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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경귀 한국정책평가연구원 원장 |
대한민국 국회의 무능과 부패에 대한 비판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무능과 부패보다 더 위험한 악덕은 헌법기관으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상실하고 자유민주주의와 기본 질서를 제대로 수호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 국회 선진화라는 명분 아래 대의기구인 국회가 대의민주주의의 기본 철칙인 '다수결의 원리’를 앞장서 훼손하고 있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
나아가 특권과 오만에 사로잡힌 일부 국회의원들의 사회의 지탄을 받는 행태도 빈발하고 있다. 한편 정치인의 지대추구(rent seeking) 현상이 심화되어 자유 시장경제의 활력을 고사시키고 있다. 나아가 국민의사를 합리적으로 대변해야 할 정당과 대의민주주의는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한마디로 총체적인 '정치실패’(political failure) 현상이다. 이러한 정치실패가 초래한 국정의 난맥과 대의민주주의의 위기를 극복할 대안을 모색해야 할 때이다. 여기서는 뷰케넌(James Buchanan)이 공공선택론(public choice)에서 언급한 '정치실패’의 개념보다 더 넓은 의미에서 접근하고자 한다.
1. 헌법가치를 허무는 헌법기관, 국회다운 국회가 되라.
대한민국 헌법의 최고 가치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유지이다. 이는 그 어떤 것으로도 훼손되어서는 안 될 엄중한 가치이다. 헌법의 가치를 현실에서 구현하고 수호해야 할 소임은 1차적으로 국회와 정당, 정부에 있다. 따라서 헌법 가치의 수호의 책임을 헌법재판소에만 전가하는 것은 무책임하고 부끄러운 행위이다.
이번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은 그동안 정치의 핵심행위자인 국회와 국회의원, 정당이 헌법의 가치를 수호하는 활동에 소홀했음을 반증해주는 사건이다. 이석기 내란 선동 사건, 종북 콘서트 관련 익산 사건 역시 그 원인의 뿌리는 국회와 정치권의 책임 방기에 닿아있다고 할 수 있다. 자유민주주의를 파괴할 자유는 없다. 더구나 국회와 정치권은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할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2. 특권과 오만으로 국민 위에 군림하려는 국회의원은 성찰하라.
대한민국 국회의원은 엄청난 보수와 갖가지 혜택을 누리는 특권집단이다. “선진국 국회의원의 세비는 1인당 GDP의 약 2~3배 수준인데 반해 우리나라 국회의원의 세비는 5배가 넘는다”는 권혁철 소장의 분석은 많은 시사점을 준다. 더구나 '무노동 무임금의 원칙’도 적용받지 않는다. 국민들이 더욱 분노하는 것은 과도한 특권과 특혜를 받고 있는 국회의원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무능과 분열의 정치, 국회의 공전과 파행은 이제 일상화되었다.
김현 의원의 대리기사 폭행 및 막말 사건은 특권과 반칙에 길들여진 국회의원들의 심성이 권위의식과 오만에 젖어 국민 정서와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지 확인해 주었다. 이를 한 개인의 저열한 인격의 문제로 치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이 사건이 특권의식에 젖은 국회의원들의 현주소를 어느 정도 대변하는 것은 아닌지 국민들이 의구심을 갖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국회의원의 품격을 유지하기 위한 성찰이 필요한 때이다. 또 국회 윤리특별위원회를 통해 부적정한 국회의원을 모니터링하고 걸러내는 제도의 강화도 필요하다. 아울러 국회의원의 특권 내려놓기도 구체적으로 보여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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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월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공사관계자들이 한글로 된 국회 상징물을 설치 공개하고 있다. |
3. 자유 시장경제의 활력을 가로막는 정치인의 지대추구를 차단하라.
국회의원들은 입법기능을 담보로 국가의 여러 영역에서 전제적 권력을 과도하게 행사하고 있다. 이른바 '과잉통제(over-government)’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런 통제과정에서 발생하는 특수한 '거래 비용’이 바로 부패다. 국회의원들은 입법권을 무기로 자기의 사사로운 이익을 추구하는 '지대추구’(rent seeking)의 유혹에 노출되어 있다. 1차적으로 이익집단에 우호적인 입법을 안겨줌으로써 이에 상응하는 경제적 반대급부를 추구한다. 전형적인 입법 부패이다. 하지만 지대를 단순히 경제적 이익만을 의미하는 것으로 한정하면 안 된다.
한국의 정치 현실에선 경제적 의미의 지대 추구보다 입법을 통해 이념적 가치(ideological value)를 구현하려는 경향이 장기적으로 더 큰 경제적, 사회적 해악을 만들어 낸다. 자유 시장경제를 규제하려는 각종 입법이 이념적 가치 구현의 도구로 활용되기 때문이다. 대형마트의 의무휴업 입법, 사내 유보금 과세는 자유 시장 경제의 활력을 위축시키는 작은 예일 뿐이다.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에 대한 근본적 불신, 부의 축적에 대한 시기심, 국가 개입의 성공에 대한 근거 없는 믿음이 국회의원들의 '이념적 지대추구’ 현상을 심화시키고 있다. 여기에 대중영합주의가 가세하고 있다는 점이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만들고 있다. 19대 국회의 평균 시장친화지수가 31.1에 불과하다는 자유경제원 자유기업센터의 분석은 국회의원들의 '이념적 지대추구’가 얼마나 심각할 지 짐작하게 해준다. 국회의 모든 입법에 대해 국민의 공정한 모니터링이 필요한 이유다.
