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에 굴복 우려...비핵화·인권 발언에 반발 등 분석

[미디어펜=김소정 기자]북한이 21일로 예정됐던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방북 허가를 돌연 철회하면서 남북관계에 긴장 국면을 유지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반 총장은 20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서울디지털포럼 2015’ 개회식 축사에 앞서 “북한 측이 오늘 아침 갑작스럽게 외교경로를 통해 개성공단 방북 허용결정을 철회했다”며 “갑작스러운 철회에도 설명이 없었다. 이번 평양의 결정은 대단히 유감스럽다”고 밝혔다.

방한 중인 반 총장은 전날 서울디지털포럼 연설에서 개성공단 방문을 발표했다. 북한이 반 총장의 발표가 나온 지 반나절 만에 방북허가 결정을 번복한 것을 놓고 많은 해석이 나온다.

   
▲북한이 21일로 예정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개성공단 방문허가를 돌연 철회하면서 많은 해석이 나왔다. 사진은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사진=연합뉴스

북한이 당초 반 총장의 개성공단 방문을 조용히 치르려고 했다가 국제적인 주목을 받게 되자 한국과 미국에 굴복하는 것처럼 비춰질 것을 우려해 취소했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최근 서울을 방문한 존 케리 미국 국무부장관이 “북한은 대화에 응해야 한다”고 압박한 것이나 박근혜 대통령도 “북한이 국제사회와의 교류를 통해 정상적인 길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한 것에 대한 반발인 셈이다.

또한 반 총장이 전날 참석한 국제포럼에서 밝힌 연설 내용에 거부감을 드러낸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북한은 반 총장을 국제기구의 수장으로 판단하고 그의 방북을 허가함으로써 대외적 이미지를 개선하는 한편, 유엔 기구의 대북 지원까지 고려했을 수 있다.

하지만 반 총장이 방한 중에 “북한의 비핵화”를 강조하고, 전날 참석한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에서는 “북한의 법치와 인권 등 개혁·개방을 위해 적극 지원하겠다”고 말한 것에 대해 불만 표출을 한 것일 수 있다.

여기에는 반 총장을 북한에 초청해서 만나도 크게 얻을 것이 없을 것이라는 계산도 깔려 있을 것이다.

이와 함께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이달 초 러시아 전승절 기념행사에 불참한 것과 맞물려 잇따라 외교적 결례를 일삼을 수밖에 없는 북한 내부의 속사정이 있는 지에도 시선이 쏠린다.

김정은의 방러 불발을 전했던 러시아 정부는 “북한 내부 문제 때문”이라고 했고, 앞서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만나고 북한으로 돌아간 현영철 북한 인민무력부장이 열흘만에 숙청되고 처형된 소식이 우리 측 정보당국으로부터 나왔다.

전직 정보기관 고위 관계자는 “중국·러시아와의 대화를 거부한 북한이 유엔의 손길마저 뿌리친 것을 볼 때 김정은 체제의 내부 사정을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면서 “북한도 국제기구의 수장을 초청해놓고 이를 돌연 취소하는 것이 외교적 관례에 크게 벗어나는 것임을 알고 있다. 매우 이례적인 일로 판단되고, 결국 김정은 외교력의 미숙함을 드러냈다”고 말했다.

반 총장이 이번에 방북했다면 유엔 사무총장으로서는 첫 개성공단 방문이자 2007년 유엔 사무총장 취임 이후 첫 방북이었다. 유엔 사무총장으로는 역대 3번째의 방북이었으며, 1993년 부트로스 갈리 유엔 전 사무총장 이후 20여년만이었다.

북한이 유엔과의 대화마저 거부하면서 한국 등과 대화 테이블에 다시 앉을 가능성은 더욱 낮아졌다. 북한은 남북 간 민간 차원에서 추진되던 6.15 공동행사에 대해서도 최근 개최 장소를 트집잡아 무산을 시사했다.

게다가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 시험 발사를 했던 북한은 이날 다시 국방위 정책국 대변인 성명을 내고 ‘핵타격 수단 소형화 단계’를 공표, “도전하지 말라”고 위협하고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