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규태 기자] 지난 19일 더불어민주당이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언론중재법) 개정안을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문체위) 전체회의에서 단독으로 강행 처리하면서 오는 24일 열릴 법제사법위원회 심의 과정에서도 '졸속·위헌 논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과반수이지만 여야 동수로 구성해야 하는 국회 문체위 안건조정위에 민주당 소속 도종환 상임위원장은 열린민주당 김의겸 의원을 야당측 조정위원으로 넣어 사실상 '여 4명 대 야 2명' 구도로 법안 처리를 일사천리로 통과시켰다.
김의겸 의원은 정당만 다를 뿐이지 실제로 민주당 문체위원들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법안 초안을 짜낸 친여 의원이다.
당초 집권여당을 제외하고 정의당·법조계·시민사회단체·언론계·학계 등 각계각층에서 전부 강력한 반발이 터져나왔을 정도로 설익은 법안을 3차례나 땜질 수정하면서, 민주당은 "언론계 의견을 대폭 반영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오는 24일 국회 법사위 심의 과정에 직접 참석할 민주당 김용민 최고위원(당 미디어혁신 특별위원장)은 지난 20일 교통방송 라디오에 출연해 "체계 자구 심사를 통해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수정될 가능성이 있지만 큰 틀을 벗어나기 어렵다"며 사실상 그대로 통과시키겠다는 복안을 드러냈다.
앞서 민주당은 언론계의 극렬한 반대를 무릅쓰고 지난 7월 27일 국회 문체위 법안소위에서 대안 없이 언론중재법 개정안 표결을 단독 처리해 첫 졸속 논란을 일으켰고, 18일 안건조정위에서는 '친여' 김의겸 의원을 조정위원으로 선임해 강행 처리해 절차적 정당성을 잃었다. 이튿날인 19일 열린 문체위 전체회의에서는 국민의힘의 반대 속에 기립 표결을 통해 법안을 단독 처리했다.
법안의 문제점은 한두가지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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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의힘 이달곤 간사(오른쪽)와 의원들이 8월 19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언론중재법 개정안 의결을 앞둔 전체회의에서 민주당 소속 도종환 위원장의 회의 진행를 막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먼저 최대 5배까지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규정하면서 손해배상액 산정에서 언론사 매출액을 기준으로 삼은 것이 법률상 과잉금지원칙을 위배했다는 점이 꼽힌다.
현행 법률로 규제해온 명예훼손죄 등에 대해 징벌적 손해배상을 부여함으로써 이중 처벌 소지가 크기도 하다.
이뿐 아니다. 법안에는 피해자측 원고의 입증 책임이 명시되지 않았을 뿐더러, 일단 추정되면 피고에게로 증명 책임이 전환되어 민사법 대원칙을 위배하게 된다.
법안 내용 중 가장 심각한 독소조항은 허위·조작보도에 대한 특칙을 규정한 제 30조 2항이다. 개정안에 따르면, 보복적이거나 반복적인 허위·조작보도로 피해를 가중하는 경우 법원이 고의·중과실이 있는 것으로 추정하도록 했다.
'보복적·반복적'이라는 개념도 그렇지만 허위·조작보도에 대한 학계 정의도 모호한 실정이라, 피해자든 가해자든 피해자라 주장하는 제 3자든 각자의 주관적인 해석에 따라 소송전이 남발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법적으로 규정한 일정 요건만 충족하면 일단 법원이 피고에게 '고의나 중과실이 있다'고 추정하고, 입증 책임을 피고로 전환해 '고의가 없었다'는 것을 언론사(피고)가 입증해야 한다. 원고가 소송에 들어가면 해명 등 온갖 노력을 다해야 하는건 전적으로 피고의 몫이 된다.
언론계는 민주당이 끝내 25일 본회의에서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최종 통과시킨다면 대대적인 헌법소원 제기에 들어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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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인터넷신문협회 등 언론 7개 단체는 8월 19일 국회 문체위 전체회의에서 민주당이 단독 강행 처리한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대해 강력하게 규탄했다. 사진은 같은 날 문체위 앞에서 민주당의 언론중재법 개정안 단독 처리에 항의하는 국민의힘 의원들. /사진=연합뉴스 |
익명을 요구한 한 현직 부장판사는 20일 본보의 취재에 "언론의 자유는 지금까지 법률에 의해 합리적으로 제한되어와서 무제한적인 자유가 아니다"며 "민주당측이 밀어붙이는 개정안의 가장 큰 문제는 허위조작보도에 대하여 '조작한 정보' 등 추상적인 정의만 두고 있다는 점"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아무리 자세히 뜯어봐도 개정안이 언급한 위법 사유는 사소하거나 모호해 보인다"며 "이러한 위법 사유 혹은 한쪽의 왜곡된 주장만으로 해당 기사의 진실성과 취재원에 대한 모든 입증책임을 언론사가 져야 한다는게 개정안의 요지"라고 밝혔다.
이어 "개정안이 통과되면 차후에 모든 언론사는 비판보도에 따른 결과, 소송전 가능성을 우려해 기사 게재 자체를 포기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며 "이미 민법으로도 충분히 규율 가능한 명예훼손죄 등에 대해 굳이 법을 뜯어고쳐 언론재갈법으로 악용하려는 집권여당의 의도가 매우 악의적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여당 대권주자중 언론중재법 강행 처리에 대해 유일하게 부정적인 입장을 표명한 박용진 의원은 지난 20일 한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오히려 언론의 사회적 비난 기능, 견제 기능을 약화하는 게 아니냐는 측면의 우려가 있다"며 "입법 독재라는 것(비난) 때문에 국회 정상화라는 이름으로 야당에 상임위를 돌려주자고 하면서 그 전에 일을 처리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민주당의 법안 처리 과정은 편법과 졸속으로 얼룩졌다. 내년 대선을 6개월 앞두고 민주당은 국회 과반수 의석을 내세워 폭주를 저질렀다.
오는 25일 민주당이 국회 본회의에서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최종 통과시킬지 주목된다. 그 선택에 따른 책임은 온전히 민주당의 몫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