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정치적 셈법에 내년 정부 예산안 법정처리 시한 넘길 듯
치킨게임 끝은 ‘공멸’…파행 부담 커 관례 따라 합의 도출 전망
[미디어펜=최인혁 기자] 윤석열 정부 내년도 예산안의 법정처리 시한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여야는 예산안 처리에 여전히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이에 예산안이 법정 처리 시한을 넘길 수밖에 없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인 상황이다.

현재 여야는 한시가 바쁜 상황임에도 불구 신경전을 펼치고 있다. 이들은 예산안 합의를 주도 하기보다 파탄에 대한 책임 전가에 더 혈안이 된 모습이다. 

그러다 보니 내년도 예산안을 ‘민생 예산’이라 강조하면서도 제 자리 걸음을 벗어나지 못해 갈등은 장기화 될 것으로 예측된다.

   
▲ 더불어민주당이 10월 25일 윤석열 대통령의 시정연설을 보이콧 한 가운데 윤 대통령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2023년도 예산안 및 기금운용계획안에 대한 시정연설 후 퇴장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사진


‘대여투쟁’ 수위 올린 민주당. ‘정부 예산안’ 일거양득 기회 

국회가 예산안에 진통을 겪는 이유는 여야의 정치적 셈법이 얽매인 탓이다. 특히 정부 예산안은 야당에게 유용한 대여투쟁 수단이자 정부와 협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기회다. 국정 운영에 무한 책임을 지고 있는 정부여당이 예산 없이 국정 철학을 증명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산안에 변수가 발생할 경우 상대적으로 조급함을 느끼는 것은 야당보다 정부여당일 수밖에 없다. 국민의힘이 예산안을 조건으로 극구 반대하던 10.29참사 국정조사를 수용한 것이 이를 설명하는 사례다. 이에 민주당은 협상의 키를 쥔 만큼 정치적 성과 달성을 위해 예산안을 최대한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여야 합의가 파행될 경우 비교적 책임 소재에서 자유롭다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그동안 민주당은 고환율·고유가·고금리의 경제 위기 상황에 윤석열 정부의 무대응과 무능력을 줄곧 비판해왔다. 

또 내년도 정부 예산안이 ‘초부자 감세, 서민 외면’이라는 주장도 펼친 바 있다. 이에 여야 합의가 파행될 경우 앞서 제기했던 프레임으로 민심 이반을 유도하고 국정 주도권 쟁취도 시도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아울러 사법 리스크도 민주당이 예산안을 지연시켜야 할 이유로 평가된다. 최근 검찰은 이재명 대표의 정치적 동지인 정진상 정무조정실장, 김용 민주연구원 부원장을 연이어 구속했다. 이어 이 대표 또한 연내 소환 조사를 받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에 민주당은 국회의원 불체포 특권을 활용해 ‘이재명 방탄’에 나서야 할 상황이다. 하지만 정기국회는 오는 9일 종료될 예정으로 회기 중에만 적용되는 불체포 특권을 지속하기엔 제약이 발생한다. 따라서 방탄 목적으로 임시회를 개최하기 위해선 예산안 지연이 적격이라는 해석이다.

즉 민주당에게 예산안 지연은 정부여당 압박은 물론 사법 리스크 방어까지 일거양득인 셈이다.

잃을 것 없는 윤석열 정부, 예산안 대응 선택지 많아…‘치킨게임’ 불사 

하지만 정부여당은 민주당 전략에 쉽게 응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정부가 콘크리트 지지율로만 국정 운영을 이어가고 있어 예산안이 지연된다고 한들 더 이상 상실할 민심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여당에게 예산안 지연은 오히려 반격의 기회로 여겨진다. 또 야당의 전략에 맞설 선택지도 많아 지연에 따른 조급함도 상쇄될 것으로 파악된다. 

정부여당은 우선 ‘선 예산안 후 국정조사’로 야당 압박에 나설 것으로 분석된다. 여야 합의로 의결한 이태원참사 국정조사 계획서에 따르면 예산안이 통과가 선행돼야 국정조사가 가능하다.

예산안이 지연되는 만큼, 윤석열 정부의 책임을 추궁할 수 있는 국정조사 기한도 축소되는 셈이다. 이에 정부여당은 야당이 예산안을 지연할 경우 진상 규명 기회가 물거품 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공략할 것으로 보인다. 

국회법에 따른 본회의 자동부의제도 유용한 선택지다. 국회선진화법 도입으로 예산안 또는 법률안이 기안 내 심사를 마치지 못한 경우 자동으로 본 회의에 상정된다. 

야당의 입맛대로 삭감된 예산안보다 정부 원안이 채택될 기회가 생기는 셈이다. 더욱이 원안이 부결돼 준예산으로 갈 경우 ‘국정 발목 잡기’·‘대선 불복’ 프레임을 제기할 수도 있다. 야당에게 끌려다니는 대신 흠집을 내는 것이 더 나은 선택지가 될 수도 있다는 판단이다. 

야당이 연일 정부여당을 향해 “조급한 모습이 전혀 없다”, “가짜 엄마 같다”, “누가 여당인지 모르겠다”며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는 이유다.

초유의 사태 ‘준예산’·‘수정안’ 정치적 부담 커…결국, 합의점 도출할 듯

파국으로 치닫는 치킨게임의 결과는 공멸이다. 예산안이 합의점을 찾지 못해 극단의 상황을 맞을 경우 여야정 모두 얻을 수 있는 실익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민주당은 정부여당의 술수에 감액 중심 수정안 단독 의결을 언급하며 돌파구를 마련하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이는 실현 가능성이 현저히 낮을 것으로 파악된다. 

야당 단독으로 수정안을 처리할 경우 예산 증액은 불가능하다. 이는 윤석열·이재명 표 예산은 물론 지역구 현안을 위한 예산 등 적재적소에 사용돼야 할 예산 확보가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다. 

증액 없는 예산안이 채택될 경우 정쟁으로 국정 운영을 방기했다는 국민 반발과 역풍은 예고된 일이다. 또 21세기 이후 헌정사에 없던 초유의 사태를 일으킨 주인공이라는 정치적 부담은 덤이다. 따라서 여야 치킨게임은 결국 중단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풀이된다.

29일 복수의 정치권 관계자에 따르면 여야는 과거 사례를 답습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판단된다. 

국회선진화법 이전 국회는 내년도 예산안을 당해 1월 1일에 가결해왔다. 자동부의제가 도입된 최근 10년 동안에도 예산안이 기한 내 통과된 적은 단 2회에 불과했다. 예산안 지연 후 합의는 오랜 ‘관례’라는 뜻이다. 따라서 여야도 국회 관례에 따라 타협점을 찾을 것으로 예상된다.
  
정치권 관계자는 미디어펜과의 통화에서 “예산안이 가결될 시기를 특정하기 어렵지만 (준예산·수정안 등) 초유의 사태가 발생될 가능성은 낮을 것”이라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시한 초과) 전례가 없던 게 아닌 만큼 여야가 장기간 대립하더라도 결국 합의를 이룰 것”이라고 관측했다.
[미디어펜=최인혁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