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월 정기예금 잔액 827조 3천억…'현금부자' 노년층 가입주도
[미디어펜=류준현 기자] 한국은행이 올해에만 기준금리를 2.25%포인트(p) 인상한 가운데, 올해 국내 5대 은행의 정기예금 잔액이 약 172조원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주식·가상자산 시장 등에서 손실이 컸던 데다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유동자금이 은행권으로 대거 몰린 모습이다. 현금 보유량이 상당한 노년층을 중심으로 정기예금 가입을 주도하는 셈인데, 내년 상반기까지 유행세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 한국은행이 올해에만 기준금리를 2.25%포인트(p) 인상한 가운데, 올해 국내 5대 은행의 정기예금 잔액이 약 170조원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사진=김상문 기자


2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국내 5대 은행의 지난 11월 말 기준 정기예금 잔액은 827조 2986억원으로 집계됐다. 한 달 전보다 약 19조 710억원, 지난해 말 654조 9359억원 대비 약 172조 3627억원 각각 늘었다. 

증가분만 놓고 보면 지난해 증가분 40조 5283억원 대비 약 4배 증가한 셈이다. 특히 10월 한 달에만 한 해 증가분의 약 27% 수준인 47조 7231억원이 정기예금에 몰렸다. 11월에는 잔액이 19조 710억원 늘어나며 증가세가 다소 둔화됐다. 당국 개입에 은행권이 금리를 자체 인하한 영향 때문인데, 그럼에도 열기는 여전하다는 평가다.

반대로 주식자금은 크게 빠졌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주식시장 대기성 자금인 투자자예탁금은 올 1월말 70조 3447억원에서 10월말 48조 6191억원으로 약 21조원 이상 줄었다.

은행권은 정기예금 러시현상을 두고 기준금리 인상에 따른 상품금리 인상이 절대적이라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한은에 따르면 국내 은행의 신규취급액 기준 정기예금(1년 만기) 금리는 올 1월말 연 1.73%에서 10월말 4.20%까지 치솟았다. 일부 은행권 정기예금 금리는 연 5%를 넘기기도 했다. 

한 은행 관계자는 "(올해) 상반기 대비 하반기에 예금 가입이 많이 늘어났다"며 "9월부터 본격적으로 상품금리를 올렸는데 8월 말 대비 11월 말 예금 증가분이 약 30조원대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예금 가입을 주도하는 계층은 대체로 현금자산이 풍부한 노년층인 것으로 나타났다. 청년층이 여전히 주식거래를 선호하는 것과 대비된다는 평가다. 이에 오프라인 영업점 업무량도 폭발했다는 후문이다. 

한 관계자는 "젊은 청년층이 비대면으로 상품을 가입·중도해지하는 것과 달리, 어르신들은 디지털에 대한 불신 등으로 인해 영업점 업무를 절대적으로 선호하는 편"이라며 "(은행권) 금리가 9월 말부터 우상향하면서, 가입했던 예금을 중도해지한 후 재가입하려는 노년 고객층이 급증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오프라인 업무량 측면에서 상반기 대비 하반기가 급증했는데, (예금 가입이) 단순 업무이긴 하지만 계속 손님들이 늘어나 바쁜 편"이라고 전했다. 현재 은행권 영업점은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3시 30분까지 운영 중이다.   

특히 이들 계층은 저축은행 등 2금융권보다 1금융권을 절대적으로 선호하는 모습이다. 과거 일부 저축은행의 파산(뱅크런)으로 예금자보호법에 대한 관심이 커진 데다, 법에서 보호하는 한도치인 5000만원 이상의 종잣돈을 넣으려 하다 보니 신뢰할 수 있는 곳에 맡기겠다는 심리다. 일부 이익을 포기하더라도 믿을 수 있는 곳에서 확실한 수익만 거두려 한다는 분석이다.

한 은행 관계자는 "1금융권에 대한 신뢰와 (은행이) 준비해놓은 예대금 비율 등으로 인해 이들은 1금융권을 많이 선호하는 편"이라며 "저축은행에서 불안하게 7%대 금리를 받느니 확실하게 1금융권에서 5%대 금리를 받는 게 낫다는 심리가 깔려 있다"고 전했다.

정기예금 가입기간은 1년이 대부분인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5%대 금리를 제공한다는 내용의 예금은 대부분 가입기간 1년 기준이다. 1년이 지나면 금리는 최저 2%대까지 크게 떨어진다. 다만 금리인상 기조가 내년 중 꺾일 것이라는 일각의 분석이 나오면서, 예금 가입기간을 최장 3년으로 늘리려는 소비자도 나올 것이라는 의견이 제기된다. 

한 은행 관계자는 "가입기간은 1년을 많이 하는 편인데, 언론 등에서 금리가 꼭지점인 것 같으니 1년보다 3년이 괜찮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며 "(절대값으로) 1년보다 금리가 낮지만 3년 동안 확정금리라는 점에서 3년 가입을 선호하는 고객도 늘어날 것으로 본다"고 전했다.

한편 지난달부터 예금잔액 증가세가 둔화되고 있지만, 역(易) 머니무브 기조는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현지시간으로 지난달 30일 12월 금리인상 속도를 조절할 것이라는 의견을 내비쳤지만, 금리인상이 기정사실화인 만큼 한은도 금리를 추가 인상할 것이라는 평가다. 

지난달 24일 열린 한은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이창용 한은 총재를 제외한 6명 금통위원들의 최종금리 예측치는 △3.50%(3명) △3.75%(2명) △3.25%(1명) 등이었다. 이에 내년 상반기까지는 정기예금이 좋은 투자처가 될 것이라는 평가다. 

한 관계자는 "파월이 금리인상 속도를 조절한다고 했어도 (그동안) 내년까지 금리를 올릴 것이라고 했었다. 속도조절로 보이는데 내년 상반기까지는 정기예금이 유망할 것"이라며 "(요즘과 같은 증시 상황에) 무위험 5% 수익률(정기예금)이면 원금손실 가능성이 있는 10% 수익률(주식)보다 훨 낫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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