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미·중 보호무역주의 비판하며 '역외보조금 규정' 등으로 대응 천명
중국은 서방 금리인상 기조 비판…'해법' 보다 '대립' 심화
[미디어펜=김태우 기자] 유럽연합(EU) 행정부 격인 집행위원회가 역내 친환경 산업 육성을 위한 이른바 '탄소중립법' 입안 추진을 공식화했다.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안에 대응하기 위한 EU의 친환경 산업 관련 공급망 전반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클린테크 생산시설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EU차원의 문제해결방안으로 결국 자체적인 무역규제로 대응하겠다는 입장이라 우리나라와 같이 거대 시장을 갖지 못한 무역국가에는 악재만 추가되는 상황이 우려된다.

   
▲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 /사진=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SNS


22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17일(현지시간) 다보스포럼 연차총회 특별연설에서 "기후변화에 전 세계적인 대응이 필요하지만, 반드시 공정한 접근법과 공정한 경쟁의 장에서 이뤄져야 한다"면서 이 분야에 대한 보호무역주의 확산에 우려를 표했다.

그는 특히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 탄소중립에 기여하는 효과에 대해 높이 평가하면서도 정책적 폐쇄성에 대해서는 부정적 견해를 밝혔다.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일부 인센티브 제공과 관련해 미국 IRA의 특정 요소를 두고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라며 "EU 기업들과 EU에서 제조된 전기차들도 IRA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미국 측과 협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범대서양(미국-EU)의 무역과 투자가 분열되는 것을 피해야 하며, 각각의 인센티브 제도가 공정하고 상호 보강될 수 있도록 협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을 향해서도 공세를 이어갔다. "중국은 값싼 에너지와 낮은 인건비, 느슨한 환경 규제를 약속하며 유럽 및 다른 지역 기업들의 자국 이전을 유도하고 있다"면서 "자국 산업에 대해서는 막대한 보조금을 지원하면서 EU 기업들의 중국 시장 접근을 제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각국의 보호무역주의에 대응하는 방식으로 자체적인 무역 규제를 제시했다. 특히 오는 7월부터 시행되는 EU의 역외보조금 규정을 언급하면서 "우리의 공공 조달이나 기타 시장이 그와 같은 보조금으로 왜곡된다고 판단되면 조사 개시를 주저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EU 역외보조금 규정은 EU 외 국가에 소속된 기업이 자국 정부나 공공기관으로부터 과도한 보조금을 받고 EU 내 기업 인수합병이나 공공 입찰에 참여하는 것을 '불공정 경쟁'으로 간주해 규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상품수입 뿐만 아니라 각종 사업·투자, M&A 및 공공조달 등 EU 내의 모든 경제부문을 포괄하데다, 법안 시행 이전 최대 5년 전까지 소급 적용될 수 있는 등 적용 범위가 광범위해질 수 있어 우리 기업들에게도 위협이 되는 내용이다.

이날 류허 중국 부총리도 연차총회 특별연설에서 자국에 대한 적극적 투자를 요청하면서 서방 국가들의 강도 높은 금리인상 기조에 대해 비판하며 대립각을 세웠다.

그는 "주요 국가들의 금리 인상이 신흥 시장에 미치는 파급 효과에 더 많은 관심을 둬야 한다"면서 "개발도상국들이 더 많은 부채나 금융 위험을 떠안지 않도록 해 줄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 수출을 위해 평택항에 대기중인 자동차들. /사진=미디어펜


다보스 포럼에서의 간접 공방은 세계 경제의 3대 축인 미국과 EU, 중국의 자국 우선주의 강화와 권역별 대립 추세를 상징하는 모습으로 받아들여진다. 세 곳과 공급망이나 시장 측면에서 긴밀하게 엮여 있는 우리나라로서는 위협적인 상황이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유럽의회 본회의에 출석해 클린테크를 육성하기 위한 최우선 요건으로 '신속성과 접근권'을 키워드로 제시한 뒤 "클린테크 산업 관련 규모를 빠르게 늘리고 좋은 산업 여건을 조성하기 위한 규제 환경을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18일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탄소중립산업법이 EU의 반도체법과 동일한 형태로 설계될 것이라면서 "특히 새로운 클린테크 생산시설에 대한 허가 절차가 간소화되고 신속히 이뤄질 방법을 모색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경쟁력이 핵심 키워드"라고 강조했다.

그가 언급한 EU 반도체법은 오는 2030년까지 전 세계 반도체 생산 시장 점유율을 현재 9%에서 20%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공공·민간 투자를 통해 반도체 생산 확대에 430억 유로(약 59조 원)를 투입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전날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에서 탄소중립산업법을 처음 언급한 데 이어 집행위가 신규 법안 입안 시 협의를 거쳐야 하는 대상인 유럽의회에서 추진 의사를 공식화한 것으로 풀이된다.

기후변화 대응의 '선두 주자'를 자처해온 EU는 미국 IRA 시행 여파로 EU 역내 산업 전반의 경쟁력이 약화하는 것을 크게 우려하고 있다. 친환경 산업이 미래 먹거리로 떠오른 상황에서 관련 투자가 미국으로 몰릴 수 있어서다.

재계 한 관계자는 "거대 시장을 바탕으로 세계 공급망을 주도하려는 미국과 중국, 그리고 역시 거대 시장을 무기로 대응하는 EU와 달리 우리는 기술력 외에 별다른 무기가 없다"면서 "글로벌 분업 체계가 원활하게 돌아가던 호시절은 끝났다는 전제 하에 우리 기업들의 생존을 위한 전략을 짜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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