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지호 기자] “다시는 책을 쓰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드네요. 해외자료와 논문 등을 구하느라 돈도 많이 썼고. 정말 죽는 줄 알았습니다. 팔아도 크게 돈이 되지도 않네요.”

신한금융투자의 자동차 분야를 담담하는 최중혁 연구원(사진)은 답답했다. 담당 업종인 자동차에 대해 심도 있게 공부해보고 싶었지만 우리나라 증권사의 도제식 교육 속에서는 가르치는 것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평소 가깝게 지내던 자동차 분야 기자와 글로벌 자동차 기업의 역사에 대해 연재를 시작했다. 연구자료는 방대했고 새벽까지 글을 쓰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토요일은 매주 출근했고 휴일은 반납했다. 그렇게 연재한 자료를 모아 ‘자동차 제국’이라는 제목의 책을 냈다. 시장의 반응은 뜨거웠다. 400페이지, 2만5000원이 넘는 가격에도 8000권이 넘게 팔리면서 5쇄를 준비하고 있다. 전문서적치고는 상당한 판매량이다.

최 연구원은 “현재 해외출판도 준비 중이다. 힘든 작업이었지만 자동차 전문칼럼리스트들이 ‘방대했던 자동차 분야의 역사가 잘 정리돼 있다’고 평가해줄 때 보람을 느낀다”며 “한 매체 기자는 자신이 자동차 분야를 ‘자동차 제국’으로 공부하고 있다면서 책을 보여주기도 했다”고 말했다.

2012~2013년 연속 자동차 업종 베스트 애널리스트로 뽑히고 자동차 전문서적까지 출간했지만 그가 자동차에 관심을 가진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대학시절 유럽여행을 떠난 것이 계기가 됐다. 첫 번째 여행은 유레일패스를 통해 기차로 다녀왔다.

군대를 전역한 후 또 가고 싶은 마음에 3~4개월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모아 다시 유럽여행을 떠났다. 이 때 활용한 것이 비유럽인에게 허용됐던 '푸조 리스 프로그램'이다. 프랑스 자동차업체 푸조가 자동차와 보험을 제공하면서 유럽을 돌아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는 “스웨덴에서 노르웨이 국경을 넘어갈 때 시속 80km를 넘어 달리다가 황소만한 순록이 튀어나와 죽을 뻔 했다. 독일 아우토반에서는 200km 넘게 속도를 내기도 했다”며 “AC밀란의 축구경기를 관람하기 위해 1000km 거리인 독일 뮌헨-이탈리아 밀라노를 하루 만에 질주하다 사고가 났다. 하지만 보험이 잘 돼 있어 사고 수습이 잘됐고 여러 대의 차도 몰아보면서 자동차의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고 전했다.

그는 유럽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친구들과 여행정보제공 회사를 차리기도 했다. 유럽여행 안내 소책자도 만들어 배포하고 배낭여행 설명회도 개최했다. 하지만 학업과 같이 병행하기에는 힘이 버거웠다. 최 연구원은 “당시 창업하기 좋은 환경이 아니었다. 창업보다는 제도권 직장에 들어가는 게 당연시 되던 때였고 세일즈 마케팅 등등을 다 해야 했다”며 “대학생 입장에서 자금이 없었다. 인맥도 약했다”고 설명했다.

여행사는 접었지만 모터쇼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는 등 자동차에 대한 애정은 그대로 지니고 있던 최 연구원은 대학졸업 후 외국계 투자은행에 들어가는 현실적 선택을 했다. 이후 LIG투자증권에서 안수웅 리서치센터장(현 SK증권 리서치센터장)에 일을 배우면서 자동차를 다시 접하게 됐다.

안 센터장은 기아자동차 경제연구소 연구원을 지냈고 자동차업종 연구원으로 이름을 유명했던 사람이었다. 안 센터장에 일을 배우면서 자동차에 대한 열정이 다시 뜨거워졌다. 양기인 리서치센터장의 제의로 신한금융투자 이직 후에는 베스트 애널리스트로 뽑히면서 자동차 분야에서 이름을 날리게 됐다.

사실 최 연구원의 ‘마니아 기질’은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것으로 여겨진다. 그의 아버지는 KPGA 프로 출신인 최영수 야디지코리아 회장. 최 회장은 필드에서 라운드 시 근거리 무선통신(NFC)을 이용해 스마트폰으로 편리하게 남은 거리를 알려주는 어플리케이션 ‘골프야디지’를 개발했다.

이 앱은 최근 갤럭시S6에 기본으로 탑재되는 등 골프애호가들 사이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최 회장은 일반 골프에 관심이 많았던 일반 직장인이었지만 취미에 그치지 않고 골프장 코스 데이터 콘텐츠를 제작하는 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 서울 강남 삼성동 전 한전부지 항공사진./사진=현대차

한편 최 연구원은 자동차 전문 연구원으로 현대차의 삼성동 한국전력 부지 인수에는 아쉬움을 나타냈다. 그는 “이미 거대하게 성장한 현대기아차는 성장률이 둔화되고 있다. 이럴 때에는 인수합병(M&A) 중요하다”면서 “지난 2008년 피아트가 크라이슬러를 인수할 때 10조원 정도를 사용했는데 판매 대수 300만대가량의 크라이슬러를 인수했다면 현대기아차는 세계 판매대수 1위 업체가 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정몽구 현대차 회장이 경영은 정말 잘한다.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 공장 건설 등 정 회장의 의사결정이 저돌적이고 빠르다는 건 최대 장점이다. 하지만 그만큼 오너의 결정에 의존하는 경향이 크다”며 “지금 인수할만한 회사가 없지만 앞으로는 성장성을 높이기 위해 기아차를 인수한 것처럼 M&A를 시도하는 게 좋다”고 설명했다.

자동차가 매력적인 이유에 대해서는 “이동수단이지만 자신만의 공간이다. 집은 전세를 살아도 대부분 자동차는 소유하지 않나”면서 “앞으로 친환경이나 무인자동차가 대세로 자리잡을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