4. 자정(自淨)기능을 상실한 국회, 윤리특별위원회를 전원 민간위원으로 선임하라
대한민국 헌법 가치인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질서를 창달하고 수호하기 위해 국회는 국회의원들의 모든 입법 및 정치활동이 이에 부응하고 있는지 모니터링하고, 헌정 질서에서 일탈하는 정치행위와 사회의 보편적 규범을 벗어난 행태를 제어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국회의 윤리특별위원회는 이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내란선동 혐의로 구속 수감된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의 징계동의안 조차 처리하지 못하다가 헌법재판소의 판결로 의원직이 상실되는 데 이른 것만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국회의원은 주인(principal)이 아니다. 국민의 대리인(agent)에 불과하다. 국회의원의 징계를 동료 국회의원 15명에게 맡긴 것부터 잘못이다. 근본적 정치혁신이 필요하다. 자격심사소위원회에 '가카 빅엿’의 주인공 서기호 의원이 당당히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은 웃지 못할 희극이다. 윤리특별위원회가 여야의 야합의 장이 되고 있다는 증거다. 따라서 윤리특별위원회의 자정기능을 기대하는 건 연목구어(緣木求魚)이다.
이를 혁파하기 위해서는 윤리특별위원회 구성과 운영 방식을 전면 개편해야 한다. 위원 전원을 여야에서 추천된 민간위원으로 위촉하고 3년 정도의 임기를 보장하여 주권자인 국민의 입장에서 헌법 가치를 파괴하는 국회의원들의 행태를 심사하고 이를 제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윤리특별위원회가 국회의원을 제어하는 최고의 권능을 가진 기구로 거듭나야 한다.
5. 자유민주주의 질서를 허무는 사악한 정당을 봉쇄하라
북한식 사회주의를 추구하던 통합진보당은 해산되었다. 그렇다면 자유민주주의 질서를 허무는 사악한 정당이 버젓이 활동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고, 구체적인 지원과 연대를 통해 이들을 육성한 주체들에 대한 징벌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 통합진보당의 숙주 역할을 한 정당과 책임자에 대한 사회적, 정치적 징벌이 마땅하다. 이와 관련하여 2012년 4월 총선에서 북한 지령에 의해 통합진보당의 합당과 민주당과의 야권 연대가 이루어졌다는 하태경 의원의 폭로는 충격적이다. 결국 야권 연대가 종북 세력의 활동 기반을 조성해 준 결과를 초래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종북 세력과의 연대의 해악은 특정 지역에서의 공천 거래를 통해 특정 정당의 입후보자를 국회의원으로 대거 당선시켰다는 점이다. 이는 유권자를 현혹하여 사악한 목적을 달성한 부당한 '투표 거래 행위’(vote trading)이다. 이는 유권자의 선택권을 왜곡하는 사악한 로그롤링(logrolling)인 것이다. 선거 담합에 다름 아니다. 시장에 공정한 거래가 필요하듯 투표 시장에도 부공정한 거래가 용인되어서는 안 된다.
자유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정당과 연대하여 '투표 거래 행위’를 하였다면 그에 상응한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 자유를 파괴하는 일에 자유를 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사악한 로그롤링을 방지하기 위해 공직선거법에 전국적 차원의 정당 연대를 언론에 발표하여 유권자에게 인식시키거나, 선거홍보물에 명시적, 은유적으로 이를 '표기’하거나, 정당 간 공천 담합을 공표하는 행위를 금지시키고 이를 어길 시 당선을 무효화하거나 징벌하는 조항을 신설할 필요가 있다.
또한 자유민주주의를 파괴할 목적으로 활동한 정당에 자유민주주의를 지켜 나가는 데 써야 할 국민의 세금이 지원되었다는 점은 국민 모두를 자괴감에 빠지게 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통합진보당에 지원된 177억 원의 국고보조금을 회수할 방법이 없다는 점이 더 큰 문제다.
현행 제도가 그대로 유지된다면 정당의 목적을 교묘하게 위장하여 제3의 정당을 창당하고 국고보조금을 받아 지속하다 해산되면 또다시 재창당하는 일이 반복될 여지가 있다. 따라서 정당이 해산될 경우 당해 정당에 지원되었던 국고보조금을 정당의 국회의원 및 당직자에게 끝까지 구상(求償)할 수 있도록 정치자금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 이는 헌정 가치를 위배하는 정당 활동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또 하나의 방안이다. /박경귀 한국정책평가연구원 원장
(이 글은 자유경제원 사이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