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조우현 기자]모든 노동조합을 나쁘다고 규정하는 것은 세상을 흑과 백, 두 가지 색만으로 구분하는 것과 똑같다. 마찬가지로 모든 노조가 정의로울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역시 ‘모 아니면 도’ 식의 사고에 불과하다. 하나마나 한 소리지만 노조는 나쁠 수도 있고 정의로울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분명한 건 노조의 행보가 회사 경영에 해가 된다거나,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다면 나쁜 노조라고 규정하는 게 맞다.
대한민국 사회를 들여다 보면 노조가 필요한 곳엔 노조가 없고, 노조가 필요 없을 것 같은 곳엔 노조가 있는 경우가 많다. 특히 노조가 필요 없을 것 같은 곳에 존재하는 노조는 어김없이 나쁜 노조라고 규정할만한 요건이 충족된다. 흔히 이런 노조를 ‘귀족 노조’라고 부른다. 이미 충분한 대우를 누리면서도 지나치게 많은 요구를 하는 노조를 일컫는 말이다. 여기에 ‘강성’까지 붙으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사회에 물의를 빚는 정도가 크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런 류의 노조가 위험한 이유는 기업 경영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회사가 새로운 사업을 계획할 때마다 그것을 빌미로 자신들의 처우 개선을 요구하고, 원하는 대로 되지 않으면 갖가지 방법으로 발목을 잡는다. 본인들이 그렇게 열악한 환경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면 회사를 떠나는 등 다른 대안을 찾아볼 법도 한데 자신의 자리를 사수하려 하고, 심지어 자식들에게도 물려주려고 하는 기행까지 보인다. 그런 노조의 비위를 맞추려니 사측의 인적, 심적 낭비는 심할 수밖에 없다.
|
|
|
▲ 서울 서초동에 위치한 삼성전자 사옥 인근 길가에 설치된 현수막. /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
그런데 2년 전 5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노조를 허용하겠다고 했다. 앞서 언급했듯 모든 노조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삼성 이름을 달고 탄생할 노조에 정의를 기대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대다수의 취업 준비생이 입사하고 싶어하는 곳, 연봉과 복지가 대한민국에서 제일 좋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삼성이라는 기업에서 노조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지, 과연 정의로울 수 있을지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아직 삼성전자 내부에 존재하는 노조는 가입률이 4%밖에 되지 않아 삼성전자를 대표한다고 하기엔 미미한 수준이다. 때문에 임금인상 등 처우 개선을 요구할 때마다 ‘너희들이 정말 삼성전자를 대변한다고 할 수 있느냐’는 질문이 돌아간다. 그보다 먼저 ‘삼성에 노조가 왜 필요하냐’는 의문도 빠지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그들 편에 서 있는 세력은 강성 귀족 노조의 대표 격인 민주노총이나, 민주노총과 결을 같이하는 시민단체, 정당 정도다.
문제는 이 점에 있다고 본다. 노조 허용을 통해 민주노총, 그리고 민주노총과 결을 같이하는 시민단체, 정당에 곁을 내어준 점 말이다. 민주노총은 오래 전부터 ‘삼성에 노조 깃발을 꽂겠다’고 벼르고 있었다. 노조를 허용하지 않는 삼성을 원색적으로 비난했고, 대한민국의 산업화 역사를 부정했다. 자신들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불법을 마다하지 않으면서도, 세상에 없는 약자인 양 행세하니 노조의 본질은 위선이라는 비판이 심심찮게 제기되곤 한다.
|
|
|
▲ 조우현 산업부 기자 |
그럼에도 이 부회장은 노조 허용을 이야기하며 “대한민국 국격에 어울릴만한 새로운 삼성을 만들겠다”고 했다. 이 부회장이 생각하는 국격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 순 없지만, 노조를 허용하는 것과 대한민국 국격을 같이 언급한 것을 보면 노조에 대한 이 부회장의 시선이 천진난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면 노조에 휘둘리는 대한민국의 현실에 맞게 삼성도 함께 퇴행하겠다는 의미로 세태를 비꼬았던 것일까.
뭐가 됐든 삼성은 노조를 허용했고, 노조는 삼성 내부에서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는 중이다. 최근에는 강성 귀족 노조라는 비판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민주노총 산하 금속노조가 삼성SDI 천안공장에서 출범했다. 울산공장에 이어 두 번째다. 모든 노조가 나쁜 게 아니라는 생각으로 바라보려고 하지만 사람이 쉽게 변하지 않듯, 귀족 노조 역시 쉽게 변하지 않을 터라 편견을 지우기가 쉽지 않다. 이대로 가도 괜찮은 걸까? 이 모든 걱정이 기우이길 바랄 뿐이다.
[미디어펜=조우현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