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페르니쿠스가 필요한  새해 계획

   

혁명(革命)으로 번역되는 레볼루션(Revolution)의 어원은 회전이다. 그것도 천체의 공전을 의미했다니 엄청난 크기의 단어다. 사전을 보면 역사적 사건과 희대의 영웅들로 인해 어원이 변천을 거쳐 새로운 뜻으로 착근하는 경우가 많다. 글자 속에 역사가 숨 쉬고 엄청난 에너지를 함의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레볼루션의 대표적 의미가 혁명으로 굳어진 공로는 오롯이 코페르니쿠스의 몫이다.

가톨릭 사제였던 코페르니쿠스는 지동설을 주창해 천문학자로 각인됐다. 1500년대 중반 중세의 어두운 그림자를 거둬내던 유럽인에게 “지구가 태양을 돌고 있다”는 주장은 사실 여부를 넘어 새로운 지평을 열어 주었다. 유럽과 지중해를 건너 인류 모두가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는 사고의 틀을 제공받았다. 과학과 철학의 통섭에 천착한 토마스 쿤은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이라는 유명한 용어로 프레임 변화를 설명했고, 1962년 발표된 그의 대표적 저서 ‘과학 혁명의 구조’에서 패러다임 변화라는 개념으로 계승했다.

대주교까지 역임한 코페르니쿠스는 1520년 경 이미 완성된 자신의 논문을 교황청의 눈치를 보며 출판할 때를 기다렸다. 그러나 당시 격화된 구교와 신교의 종교적 갈등으로 인해 교황청이 교조주의적 강경 입장을 고수하며 좀처럼 때를 잡지 못했다. 하지만 말년에 이르러 코페르니쿠스는 뇌출혈로 사경을 헤매게 됐고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상황에서 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드디어 1543년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라는 제목으로 출판했다. 코페르니쿠스는 6권으로 구성된 자신의 저서 출판을 확인하고 숨을 거뒀다.

   
▲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은 발견이 아니라 관점의 문제이다.


계속 되는 논쟁이지만 코페르니쿠스가 지구가 태양을 돈다는 사실을 처음 발견한 사람일까? 허블 망원경도 없던 시기에 육분의만 가지고 지동설을 입증할 수 있었을까? 당시만 해도 아르키메데스 이후 상식이었던 천동설을 단 번에 뒤집은 것일까? 주류 천문학을 구가하던 프톨레마이어스의 지구 중심 학설을 어떻게 반증했을까?

해 아래 새 것이 있을까. 기원전 3세기에 살았던 그리스 과학자 아리스타르코스(Aristarchos)는 지구와 달, 태양 간의 거리를 측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지동설을 주장했다. 물론 결과치는 실제와 한참 거리를 두고 있지만 그의 접근법은 옳았다. 로마에 머물던 코페르니쿠스가 이러한 옛 기록을 접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 코페르니쿠스는 수 백년에 걸쳐 정교한 별자리를 그려 넣은 ‘알폰신 테이블’을 끼고 살았다는게 전기 작가들의 확신이다. 알폰신 테이블은 아랍은 물론 지중해 천문학의 정수로 평가되는 별자리 기록이다.

이런 까닭으로 코페르니쿠스의 혁명적 위대성이 손상될까? 아닐 것이다. 코페르니쿠스의 위대성은 별견이 아니라 사고의 혁명적 전환에 있었다고 후대 사가들이 평가하지 않던가.

“코페르니쿠스의 발견은 어떤 새로운 증거에 근거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 이상하게 들렀을 것이다. 별자리는 아랍 천문학자들이 수세기 전에 관측했던 것과 똑같았다. 유일하게 다른 거라고는 코페르니쿠스의 관점이었다. 수세기 동안 천문학은 지구가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런데 코페르니쿠스는 낡은 별자리표를 재학습함으로써 우리를 새로운 세상으로 안내했다. ‘앵거스 플래처, 우리는 지금 문학이 필요하다, 513p’

2023년 계묘년(癸卯年)을 앞두고 새해 계획으로 분주하다. 정부는 ‘따뜻한 나라, 역동적 경제, 건전한 재정’을 정책 목표로 새해 살림살이를 준비 중이다. 기업들은 각종 경제 지표와 석학들의 전망까지 엮어 비상한 계획을 마련했다고 한다. 암울한 경제 환경으로 인해 성장이 아니라 생존이 목표라니 결기가 대단하다. 

세수(稅收)를 근간으로 한 정부와 달리 기업들의 경우 예측이 빗나가면 그야말로 생사가 오가기에 정확한 예측에 온 힘을 쏟는다. 하지만 정부는 물론 기업의 경제 예측이 맞은 적은 별로 없다. 비슷하게라도 예측이 맞았다면 아마 변화하는 경제 환경에 따라 1년 내내 예측을 수정한 결과일 것이다. 기업을 대표하는 인재들이 모여 오랜 시간 공을 들인 계획이 빗나가기 일쑤인 이유는 무엇일까. 각종 신기술과 화려한 미래세계를 논하며 서점가를 휩쓰는 트렌드 분석서가 연말만 되면 쓰레기가 되는 이유와 동일해 보인다.

새해 계획에서 오발탄이 나는 가장 쉬운 이유는 ‘생존자 편향(Survivorship bias)의 오류’에서 찾을 수 있다. 2차 세계대전이 한창 일 때 미국 해군분석센터는 임무 후 귀환한 전투기들에 나타난 탄흔을 근거로 전투기 보강작업을 계획했다. 비행기 기체 가운데 총탄 자국이 가장 많이 부위를 덧대자는 아이디어다. 그러나 해군분석센터에서 근무하던 통계전문가의 반대로 아이디어는 폐기됐다. 반론은 간단하다. 가장 약한 부위에 총탄을 맞은 전투기는 추락해서 무사히 귀환하지 못했기에 생존한 전투기만을 대상으로 한 연구는 무의미하다는 주장이다. 

기업이 미래 예측을 위해 사용하는 모델이나 데이터는 거의 대부분이 살아서 돌아온, 즉 성공한 모델을 기반으로 한다. 성공한 모델과 지표를 무기로 총탄을 피하기 위한 항로 예측에 나선다. 소나기는 쏟아지는데 비 사이로 막가는 방법이 있을까. 

헤지펀드계의 전설적 그루인 레이 달리오는 자신의 연구 풀을 활용해 오랜 시간에 걸쳐 수 만년 인류 역사와 수천 년 투자 역사를 연구했다. 투자서를 넘어 경제 흐름의 통찰적 명저로 꼽히는 ‘세계경제 질서의 변화’에서 레이 달리오는 경제 예측의 불가함을 긴 호흡으로 설명하고 오히려 새로운 관점으로 준비하고 대응할 것을 조언한다.

코페르니쿠스는 달랐을 것이다. 아리스타르코스라는 위대한 선각자의 지식을 전수받고, 알폰소 테이블을 연구했을 건 확실하다. 그러나 앞선 데이터를 답습하지는 않았을 게다. 무엇보다 그는 돋보기를 새로운 곳에 들이댔을 것이다. 과거의 유산을 거부하지 않았지만 자신의 프레임을 창조하는 방법으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과 혁명을 끌어냈을 것이다. 

코페르니쿠스의 놀라운 통찰은 인류의 DNA로 남겨져 인류세(Anthropocene, 人類世)를 이루는 강한 영감을 제공한다. 그 영감이 우리에게 가지 않은 길을 가는 작은 혁명을 요구하고 있다.


미디어펜=김진호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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