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일에는 시기적절한 때가 있다. 과거에는 맞았지만 지금은 틀린 일이 부지기수다. 

대한항공의 아시아나 인수합병이 진행 중이지만 우려를 지울 수 없다. 예상보다 시간이 너무 길어지고 있다. 비록 영국에서 기업 결합 심사를 통과해 인수합병 허가가 결정됐지만, 미국·EU·일본·중국 등 여전히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사실 기업 결합 심사를 통과했지만 내준 것이 많다. 아시아나의 인천-런던 슬롯을 고스란히 내줬기 때문이다. 다른 국가들도 같은 조건을 내 건다면 대한항공이 얻는 실익은 현저히 줄어들 수밖에 없다. 

비록 독점에 가까운 국내 항공선과 동남아 등 중장거리 노선에 대한 이점이 있지만, 저비용 항공사(LCC)들과의 경쟁이 필연적이다. FSC(Full Service Carrier) 항공사의 전유물인 장거리 노선은 합병의 최대 이점으로 꼽혔다. 하지만 장거리 노선 독점은 외항사에 슬롯을 반납하면서 얻는 득이 반감됐다.

외항사가 아시아나의 역할이었던 독점 견제를 일부 담당할 수 있을지 몰라도, 국부가 빠져나가는 것은 유쾌한 일이 아니다. 대한항공은 오히려 더 많은 외항사와 경쟁해야 하는 불이익을 얻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보다 더 문제는 아시아나 인수합병 시기다. 아직 언제 결론이 날지 모르는 상황이기에 정세는 대한항공 입장에서 빠르게 악화되고 있다. 

현대산업개발은 아시아나 인수합병 결정 후 코로나19 사태가 터지자 발 빠르게 손절을 감행했다. 하지만 대한항공은 국내 대표 항공사로 업계의 어려움을 타개하고, 안정적 환경과 편의를 제공하겠다는 명분이 있어 발을 빼기가 쉽지 않다.

과거 인수합병 사례를 보면 산업은행이 동부제철을 매각한 것이 떠오른다. 동부제철은 2015년 워크아웃에 들어가기 전까지 수차례 매각 협상이 진행됐지만 모두 실패했었다. 사실상 인수 희망 기업이 없었다. 결국 수차례 무상감자를 거쳐 빚을 거의 탕감한 후에야 KG그룹에 인수됐다. 

2조 가까운 빚을 탕감받고 인수대금이 3600억원에 불과했으니 당시 업계에서는 KG그룹이 동부제철을 거저먹었다는 인식이 많았다. 그도 그럴 것이 KG스틸에게 산업은행이 제시한 조건이라면 동국제강이나 세아에서 충분히 인수가 가능했었기 때문이다. 실제 세아에서는 동부제철 인수를 진지하게 검토한 바 있다.

동부제철과 아시아나의 인수합병 직전 공통점은 영업이익은 흑자지만, 빚을 감당할 수 없어 재무제표가 갈수록 악화됐다는 점이다. 동부제철도 당시 9%대의 이자율로 빌린 돈이 많았다. 현 아시아나 상황과 비슷하다. 

동부제철은 열연 사업을 제외한 냉연 사업에서 꾸준히 흑자를 기록하고 있었다. 강점은 영업력으로 회사가 망할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돌았어도 충성심 강한 고객들은 이탈하지 않았고, 고객 지키기에 성공한 동부제철은 인수합병 후 견실한 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아시아나도 아시아나항공은 흑자를 기록 중이지만 계열사인 LCC 항공사의 적자와 고금리로 빌린 채무는 손쓸 도리가 없을 지경이다. 코로나19 이전 이자보상비율이 1을 넘어 스스로 빚을 갚을 수 있는 기업으로 평가됐지만, 현 처지는 부채율 1만%가 넘는 한계기업에 불과하다. 돈을 벌어 빚을 갚기는커녕 빠른 속도로 부채율이 증가하고 있어 한시라도 빨리 이를 타개해야 하는 상황이다. 

   


심지어 항공업계가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가더라도 영업수익을 통해 빚을 갚기는 어려워 보인다.
아시아나는 동부제철과 같이 무상감자를 통해 부담을 줄였지만, 기업 결합 심사로 인해 지연되는 합병 시기는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사례를 떠올리게 한다. 비록 이번에는 기업 결합 심사는 통과할 것으로 보이지만, 시기가 늦춰지는 만큼 대한항공의 부담은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다.

결국 과거 당시에는 옳은 판단이었지만, 현재는 재고해야 할 만큼 상황이 악화됐다는 뜻이다. 대한항공이 인수를 결정한 2020년 4분기의 아시아나 부채비율은 2291% 수준이었다. 일반적으로 기업의 부채율은 100% 미만이면 견실한 기업 200% 이상이면 위험 수준으로 바라본다. 다만 국제 회계법 도입 과정에서 항공기 리스가 부채로 잡히면서 항공사들의 부채비율은 급격히 치솟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시아나의 현재 부채비율은 과연 합병가치가 2년 전과 같은지 의문을 갖게 한다. 더욱이 기업 결합 심사를 하는 경쟁국에 알짜 슬롯을 넘겨야 한다면 더더욱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지금과 같이 고금리로 인해 유동성이 막혀 현금 흐름이 중요한 시기에 대한항공이 대규모 자금을 투입해 아시아나를 인수하는 것은 정상적 기업의 행태에 반하는 행위에 가깝다.

산업은행은 동부제철 외에도 과거 매각하려는 기업을 손실을 보더라도 낮은 가격에 처분한 사례가 있다. 금호타이어만 해도 공적자금이 7조원이나 투입됐지만 두 차례 워크아웃을 맞아 제 값을 못 받고 더블스타에 넘어갔다. 

현대산업개발은 코로나 3년 정국을 바라보고 과감히 아시아나 인수를 포기했고, 과거 한화도 수천억원을 포기하고 대우조선해양 인수전에서 물러난 바 있다. 대한항공은 명분상 이번 인수를 쉽게 포기하진 않겠지만, 산업은행과 채권단에서 현 상황에 대한 추가 지원이 필요해 보인다.

과거 동부제철은 가격을 비싸게 부르다 결국 무상감자를 남발하며 헐값에 매각했고, 대우조선해양은 과거 2008년 매각 무산 이후 15년 가까이 주인을 찾지 못한 채 공적자금이 투여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명분이 있어도 기업이 이익단체인 만큼 손해를 감수할 수 있는 선은 정해져 있다. 대한항공 측은 잠잠히 있지만, 속은 쓰릴 것이 분명하다. 기업 결합 심사가 수개월 지속되면 대한항공도 셍각을 달리 해봐야 하지 않을까?

[미디어펜=문수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