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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도덕적 해이 권장하는 사회, 탐욕도 '스펙'인가
이원우 차장 | 2022-06-29 11:38
회생법원 준칙 개정 '도덕적 해이' 논란…은행권 "청년 대상 대출 위축 우려"

 
이원우 경제부 차장
[미디어펜=이원우 기자] 법경제학(Law and Economics)이라는 학문이 있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에 질문을 던져보는 매력적인 지식체계다. 예를 들어 무단횡단 범칙금은 위반에 대한 ‘처벌’이라고 보는 게 일반적인 시선이다. 그러나 법경제학은 이를 무단횡단의 ‘비용’으로 바라보고 전혀 다른 계산을 한다. 


일면 통념에서 벗어난 지적유희 같기도 하다. 그러나 법경제학적 사고방식은 좁게는 범칙금‧과태료 같은 사회적 비용 산정에, 넓게는 인간 본성과 한 사회의 현주소를 통찰하는 데에 큰 도움을 준다.


2013년 초, 법경제학 관점에서 흥미로운 설문조사가 있었다. 조사에 응답한 고등학생의 44%가 “현금 10억원이 생긴다면 감옥 1년 수감을 감수하겠다”고 응답한 것이다. 이들에게 감옥 1년은 10억원의 대가이자 가격에 해당했다. 9년 전 고등학생이었던 이들은 지금 MZ세대라는 별명을 달고 경제활동을 하고 있다. 


2019년 다시 실시된 설문조사에서 감옥행을 택한 고등학생들의 비율은 57%로 올라갔다. 이 맥락을 이해한다면 최근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횡령 사건들이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사실을 간파할 수 있다. 이는 탐욕이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은 한국 사회의 또 다른 얼굴이다.


 
서울회생법원은 개인회생 단계에서 가상자산·주식투자 손실금은 변제금 산정에서 제외한다고 지난 28일 예고했다. 사진은 가상자산 시세전광판. /사진=미디어펜


농협의 한 직원은 약 5년간 회계 장부를 조작하는 수법으로 70억원을 횡령했다. 우리은행에서 발생한 횡령 액수는 무려 600억원이다. 심지어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보험사들 사이에선 설계사들이 보험사기에 가담하는 일도 드물지 않다.


금융감독원 추산에 따르면 2017년부터 지난 5월까지 금융권에서 발생한 횡령 규모는 물경 1092억원에 달한다. 최근으로 올수록 횡령액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2018년 55억 수준이었던 액수는 2021년 152억원, 2022년엔 5월 중순까지만 688억원에 이르렀다. 이 증가율을 우리 사회의 ‘탐욕의 속도’라 봐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이 가운데 정부와 법원은 각자 교란된 사인을 내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초대 금감원장으로 검찰 출신 이복현 전 서울북부지검 부장검사를 임명해 금융권의 ‘공포지수’를 높였다. 그러더니 서울회생법원은 개인회생 단계에서 가상자산·주식투자 손실금은 변제금 산정에서 제외한다고 지난 28일 예고했다. 


 
윤석열 정부는 초대 금감원장으로 검찰 출신 이복현 전 서울북부지검 부장검사(사진)를 임명해 금융권의 ‘공포지수’를 높였다. /사진=금융감독원


꾸준한 소득이 있는 채무자들의 재기를 돕기 위해 시행되는 개인회생 제도의 취지 자체는 매우 바람직한 것이다. 법원의 이번 준칙 개정이 세간에서 오해하는 것처럼 ‘나라 세금으로 코인 빚을 갚아주는’ 것도 아니다.


허나 이번 결정이 자칫 사행성 투자‧투기에 눈 돌리지 않고 성실하게 살아온 사람들을 코너로 내모는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은 다분하다. 당장 은행권 주변에선 앞으로 대출에 더 신중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특히 가상자산에 관심이 많은 젊은 세대에 대한 대출이 까다로워질 가능성이 높다. 대출이 가장 절실한 취약계층들의 우산부터 빼앗는 역설적인 결과가 도출된다는 의미다.


이미 관련 소식을 전하는 기사 댓글과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나도 남들 다 할 때 코인이나 할 걸’이라는 자조가 넘쳐난다. 과욕이 트렌드가 되는 시대, 성실은 한낱 농담거리로 전락한다. 도덕적 해이를 기본 상수로 깔고 가야 하는 사회에선 탐욕마저도 반드시 갖춰야할 ‘스펙’이 되어간다.



[미디어펜=이원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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