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 남북이 22일 개성공단 최저임금 인상 문제에서 ‘기존 기준대로 지급’이라는 합의를 어렵게 도출했다. 단, 북 측이 주장하는 임금 인상과 관련해서는 ‘지난 3월부터 발생한 임금 차액과 연체료는 차후 협의에 따라 소급 적용한다’는 단서가 달렸다.
이 같은 합의는 남 측의 개성공단관리위원회과 북 측의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 간 협의 결과에 따른 것이다.
이로써 북 측이 최저임금을 기존 70.35달러에서 74달러로 인상하고 사회보험료 산정 시 가급금(수당)을 포함시키려는 독주는 일단 중단됐다. 또 북 측이 개성공단 최저임금 문제를 놓고 남 측과 대화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으로 비로소 남북은 개성공단 회담을 이어나가게 됐다.
작년 12월 북한이 일방적으로 개성공단 노동규정을 개정하면서 시작된 갈등이 수개월간 이어지면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제라도 개성공단의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지난 2004년 4월 공단부지 조성 공사가 시작됐고, 그해 12월 개성공단에서 첫 제품이 생산됐으니 10년이 되었지만 툭하면 긴장 국면을 조성하는 불씨를 남기지 않으려는 노력이 미흡했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우선 큰 틀에서 남북 경제협력에 통용되는 기본규칙 하나 없는 점을 지적했다. 10년이 넘도록 개성공단을 ‘평화의 상징’으로만 보는 시각을 깨고 제2, 제3의 개성공단을 만들 수 있는 경제특구의 모범으로서 개성공단이 거듭나야 한다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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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북이 22일 개성공단 최저임금 인상 문제에서 ‘기존 기준대로 지급 후 협의’라는 합의를 어렵게 도출했다. 사진은 북한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방북을 돌연 철회한 20일 오후 파주 도라전망대에서 바라본 북한 개성공단 전경. /사진=연합뉴스 |
박상철 경기대학교 정치전문대학원장은 “이제 개성공단을 경제특구로 바라보고 기업에 자율성을 좀 더 부여하는 전략이 필요하다”면서 “나진·선봉 경제특구와 비교해도 개성공단에는 정부 승인이 더 큰 구속력을 갖고 있어 오히려 발전 가능성을 저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가령 나선 특구의 경우 진출한 기업이 초청한 인사들의 방문이 가능하다. 물론 북한과 합작회사의 경우로 당국의 최종 승인 절차가 있지만 박 원장은 “이런 점이 특구 개념을 살린 것”이라 했다.
박 원장은 또 “우리나라가 여러 나라와 체결한 FTA 규정마다 개성공단에서 생산되는 제품을 한국산으로 볼지 여부가 제각각 다른 것도 남북경협을 대표하는 개성공단의 정체성을 보여주므로 간과할 문제가 아니라”고 지적했다.
지금 개성공단 최저임금 인상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지만 사실상 임금 상한 5% 규정은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다. 따라서 북한이 일방적 결정을 강행해온 데에는 지난 10년간 유지해온 상한제를 깨려는 목적이 있었다.
이와 관련해 조봉현 IBK경제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임금인상 상한 5% 규정이 오래된 만큼 남북이 대화로 풀 수 있는 문제”라면서 “이제 정부는 임금 문제만 갖고 대화 제의를 할 것이 아니라 기숙사 건립 등 전향적인 자세로 대화에 임하는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개성공단 임금 갈등이 장기화되면서 당초 1단계 마스터플랜에서 진행률이 2.5%에 불과해 사실상 성장이 멈춰버린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많이 나왔다. 입주기업도 당초 분양받은 기업의 50%에 불과할 뿐더러 정부가 약속한 기숙사 건립, 개성시내 도로 보수, 주민 식수문제 해결 등도 전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부는 개성공단의 취약한 법적 인프라를 새롭게 정비하는 데 적극 나서야 하고, 이런 변화로 개성공단을 민족사업으로 여기고 좌지우지하려는 북한의 시각까지 리드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박 원장은 “나선 특구의 규정을 보면 과거 중국이 개혁개방을 시작할 때 1단계 수준은 되지만 개성공단 규정은 현실적이지 못한 점이 많다”며 “개성공단을 단지 낮은 임금으로 노동력을 구할 수 있는 곳으로만 여기는 인식을 깨고 안정된 법적 인프라를 정비해야 한다”고 했다.
나선 특구의 노동규정을 보면 제7조에서 개성공단에서 인정되지 않는 직업동맹조직이 있고, 이 조직에 여러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기업은 직업동맹조직과 계약을 체결하고 나선시 인민위원회나 관리위원회의 승인을 얻는 식이다. 제15조에서는 ‘만약 노동계약서에 결함이 있을 경우 계약을 다시 체결할 것을 기업에 요구할 수 있다’고도 명시해 시장경제에 부합하는 절차를 나름 갖추고 있다.
하지만 처음 만들어진 개성공단의 노동규정을 보면 ‘공업지구관리기관’이 기업의 노동력 채용과 관리사업을 모두 도맡게 돼 있어 상당히 후퇴해 있다. 게다가 개정된 규정 7조에서 공단의 감독통제사업을 하는 기관을 ‘공업지구관리기관’에서 ‘중앙공업지구지도기관’으로 고쳤다. 당초 개성공단에 독자성과 자율성을 보장한다는 원칙이 크게 훼손된 것이다.
직업동맹조직이 오히려 노무관리의 유연성을 제한한다는 견해도 있으나 동시에 개정된 나선지대법 제 40조 총계획요강 제45조에서 ‘기업경영 과정에서 로동력 채용과 해고 등의 행위는 기업이 시장원칙에 따라 자주적으로 결정한다’고 명시했다. 현재 나선 특구에서도 임금 직불제는 허용되지 않고 최저임금 인상 상한도 없지만 특구로서의 면모를 갖췄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아울러 나선지구 기업규정 제11조 제3문 ‘기업의 출자’ 항목에서는 ‘출자재산과 재산권의 가치는 검증기관의 검증을 받도록 한다’라고 명시해 외국 측 투자가를 보호하는 측면도 갖추고 있다.
이번에 북한은 남한 당국과 합의한 규정을 깨고 최저임금의 일방적인 인상을 주장하면서 “우리가 남측 기업가들과 하는 경제특구”라는 주장을 이어갔다. 정주영 회장 생전에 현대그룹이 시작한 개성공단 건설이 금강산관광 수입 부진의 영향을 받으면서 우리 정부의 지원이 들어갔고, 공단 조성사업의 주도권을 정부가 넘겨받은 점을 망각한 행태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북 측의 억지 주장 역시 명확한 법적 인프라가 구축되지 않은 탓에 비롯된 것으로 본다”며 “지속가능한 공단이 되려면 기업의 관점에서 하나씩 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조 수석연구위원은 “개성공단에 시장원리와 국제기준을 적용시키는 작업이 수반되어야 외국기업도 참여를 희망하는 평화특구가 될 수 있다”며 “이런 점에서 남북 당국 모두 일방적인 관여가 아니라 기업이 손해를 보지 않아야 한다는 시각으로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원장은 “개성공단 운영에 있어서 남 측 관리위와 기업에 권한을 더 부여하는 규정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임금 문제 정도는 기업이 직접 협의하고 최종 정부가 승인하는 식이면 더 좋다”면서 “특정 사건이 발생했을 때에도 공동 수사와 공동 재판절차 등을 마련하는 식으로 개성공단을 자치특구로 변모할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