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집권 4년차를 맞도록 단 한 차례도 정상외교를 펼치지 못한 가운데 오는 5월과 9월 러시아와 중국에서 각각 열리는 승전 기념행사에 초청을 받아 주목된다.

전통적인 우방국인 양 국가에서 김 제1위원장이 외교적 행보를 보일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여전히 불발될 변수는 많다.

우선 북한이 그동안 정상외교는 중국을 첫 상대로 삼아온 점 때문에 김정은이 러시아부터 방문하는데 부담이 적지 않다.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SBS 캡처
게다가 오는 22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와 반둥에서 열리는 반둥회의에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참석하게 된 것을 볼 때 김 제1위원장의 외교 첫발 떼기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올해 60주년 기념식까지 개최되는 반둥회의는 개발도상국들 사이의 협력을 위한 것으로 아시아, 아프리카 106개국 국가들이 참석한다.

회원국 중에 북한과 우방국이 많은데다가 과거 1965년 반둥회의 10주년 행사 때 김일성과 김정일 부자가 나란히 참석한 예도 있다. 따라서 이번 반둥회의는 외교무대에 서본 적이 없는 김정은의 입장에서는 좋은 기회일 수 있다.

비록 냉전시대 종식 이후 반둥회의의 존재감이 많이 약해졌고, 과거 김일성처럼 김정은이 제3세계 국가들에 경제적 지원을 할 처지가 못 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김정은이 반둥회의에 참가했다면 자연스럽게 시진핑 중국 주석과 만날 계기도 마련할 수 있었다.

이번 반둥회의에 참석할 한반도 주변 국가의 정상과 대표들은 황우여 교육부총리,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시진핑 중국 국가수석, 아베 신조 일본 총리 등이다.

이런 가운데 러시아는 5월9일 열리는 2차대전 승전 기념행사에 김정은의 방문에 큰 기대를 내비치고 있는 상황이다. 19일자 중국 관영 ‘신화통신’에 따르면, 드미트리 페스코프 러시아 대통령실(크렘린궁) 공보비서는 지난 17일 기자간담회에서 김 제1위원장의 러시아 방문을 앞두고 북러 간 세부 일정을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페스코프 공보비서는 “우리는 북한 벗들과 북한 지도자 방러 준비 단계에 들어갔으며, 세부 일정을 확정하는 대로 공식 성명을 발표할 것”이라면서 다만 “김 제1위원장의 일정은 북한이 발표할 것으로 러시아가 거론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당초 러시아는 김정은뿐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의 전승기념일 참석에 기대감을 표출한 바 있다. 최근 모스크바에서 열린 한국학 학술대회에서 러시아 전문가들이 “박 대통령의 방러가 성사된다면 한러 수교 이후 가장 의미 있는 이벤트가 될 것”이라고 입을 모은 것처럼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남북 정상회담을 고대한 것으로 보인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수세에 몰린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자국에서 벌어지는 남북 정상회담이라는 빅 이벤트로 반전의 기회를 노린다는 분석도 있지만 사실상 김정일과 관계가 돈독했던 푸틴 대통령이 지금 김정은 정권을 통해 노리는 이해관계가 많아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러시아 전승기념 행사에는 우리 측에서 윤상현 특사(대통령 정무특보이자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위원)가 참석하기로 했다. 러시아 정부 측에 따르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이 행사에 참석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김정은 입장에서는 내달 러시아 방문이 첫 외교무대 데뷔이자 집권 이후 시진핑 주석과도 처음 대면할 기회가 될 수 있다. 동시에 이런 이유들로 김정은의 러시아 방문 결정이 쉽지 않아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과거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1993년 국방위원장으로 추대된 이후 7년만인 2000년 5월 처음으로 중국을 방문했다. 장쩌민 시대인 1992년 한중 수교가 성사되면서 김일성과 김정일이 격분한 때문이지만 현재 북중 관계와 상황이 미묘하게 오버랩 되는 것도 사실이다.

2012년에 집권한 김정은이 2013년 3차 핵실험을 감행한 이후 경색된 북중 관계가 지속되는 가운데 그동안 북한이 중국과의 관계 회복을 위한 노력에 마냥 손을 놓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2013년 5월 최룡해 특사가 시진핑 주석과 만난 이후 북중 간 고위급 인사교류는 없었다. 북중 간 불편한 관계가 지속되면서 중국을 드나드는 북한 인사들 사이에서는 ‘김정은이 동북3성이라도 방문할 명분을 만들어야 한다’는 말까지 돌았다는 정통한 대북 소식통의 전언도 있다. 동북3성이라도 중국 정부의 공식 초청 없이는 김정은이 방문할 수 없는 것이 맞지만 그만큼 애타는 북한 입장을 대변하는 말인 셈이다.

최근 중국이 주도하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가입국 확정 과정에서 중국 측 거부로 북한이 제외됐다는 외신 보도가 있었다. 잇따라 북한이 중국 측에 비공식적으로 AIIB 가입 절차 등을 문의해 관심을 표명했었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김정은이 내달 전격 러시아 방문을 단행한다고 하더라도 그 발걸음은 무거울 수밖에 없다. 그동안 일각에서는 러시아와 중국으로부터 동시에 초청을 받은 김정은이 몸값 올리기에 성공했다는 견해도 내놨다. 하지만 시진핑 주석의 적극적인 관계개선 제스처가 나오지 않는 한 김정은의 국제 외교무대 데뷔 가능성은 불투명하다는 시각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