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디어펜 = 김진호 부사장
[미디어펜=김진호 기자]"사람의 몸은 단순히 나이 듦에 따라 세포와 장기 기능이 쇠퇴해 가는 몸뚱이에 불과하지 않다. 일생동안 그 위에 문화적 의미가 새겨지고 끊임없이 덧입혀지기 때문이다."-루이즈 애런슨 '나이듦에 대하여'

강원도 양구는 적설량이 많기로 유명합니다. 2년 여간 군대생활을 한 곳이어서 다양한 기억이 있지만 겨울철이면 서까래와 삽을 들고 도로에 쌓인 눈치우기가 가장 뚜렷하게 남습니다. 또 여름 장맛비는 왜 그리 거세던지….

1987년 여름으로 기억합니다. 식당에서 나오는데 정말 억수 같은 비가 내렸습니다. 우산이나 우의가 없어 잠시 머뭇했지만 시간이 흐른다고 마땅한 방법이 없다고 판단, 내무반까지 뛰었습니다. 

식당부터 내리막길을 치달려 내무반 처마 밑으로 들어서는 순간 악 소리와 함께 뒹굴었습니다. 콘크리트 턱을 허투루 밟아 왼발목이 비틀어지며 쓰러졌는데 빗소리를 뚫고 발목에서 "쩍'하는 갈라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동료들의 도움으로 내무반 침상에서 군화를 벗었는데 처음 빨갛던 발목이 이내 식빵처럼 부풀더니 엄청난 통증이 몰려왔습니다. 깐깐한 주임 상사도 보자마자 의무대 입원을 허락할 정도였습니다. 

"뼈에는 이상이 없다"는 진단결과로 곧바로 자대 복귀 후 군대생활의 꽃이라는 열외를 경험했습니다. 신기하게도 통증은 있었지만 얼마의 시간이 지나자 구보도 하고 축구도 하며 무사히 제대를 했습니다.

   
▲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시간이 한참 지나면 2022년 오늘은 어떤 흔적으로 남을지 궁금합니다./ 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시간이 흘러 1990년 대 중반, 한국기자협회 축구대회 지역예선에 참가했습니다. 오전에 첫 경기를 끝내고 점심식사 후 치룬 두 번째 경기때 사달이 났습니다. 헤더를 한다고 점핑을 했다가 왼발로만 착지하는 과정에서 발목이 돌아갔습니다. 형용이 아니라 시각적으로 왼발목이 90도 접혀있었습니다. 

응급요원이 있었지만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 떨리는 목소리로 병원에 전화하는게 전부였지요. 몰려든 사람들 역시 겁에 질려서 아무 조치도 못하는 동안 제가 용기를 내서 발목을 돌려 일자(一字)로 만들었습니다. 후에 병원에서 들은 이야기로는 빨리 조치한 것은 갸륵하나 발목을 잡아당겨서 맞춰야 하는데 힘으로 돌리는 통에 뼈에 조각이 생겼다고 하더군요.

처음 군대에서 다친 발목을 기억하면 1986년 시민항쟁과 '87 체제'의 생성을 경험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짙게 남습니다. 또 늦은 밤 아픈 발목에 정성껏 안티프라민 마사지를 해 준 완도출신 고참에 대한 기억도 편린으로 남았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입대해 어린 나이였지만 책임감과 카리스마는 편견을 여지없이 깨주었습니다. 처음으로 눈에 보이는 것과 진성에는 차이가 있음을 몸소 체험했고 나이어린 고참의 얼굴은 젊은 시절 사귐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습니다.  

기협 축구대회 당시 다친 기억 속에는 소속 언론사를 옮기는 인생 변천사가 담겼습니다. 당시 부상으로 쉬는 동안 생태 지역까지 옮기기로 결정했고 '지금의 나'는 그 결정의 끝에 서있습니다.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궁금함은 늘 있었지만 발목 부상이 가져 온 강제 휴식기가 인생의 향로를 결정했음은 분명합니다.

'왼발목 고난사'를 병리학적으로 보면 그저 다친 곳을 또다시 다친 미련한 인사의 투덜거림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저의 몸에 새겨진 흔적은 시간이 흐를수록 인생의 궤적을 읽게 해 줍니다. 통증이라는 기제를 통해 얼굴을 늙고 몸은 쇠퇴했지만 한 사람의 역사임을 깨닫게 해줍니다. 무엇보다 내 몸에 새겨진 흔적이기에 부인할 수 없고 고통은 늘 자신의 흔적임을 확인합니다.

저는 국가도 인간의 몸과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상처의 흔적이 남고 그 흔적은 세월이 흐를수록 의미를 담아 진화한다고 믿습니다. 상처는 아플수록 커다란 흔적을 남긴다는 사실은 우리 현대사를 마주하면 선명해집니다. 또 우리가 살아온 흔적이기에 누구도 부인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시간이 한참 지나면 2022년 오늘은 어떤 흔적으로 남을지 궁금합니다. /미디어펜 = 김진호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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