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의 “유족들 트라우마 치료 원천 차단 논리 말해”
   
▲ 정혜신 박사가 16일 '한수진의 SBS 전망대'에 출연해 인터뷰한 내용이 적절성과 균형성 측면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사진=SBS 홈페이지

세월호 참사 직후 안산으로 내려가 유족들을 돌봄으로써 ‘거리의 의사’라는 별명을 얻은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 박사의 방송 인터뷰 내용이 적절성과 전문성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정혜신 박사는 16일 오전 SBS라디오 ‘한수진의 SBS 전망대’에 전화연결 형태로 출연해 사회자와 약 10분간 대담을 나눴다. 인터뷰 시작 3분여가 지난 상황에서 사회자는 정 박사에게 “지금 유족들 대부분이 아이 휴대전화 살려두신 것 같고, 아이 방을 그대로 둔 분들도 많이 계신 것 같다. 이게 상처를 치유하는데 도움이 좀 되느냐”고 물었다. 이에 대해 정혜신 박사는 “도움이 되고요”라고 답변했다.

“세월호 희생 학생들은 사망신고 안 한 아이들이 거의 대부분”이라고 말하기도 한 정혜신 박사는 “휴대폰으로 친구들이 가끔씩 친구한테 보내는 문자들이 계속 들어오고 있고 (…) 아이 옷에서 아이 냄새가 나는 것 때문에 세탁도 안 하는 엄마들이 많다”고 덧붙였다.

이 인터뷰 내용에 대해 또 다른 정신과 전문의 A씨는 “내가 아는 정신과 의사로서의 역할과는 정반대의 행동을 하고 있다. 좀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금기, 절대로 해서는 안 될 행동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 박사의 답변과는 달리 위와 같은 행동은 유족들의 상처 치유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A씨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같은 정신과 전문의로서 (정혜신 박사의 노력에) 진심으로 감사와 존경의 말씀을 올린다”면서도 “(자식이 살아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유족들은) 영원히 자식의 죽음에 고착된 채 ‘유가족’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정신과 전문의들의 공통된 설명에 따르면 트라우마를 경험한 환자들의 경우 환자를 트라우마에 빠지게 만든 자극으로부터 잠시 떨어트려 놓는 게 일반적인 순서다. 그렇게 마음을 안정시킨 뒤에야 본격적인 치료에 돌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이론에 따른다면 정혜신 박사는 환자들이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기본적인 조건에 진입하는 상황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논리를 방송에서 말한 셈이 된다.

물론 세월호 참사의 경우 전국적으로 이슈가 된 사건이고 정치색마저 띠게 된 형국이라 어차피 유족들을 ‘자극’에서 차단시키기 힘들다는 반론도 있다. 그럼에도 정신과 의사가 ‘전문의’라는 수식어를 달고서 유족들이 듣고 싶은 얘기만을 방송에서 말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다.

미디어펜과 접촉한 전문의 A씨는 “정신과 의사들은 항상 환자와 객관적인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정혜신 박사는 환자(유족들)의 행동에 선입관이나 특정 판단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이미 중립을 잃어서 유족들과 동화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정말 그런 것이라면 결국 가장 고통 받는 것은 유족들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 정혜신 박사 트위터. 

실제로 정혜신 박사의 SNS 계정에는 정신과 의사로서 유족들과 객관적인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기엔 힘든 내용들이 많다.

참사 1주년 전날이었던 지난 15일 정 박사의 트위터와 페이스북에는 “오늘. 작년 4월16일 이후 가장 아픈 날. 엄마아빠들이 세월호가 가라앉은 맹골수도 한가운데로 배를 타고 들어갔다. 엄마아빠들의 생살 찢기는 신음소리가 환청처럼 계속 들린다….”라는 내용의 글이 올라왔다.

이에 대해 응원의 메시지를 보낸 한 트위터리안에게는 “견딜만합니다^^ 염려해주셔서 고마워요….”라고 답변하기도 했다. 한 개인으로서야 얼마든지 취할 수 있는 관점이지만 ‘정신과 전문의’라는 수식어를 단 채 인터뷰를 하고 세월호 관련 책을 출간하기엔 전문성과 적절성 측면에서 균형을 상실한 채 유족들과 동화된 의견만을 대변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미디어펜=이원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