탄해진다. 유통 오너들이 그룹을 결성한다면 정용진 부회장으로 시작해 이재현 회장으로 가는 수순”이라고 득표 결과를 분석했다.
◆묵직한 중심, 리더는 신동빈
그룹 내 중심을 지키는 리더로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많은 표를 얻었다.
M&A 귀재로 알려진 신동빈 회장은 평소 진중한 태도로 공식 석상에서 말 수는 적은 편이지만, 가장 필요한때에 ‘한방’을 날리는 승부사 기질도 갖추고 있다.
롯데그룹은 5년 전 KT렌탈(현 롯데렌터카)을 인수하면서 막판에 당초 제출한 가격의 두 배 수준을 써내 역전시킨 전례가 있다. 반면 이번 이베이코리아 인수전에서는 보수적 접근으로 신세계에 승기를 넘겨줬다.
롯데그룹의 이커머스 플랜B에 업계 관심이 쏠리는 상황이다. 신동빈 회장은 지난 1일 열린 하반기 사장단회의(VCM)에서 “가장 나쁜 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라고 혁신을 주문하면서도 “양적으로 의미 있는 사업보다는 고부가가치 사업을 우선적으로 고려해 달라”며 신중한 가치 판단을 동시에 요구했다.
◆“내가 최고야” 가장 먼저 탈퇴할 멤버는
그룹에서 가장 먼저 탈퇴할 것 같은 멤버로는 김범석 의장과 이재현 회장이 꼽혔다.
김범석 의장을 꼽은 이들은 “그룹을 나가서 혼자 미국 데뷔를 준비할 것 같다”고 답변했다. 실제 쿠팡의 행보와 김범석 의장의 이미지를 비슷하게 보고 있다는 얘기다.
쿠팡은 올해 초 미국 상장 이후 국내 기업 중 시가총액 70조원으로 대기업 반열에 올랐다. 국내에서는 2014년 로켓배송으로 유통업계에 속도 경쟁을 일으켰다. 최근 일본에까지 진출해 ‘한국형 로켓배송’으로 아마존 등과 경쟁한다는 야심찬 포부를 갖고 있다.
이재현 회장은 역시 ‘건강 상 이유’로 가장 먼저 탈퇴할 것 같다는 이유가 대부분이었다.
이번 설문에 참여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오너들의 말과 행동이 회사 이미지와 직결되고, 오너리스크가 한 기업을 휘청거리게 할 수도 있는 시대”라며 “진정성 있는 ESG경영으로 소비자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관건”이라고 말했다.
[미디어펜=이서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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